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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개혁 明暗]④ 박명수도 비판한 세금낭비…비례대표제가 해답일까

"비례성 높아지면 정책경쟁 ↑, 소득불평등은 ↓"
'군소정당 난립' '대통령-국회 갈등'…정치혼란 우려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2018-12-03 08:00 송고
"지역 살리기 때문에 쓸 데 없는 것을 설치해서 세금이 낭비된다…쓸 돈이 있으면 밥 못 먹는 아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개그맨 박명수는 지난 2016년 7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국회의원들의 선심성 예산 남발에 이같이 일갈했다. 박명수의 이러한 발언에는 다음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지역구 예산 확보에만 몰두하는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계는 국민 평균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회의원의 선심에 기대기보다는 내실 있는 정책을 바라는 유권자가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치권도 유권자의 요구에 화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중립적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15년 2월 제안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구분해 권역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비율을 2대 1로 정하고, 정당 득표율에 일치해 의석수를 나누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찬반 의견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과연 득표율에 맞춰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답답한 정치 현실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 News1 안은나 기자
 © News1 안은나 기자

신재혁 고려대 교수가 연구책임자를 맡아 지난 201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한국의 대통령제에 적합한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단점이 자세하게 분석돼 있다.

먼저 연동형 비례대표제처럼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높아질수록 ‘보편적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당 간 경쟁이 유도된다는 점이 장점으로 제시된다. 무상의료나 무상교육 등 국가 정책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통과될 수 있어 정치인 개인 보다는 정당이 추진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도로나 다리 건설, 직업 소개와 같이 정치인 개인이 내놓을 수 있는 선심성 정책은 덜 반영된다.

비례성을 높인 선거제도가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신 교수는 선거제도를 △한 선거구에서 득표율 1위 후보자를 뽑는 ‘단순다수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제’ △다수제와 비례제를 병행하는 ‘혼합제’로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는 혼합제 57.3%가 가장 높았으며 단순다수제는 52.1%, 비례제는 50.1%였다. 비례제가 단순다수제보다 경제실적에서 다소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소득불평등을 의미하는 지니계수(0은 완전평등, 1은 완전불평등)는 비례제가 0.29였으며 단순다수제가 0.32, 혼합제가 0.34로, 비례제의 소득불평등 수준이 가장 낮았다. 노동조합의 교섭결과가 업체에 적용되는 범위를 나타내는 노조 교섭력의 경우는 비례제 70%, 단순다수제 36%, 혼합제 47%였다.

이와 관련 신 교수는 보고서에서 “비례제에서 좌파의 의석점유율이나 내각 참여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수단이 비례제에서 더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비례제 국가들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이 평균 50%가 넘는 반면, 단순다수제나 혼합제의 경우 20% 대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민중당·노동당·녹색당·우리미래 등 원내외 7개 정당과 5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지난 10월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정당-시민사회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 News1 임세영 기자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민중당·노동당·녹색당·우리미래 등 원내외 7개 정당과 5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지난 10월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정당-시민사회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 News1 임세영 기자

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국회에 다당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면서 군소 정당들이 난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득표율이 낮은 정당이 비교적 쉽게 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대통령과 국회 간 교착상태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제와 다당제의 조합을 채택한 중남미 국가들은 선례다. 브라질은 정당체제 때문에 정치적인 위기를 겪는 대표적 사례로 전세계 학계에서 거론된다.

이러한 의견에는 “다당제는 대통령제가 아닌 내각제와 짝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을 거쳐 독일처럼 의원내각제(의회가 선출한 총리가 내각을 조직해 행정부를 담당)를 시행하는 게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제 개편을 망설이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일부가 내놓는 주장과 비슷하다. 이를 두고 소수정당들은 개헌이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반대하기 위한 논리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내각제'를 채택하는 것만이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재반박도 나온다.

학계 일각에선 “의원내각제에서도 프랑스 제 4공화국처럼 국회가 파편화돼 국회 해산이나 내각의 교체가 잦아지며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강력한 선거제 모델로 알려진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최근 도전을 받고 있다"며 "독일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나빠지고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극좌 정당과 극우 정당이 나타나 독일 정치가 큰 진통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되레 ‘대통령제-다당제’ 체제에서도 여러 정당이 연합하면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상훈 사단법인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대통령제 하에서 소수 정당이 난립하는 남미형 정치가 되면 어떻게 하나’와 같은 두려움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며 “그보다는 양극화된 양당제냐, 아니면 3~5개 정당이 경쟁하는 온건한 정당제냐의 선택이 논쟁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se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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