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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욜로은퇴] 노후의 나력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2018-11-09 15:01 송고 | 2018-11-09 15:14 최종수정
편집자주 100세 시대, 누구나 그리는 행복한 노후!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욜로은퇴 노하우를 전합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News1
집에서 조금 벗어나면 논밭이 있는 벌판이 있어 가끔 산책을 합니다. 1월의 추운 날씨였습니다. 앙상한 나무들을 보며 걷고 있는데 참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길 옆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처럼 잎이 다 떨어져버렸지만 참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너무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라 사진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잊히지 않고 화두처럼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노후에 우리는 사회에서 걸치고 있던 이런 저런 옷을 벗어 던질 텐데, 그럼에도 저 참나무처럼 당당한 모습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책을 읽다가 우연히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A. Tennyson)이 쓴 ‘참나무(The Oak)’라는 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테니슨이 80세에 이 시를 썼다고 하니 말년에 관조한 인생을 참나무에 비유해 노래한 셈이죠. ‘인생은 이렇게 살라’는 것으로 시는 시작되는데요, 봄, 여름, 가을의 참나무를 말한 뒤 겨울에 이르러서는, 몸통과 가지만으로 우뚝 서 있는 참나무의 벌거벗은 힘(裸力)을 이야기합니다. 원문은 ‘모든 잎들이/ 마침내 모두 떨어지고/ 보라, 몸통과 가지만으로/ 우뚝 서 있는/ 벌거벗은 힘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노후에는 꽃이나 잎을 자랑하며 살 수 없습니다. 화려했던 직장과 사회에서 물러나고, 꽃 같았던 자식은 제 갈 길을 찾아 가고, 따르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눈길마저 달라지고, 급기야 나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을 때, 그리고 나를 활력 있게 만들어 주고 자신감 가득하게 만들었던 건강이 나를 떠나갑니다. 팔이 떨리고 정정하던 두 다리의 힘이 약해지고, 눈은 침침해져 보는 것마저 힘겹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노후에는 많은 잎들이 떨어지고 줄기만 남게 됩니다. 벌거벗은 모습이 아름다워야 할 때입니다.

노후를 바로 보는 시선은 극과 극입니다. 존경을 받는 반면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팻 테인이 편집한 <노년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로마시대의 한 법률가는 ‘노년은 항상 존경을 받았다’고 쓴 반면에 동시대의 한 철학자는 노인은 ‘자신의 친구나 친척에게조차 답답하고, 고통스럽고, 가혹하며 한마디로 비애의 연속’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노년의 자화상에서는 위엄 있는 노송(老松)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16세기 그림에는 아이들에게조차 놀림을 받는 90세 노인의 모습도 있습니다. 노인에 대한 경멸적 태도는 그에 대한 존경의 태도만큼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겨울 참나무처럼 멋진 몸통과 가지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잎에 의존하지 말고 근간(根幹)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잎에서 독립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졌던 화려한 직함과 명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과거 직함에 집착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과거 직함과 무관심한 사회와의 괴리 때문입니다. 일본의 한 마을을 찾아가서 사회적으로 유명했던 분들이 물러나서 공동체로 돌아와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알아 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에서 혜택을 입었기에 더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 튼튼한 몸통과 줄기를 다섯 가지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후의 근간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돈, 건강, 일, 관계, 의미라는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돈, 건강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관계, 의미는 비물질적인 것, 그리고 일은 이 둘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들이 균형되게 갖추어지면 좋습니다. 특히 성찰을 통해 만들어가는 삶의 의미는 소금과 같은 존재입니다. 노년의 비교우위는 이러한 성찰에 있습니다.

셋째, 다섯 가지 요소를 보는 관점을 달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젊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관점을 달리 둘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고, 관계도 억지로 맺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노후에는 돈, 일, 관계를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철학자 김형석 선생은 ‘정신적으로는 상류층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라는 가치관을 피력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 번 가져볼 만한 관점입니다.

넷째, 다섯 가지를 갖추는 일을 일찍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참나무를 심고 나서 오래지 않아 튼튼한 몸통과 가지를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입니다. 관계는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오랜 친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공통된 추억, 괴로운 시간, 다툼, 화해 등이 쌓인 결과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정은 다시 만들지 못합니다. 노후에 일을 하려면 그 전에 오랜 기간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高3처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기간 축적하고 관리한 결과가 노후의 평생소득입니다. 건강 역시 저축처럼 꾸준히 해가야 합니다.

아내는 이 글을 읽고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잎을 떨구고 벌거벗어야 한다는 현실 때문입니다. 시인 테니슨은 ‘젊으나 늙으나’ 저 참나무 같은 삶을 살라고 합니다. 봄에는 황금빛으로 빛나고 여름에는 무성하고 가을이 오면 더욱 황금빛이 되고, 그리고 마침내 겨울이 오면 줄기와 가지로 나목(裸木)이 되어 우뚝 선 모습을 노래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서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노후의 나력(裸力)을 키워가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