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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욜로은퇴]집안일 돕기는 겸손과 중용으로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2018-10-12 22:01 송고
편집자주 100세 시대, 누구나 그리는 행복한 노후! 베이비 부머들을 위한 욜로은퇴 노하우를 전합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News1
가사일 분담은 젊으나 늙으나 이슈입니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남성 가사분담률이 낮습니다. 젊은 맞벌이 가구들은 가사분담률이 높을 것 같은데도 OECD 국가들에 비하면 여전히 낮습니다. 맞벌이 문화가 일찍이 정착된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제 문화적으로 적응해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맞벌이가 일상화되면 가사분담률은 높아질 걸로 보입니다.
  
문제는 젊어서 집안일과 바깥일이 분업화된,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분업 이론을 가정에 실천해 온 5060 세대들입니다. 이제 퇴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될 터인데 남자가 바깥일을 하지 않다 보니 더 이상 분업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마찰이 발생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놀기만 하다가 ‘삼식이’ 취급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요리도 수준급으로 배우는 등 너무 빨리 주부로 변신하여 집안일을 접수하려고도 합니다. 어떤 변신이 적절할까요? 답은 겸손과 중용에 있습니다.
  
사례 1: 제 이야기입니다. 이전에는 아내 설거지를 도왔는데 마무리를 깨끗이 못한다고 퇴출되고, 지금은 한번씩 빨래하면 20~30장 나오는 수건 개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모포를 개던 버릇이 있어 그런지 원래 꼼꼼한지 몰라도 수건의 각을 칼 같이 맞추어서 일렬로 쌓아 놓습니다. 제가 쌓아 놓은 수건을 보고 아내는 어쩜 이렇게 꼼꼼하게 갰냐고 감탄을 하며 칭찬을 해 줍니다. 그러면 저는 우쭐해서 “내가 일을 하면 확실하게 하지. 다른 집안 일도 일단 하면 확실히 할 거야”라는 답을 합니다. 아내는 그냥 “맞아, 맞아”라고 추켜세워주곤 합니다.
  
얼마 전 일본 여류 수필가 <오가와 유리>의 『은퇴남편 유쾌하게 길들이기』라는 책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퇴직한 남편이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아내를 도우려 집안 일을 하는데, 직장에서 일 하듯이 너무 꼼꼼하게 잘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석구석 청소를 해 놓은 걸 보고 “어머 깨끗해”라고 하자 남편은 “그렇지? 당신은 무슨 일이건 건성건성으로 일하잖아. 당신이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잖아”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주부 자리 꿰차고 거만 떠는 남편 시집살이 하면서 살 노후를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고백했다는 내용입니다.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당신이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잖아”라는 말은 세계 남성의 공통 언어인지 몰라도 저도 정확하게 이 말을 아내에게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 자랑에 아내는 그냥 웃으며 받아 준 거 같습니다. 아내가 수건 잘 갰다고 칭찬할 때 “내가 개봐야 얼마나 잘 개겠어. 가끔 개니까 이런 거지 매일 개면 나도 개판으로 갤거야”라고 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역시 세상은 겸손한 마음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집안 일을 도와 주되 겸손한 맘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사례 2: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남자가 퇴직을 하고 여자의 집안 일을 도와 주면서 냉장고, 옷장, 창고 등을 모두 뒤져서 치워 놓았다고 합니다. 급기야 가계부를 들고 오라고 해서는 가계부 항목을 엑셀 시트에 입력해서 관리했다고 합니다. 지출액 추이를 항목별로 그래프를 그리고, 이번 달의 지출내역을 파이 차트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자랑스럽게 컴퓨터 옆에 아내를 앉히고는 가계부 지출내역을 시계열과 파이차트로 보여주며 분석해주었습니다. 사무실의 노하우를 가정에 접목하여 혁신을 이루었다고 남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 뻔합니다.
  
여자는 당연히 싫어합니다. 우선, 자신의 사생활 영역을 남편이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냉장고, 부엌, 가계부는 여자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놓은 분야입니다. 마치 사무실 책상 위의 서류들을 다른 사람들이 정리한답시고 다른 곳에 갖다 놓은 거나 마찬가지의 불쾌감입니다. 냉장고에는 유통기한 지난 음료도 있고 가계부는 과다하게 지출한 부분도 있게 마련입니다. 둘째, 일이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고독감을 느낍니다. 자식들이 귀찮게 굴지만 부모가 필요해서 찾을 때 행복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고유한 일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셋째, 점령군처럼 행동하면 좋아할 사람 없습니다. ‘집안일도 마음만 먹으면 내가 더 잘하니 나한테 맡겨라’ 하는 태도는 강압적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남자는 어느 정도 여자가 잘 모르는 신비한 일을 해야 노후에 존경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한 모임을 10년 이상 지속하다 보니 회원들이 나이 들면서 변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제 나이쯤일 때 만났으나 이제 60대 중반을 넘기신 분들입니다. 그 중 한 분이 하신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뻥도 좀 치고 뭔가 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야 아내가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목돈 달라고 해서 투자하는 그런 행동은 싫어합니다.
  
일본의 <하라 고이치>가 쓴 『극락 컴퍼니』란 소설을 보면 퇴직한 사람들이 껍데기 회사를 만들어 놓고 모여서 하루 종일 일을 합니다. 중동의 유가를 분석하고 중동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서 바이어들에게 어떤 물건을 어느 가격에 팔지 결정하고 팩스를 통해 계약서를 보냅니다. 그러면 상대편 껍데기 회사에서 협상을 하고 주문을 받아 줍니다. 실제 제품 이동은 전혀 없습니다. 한 마디로 회사 놀이를 하는 거죠. 아내는 매일 정장을 입고 회사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해줍니다. 돈은 못 벌어 오는데 뭔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남자는 여자가 하던 일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집안 일도 돕고 자신의 일도 만들어 하면서 중용의 위치를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쟁에서는 후퇴 작전도 중요합니다. 마냥 도망가면 몰살을 당하기 때문에 공군이나 포병이 포격을 해 주는 동안 걸음이 늦고 숫자가 많은 보병이 먼저 철수해야 합니다. 퇴직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도 단계적 작전이 필요합니다. 집안일을 도와 준다고 해서 ‘갑’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하게 접근해야 하고 집안일 양은 적절하게 중용을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