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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싸움'…문화예술계 미투 어디까지 왔나

'예술'이라는 변명·긴 법정싸움·일상생활 속 2차가해
예술인복지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자정노력도

(서울=뉴스1) 민선희 기자 | 2018-09-24 08:00 송고
© News1

극단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윤택 전 연희거리단패 예술감독이 지난 19일 열린 1심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미투(MeToo) 운동'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중 처음으로 선고된 실형이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에서도 미투 고백이 잇따랐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을 꾸리고 조사한 결과 문화예술인·예술계대학 재학생 중 절반 이상이 ‘성희롱·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로는 ‘성희롱·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예술계 특유의 분위기’(64.7%),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54.9%),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권익을 대변할 공적 조직 미비’(44.5%) 등이 꼽혔다.

미투 고백 이후 7개월 넘게 흘렀지만 피해자들은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예술'이라는 변명, 고소 이후 법정싸움에서 겪는 고충, 일상생활에서 계속되는 2차가해, 가해자의 역고소 등은 피해자들을 여전히 괴롭힌다.

이윤택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연극연출가 이윤택 성폭력 사건 1심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9.1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 "가해자 법정에서 보는 것도 힘든데…성폭력이 예술이라고요?"

미투 고발자들은 경찰과 검찰조사, 재판을 겪으면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떠올리기 싫은 피해 사실을 지속적으로 되짚어야 하는 동시에, 법정에서 가해자를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 성폭력상담소 130개소와 여성단체, 공동변호인단으로 구성된 이윤택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17명의 피해생존자가 그간 말하지 못했던 피해의 상처를 되새기며 경찰 조사에 임했고,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으로 점철된 피고인 변호인의 심문에 대응하며 법정에 섰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책위는 "피고인 이윤택은 법정에 방청 온 피해자들을 쏘아보고, 차폐막 뒤에서 헛기침을 하는 등 피해생존자에게 부담을 줬다"고 지적했다.

김혜경 변호사는 "비록 가림막이 쳐져 있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피해자가 재판받으면서 두번 상처받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추행'을 예술이자, 교육이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가해자의 주장도 피해자를 두번 울리는 지점이다.

앞선 결심공판에서 이윤택 전 감독 측은 "비전문가가 볼 때 다소 부적절하고 민망한 장면이 있지만 연희단거리패가 가진 연극에서의 특성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감독은 최후진술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완성도 높은 연극을 만들어보자는 열정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연기 훈련 과정에서 제 과욕이 빚은 불찰이 있었다"며 연기지도였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연기 지도과정에서 신체 접촉은 어느 정도는 용인되지만 그 부위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정당한 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이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회 변론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8.3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2차피해, 이젠 일상이 됐어요"…가해자 역고소도

피해자들은 미투 이후 지속적인 2차피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 2월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학생들은 자대 교수였던 영화배우 조민기씨가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경찰조사를 받던 조씨가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지만, 학생들의 괴로움은 끝나지 않았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학생 중 한명이었던 A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미투 폭로 직후 학교 내에서 2차가해가 잇따랐다고 밝혔다.

A씨는 "일부 선배들과 조교들이 너희 지금 꽃뱀으로 몰릴 거다라고 협박하고, 너희가 이럴 수록 학과가 위험해진다, 너희도 얻어먹고 싶은 게 있어서 교수님 옆에서 춤춘 거 아니냐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2차가해는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직장 동료가 내가 미투 폭로자임을 알면서도 어깨동무를 하면서 '미투할 거 아니지?'라고 농담을 한다던가, 미투 직후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봤다"고 털어놨다. 

A씨는 "늘 불안하고, 심장떨려하고, 누가 이름을 부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런 상태가 당연해졌다"며 "이제 2차피해는 일상이 돼버렸고, 이 일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연습 중인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가해자들이 역고소를 하면서 피해자들이 또 다른 법정싸움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월17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고은 시인은 자신의 혐의를 증언한 최영미, 박진성 시인에게 각 1000만원, 이를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 2명에게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31일 첫 변론기일이 진행된 상태다.

최씨는 지난해 9월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에 고씨를 암시하는 원로 문인의 성추행 행적을 언급한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실었다.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라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무고나 명예훼손 역고소는 늘 있어왔다"며 "무차별적인 가해자들의 역고소는 피해자들을 입막음 시키고, 피해자 지원을 하는 단체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미투가 바꾼 것들…관련 법안 통과·성교육 강화

사회 각계에서 미투가 이어지면서 국회에서는 관련법안이 130개 넘게 쏟아졌다. 이 가운데 지난 20일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하도록 명시했다. 또 모든 예술인은 인간의 존엄성 및 신체적·정신적 안정이 보장된 환경에서 예술 활동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기본적인 권리보장 규정을 신설했다.

'계약 조건과 다른 활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불공정행위 요건에 추가하고, 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에 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및 피해 구제 지원 사업을 추가했다.

극단 자체적으로도 자정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극단들에서는 계약 조건에 성폭력 관련 조항을 늘리고, 성교육이수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각종 예술인 재단에서도 관련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인터뷰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A씨는 '혹시 미투 폭로를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미투 고발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나 스스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됐고, 내 친구가, 동료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볼 때는 용기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미투 꽃뱀 잔치다' 이런 댓글을 보면 힘이 빠지죠. 누가 이름을 다 밝히고, 일상을 포기해가면서 피해사실을 말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지금 그러고 있잖아요. 성범죄가 무고로 종결되는 경우는 1%도 안된다는데, 미투는 무고인 것처럼 인식이 퍼져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이 전부 피해자에게는 2차가해가 된다는 거, 일상에서도 2차가해가 만연해있다는걸 다들 알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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