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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첩광장 터서 진주성 외성 발굴…보존 상태 뛰어나

길이 100m, 너비 7m, 높이 4m 규모…광장 조성 차질 불가피

(부산ㆍ경남=뉴스1) 이경구 기자 | 2018-09-12 16:13 송고
'진주대첩 기념광장' 조성사업 예정부지내에서 진주성 외성의 성벽이 확인됐다. (진주시제공)© News1

경남 진주시가 계획하고 있는 '진주대첩 기념광장' 조성사업 예정부지에서 진주성 외성 성벽이 확인됐다. 

이에따라 진주시가 계획하고 있는 진주대첩광장 조성과 지하주차장 건립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2일 발굴을 담당한 한국문물연구원에 따르면 발굴된 외성 성벽은 해발 26m 선에서 성벽 상부가 확인되었으며 최하 23m 선까지 성벽의 기단이 노출되었다.

규모는 길이 약 100m, 너비 6~7m, 높이 최대 4m로 거의 원형이 드러날 만큼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촘촘하고 견고하게 쌓였다고 밝혔다.

성벽은 외벽의 기단부와 벽석에 사용된 석재의 가공상태가 서로 다르며, 내벽 토층도 처음 성벽을 쌓을 때부터 세 단계로 구분해 축조된 것으로 보고있다.

고지도 '진주지도'(19세기 중반 서울대규장각 소장)에 보이는 조사대상지역 (한국 문물연구원제공)© News1© News1

처음 쌓기 시작한 성벽의 외벽 축조 방법은 길이 100cm 이상의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눕혀 쌓고 그 위에 약 20cm 안쪽으로 들여 대형 기단석을 세워쌓은 다음 작은 쪼갠 돌로 빈 공간을 메우는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은 기장읍성, 언양읍성, 밀양읍성, 소을비포성 등 다수의 성에서 확인되고 있다.

진주성 외성의 남체성은 16세기에 처음 축조된 이후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36년(1603년)에 1차 수축, 숙종26년(1700) 이후 또는 정조12년 (1788년) 2차 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대부분 조선시대 기와, 분청사기 및 백자 등의 자기가 출토됐으며 소량의 청자편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진주성 외성은 비교적 저지대에 위치해 허물어지지 않고 이후 축조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주성 외성 내부는 진주성이 헐어지고 민가가 들어서면서 외성의 남문과 관아시설 등이 훼손되고 각종 콘크리트 시설물이 성벽이나 건물지를 파괴했다.

한국문물연구원은 "앞으로 진주성 외성의 규모와 축조 수법, 축조 시기 등을 규명할 자료를 확보하여 진주의 상징인 진주성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고 밝혔다.
 
조규일 진주시장(사진 가운데)이 진주성 외성 발굴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진주시제공)© News1

학술자문회의는 발굴기간 동안 진주성 외성의 규모와 축조 기법, 축조 시기 등을 규명하도록 당부하고 진주시에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외성을 복원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진주시는 내년까지 진주성 촉석문앞 2만5020㎥에 980억원을 들여 진주대첩기념관과 408면의 지하주차장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진주시는 "문화재 조사결과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토대로 대첩광장 조성계획에 대한 전문가와 시민의견 등을 충분히 반영해 진주대첩광장이 조성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kglee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