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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만 죽으라는 것"…산부인과 낙태수술 거부한 까닭은

자격정지 1개월 반발…"음성적 낙태 증가할 것" 우려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2018-08-28 16:55 송고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사진 가운데)이 28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사진 가운데)이 28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에 어긋난 낙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겠다"고 밝혔다./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불법 낙태수술을 전면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의사를 처벌하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에 대한 반발과 함께 의료사각지대에 놓일 위기에 처한 임신여성들에 대한 이슈를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7일 낙태수술을 한 의사의 면허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을 공포한 바 있다.
의사들이 법에 어긋나는 낙태수술(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언뜻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8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동욱)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뤄지는 낙태 건수는 한해 100만건(하루 3000건)으로 정부 추정치의 3배에 이른다. 1시간마다 125명의 여성이 아이를 지우는 셈이다.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부분 미혼이거나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경우, 미성년자다. 경제력이 있어도 준비되지 않은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동안 국내에서 낙태죄는 사문화된 것으로 여겼다. 낙태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는 건수는 연간 10여건에 불과했다. 낙태죄로 재판을 받아도 대부분 선고유예를 받았다. 그런데 정부가 형법 제270조를 들어 낙태수술한 의사의 면허자격을 정지하는 행정처분규칙을 공포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김동욱 산부인과의사회장은 "행정처분규칙은 사문화된 낙태죄를 되살린 것"이라며 "자격정지 1개월이면 동네의원은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하는데, 아무리 딱한 사정이 있어도 낙태수술을 감행할 산부인과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미성년자가 부모와 함께 낙태를 하려고 찾아오면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수술을 해준 사례가 있다"면서 "앞으로 의사들이 수술을 거부하면 결국 이 사람들은 비의료인을 찾아 불법수술을 하거나 낙태약을 먹을 가능성이 높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아이를 지우려고 시도할 텐데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산부인과의사회가 지난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자와 미성년자의 96%가 '미혼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낙태를 선택했다'고 응답했다. 산부인과학회가 2009년 발표한 중·고등학생 성(性) 행태 조사에서도 임신경험이 있는 여학생의 85%가 낙태시술을 받았다.

산부인과의사회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가리는 심의를 진행하는 만큼 행정처분규칙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재가 심의 중인 법률은 형법 269조와 270조다.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낙태를 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270조 1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를 하면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형법 269조는 낙태여성, 270조는 의사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지난 5월 헌재에서 열린 공개변론에서도 낙태죄 조항을 두고 청구인측과 법무부 변호인단이 공방을 벌였다. 낙태죄로 1심 재판을 받던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가 2017년 2월 형법 269조와 270조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법소원을 낸지 1년3개월만이다. 헌재는 앞서 2012년 8월 낙태죄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낙태 허용범위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14조의 실효성 논란도 뜨겁다. 현행 법률상 '대통령령이 정하는 유전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질환', '강간·준강간', '혈족·인척간 임신', '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는 임신 24주 이내인 사람만 낙태를 허용한다.

현행 법률대로라면 감염질환인 풍진은 낙태가 허용되지만 무뇌아 등 태아 생존이 불가능한 선천성 기형아가 생긴 경우에는 아이를 지울 수 없다. 낙태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성계는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일부 종교계는 '생명경시 풍조가 생긴다'며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낙태죄 폐지 논란에도 정부는 기존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산부인과의사회가 불법낙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법을 지키겠다는 선언"이라며 "정부가 대응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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