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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잡스'들 실패 극복기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되더라"

창업인들의 '혁신적 실패' "다시 도전하니 사업이 무엇인지 알겠더라"
김광현 창진원장 "지나친 자책 금물, 실수 안하는 창업자 없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8-06-28 11:14 송고
예비창업자들이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열린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 2018에서 다양한 업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18.3.2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예비창업자들이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열린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 2018에서 다양한 업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18.3.2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숨통이 끊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고작 서른살이었습니다. 제 마음 속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컴퓨터 최소 한 대가 자리잡고 있었지요. 하지만 애플은 그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는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애플를 창업한 고 스티브 잡스(1955.2.24 ~ 2011.10.5.)의 생전 회상이다.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1985년 쫓겨났을 무렵 기억이다. 이후 아담이 먹은 사과보다 더 유명해진 사과 로고의 '위대한 컴퓨터' 맥북이 누구의 작품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절망과 실패를 딛고서 1997년 애플에 복귀해 'IT 세계 혁명'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다. 
잡스가 만약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더라도 이같은 재기가 가능했을까. 이같은 물음에 대부분은 '불가능'이란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한국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 독일을 꺾었듯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나를 성장시킨 실패이야기 – 2017년 공모전 우수사례집'에는 한국판 잡스들의 사례가 담겨 있다. 

◇ 반복되는 실패, 주저앉고 싶을 때…


그날 오상훈씨는 비가 내리는 줄도 몰랐다. 절망에 빠져 멍한 상태로 길거리를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추진하는 사업마다 실패했던 시기였다. 어린 시절 '우주로 로켓을 쏘아올리고 싶다'는 꿈과 이제 작별할 시간이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로봇학'을 공부한 오씨가 창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조금 힘이 들더라도 뜻깊은 일을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창업은 쉽지 않았다. 반 년 이상 선후배들을 쫓아다니며 설득했다. 2013년 자본금 1000만원과 다섯 명의 인원으로 로봇 관련 업체 '럭스로보'를 창업했다.

사업 초기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스타트업(신생기업) 지원 자금을 받았다. 다행이었다. 불행한 일은 사업 경험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3여년 간 여섯 개의 창업 아이템을 개발했다. 그러나 생산조차 못한 채 사라지거나 특허비만 날릴 정도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직원들은 반복되는 실패에 지쳤다. 월 급여가 10만원에 불과한 '공짜 노동'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다 포기하려는 순간 '초심'이 떠올랐다. 사람들을 위해 로봇을 쉽게 만들게 하는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아직 남은 절심함, 남은 희망 한줌이 다할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

12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애플 아이폰 X 등 신제품 발표에 앞서 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 영상을 배경으로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AFP=뉴스1 © News1 김정한 기자
12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애플 아이폰 X 등 신제품 발표에 앞서 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 영상을 배경으로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AFP=뉴스1 © News1 김정한 기자

◇ '로봇'처럼 더 정교해져…구체적인 사업구상 

오씨는 "정말 마지막으로 처음에 구상한 것 딱 한번만 해 보자"고 동료들에게 호소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작품은 럭스로보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모디(MODI)'다. 누구나 코딩으로 로봇을 조립할 수 있게 한 모듈이다.

비장한 각오의 오씨는 로봇처럼 더 정교해졌다. 모디의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홍보 자료를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오씨는 "몇 번 실패를 거듭했더니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씩 깨달았다"고 말했다.

제품기획·제품전략·소비자 분석·원천기술·경쟁사 확인·양산과 제품 품질 검증 등의 작업을 거쳤다. 영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해 10개국에 이 제품을 수출한 오씨는 올해 매출 목표를 200억원으로 잡았다.

오씨는 "사업 실패 과정에서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될 때 한 번 더 생각하길 바란다"며 "내가 보유한 기술이 경쟁력 있는지, 지금 하는 일이 재미 있는지,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말이다"고 제언했다.

◇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혁신적 실패'는 럭스로보 오상훈 대표만의 경험이 아니다.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이런 멋들어진 비유를 하는 비엘에이치아쿠아텍의 홍성욱 대표도 실패를 넘어섰다.

기능성 수 처리장치 사업을 하는 홍 대표는 과거 창업 6년 만에 회사를 폐업하고 집까지 판 기억이 있다. 당시 남은 것은 빚과 가족들의 고통이었다. 하는 수 없이 창업 꿈을 접고 직장을 다녔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장벽을 뚫고 나갈 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창업인이었다. "최선을 다해 직장 생활을 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머리부터 가슴까지 나를 옥죄었다." 다시 창업을 도모하던 홍 대표는 창업 선배들의 강연 자리를 찾았다.

회계 관련 공부도 다시 했다. 직원들 통솔 방법과 정부지원 수급 방법도 공부했다. 원점에서 시작해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그는 "실패를 통해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많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업인이 돼 있었다.

◇ "실수에서 배워라, 정부 지원 프로그램도 활용해야"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은 오 대표(청년부문 대상)와 홍 대표(일반부문 대상) 등의 혁신적 실패 사례를 담은 '나를 성장시킨 실패이야기 – 2017년 공모전 우수사례집'을 최근 발간했다. 3년간 개발한 창업 아이템을 생산조차 못한 창업인, 정부 지원 사업 도전에 번번이 낙방한 창업인, 성공 신화의 주역이었다가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 창업인들의 재기 과정이 담겼다.  사례집에 등장한 이들에게 실패는 더 큰 성공으로 이끄는 '혁신적 실패'였다.

김광현 창업진흥원 원장은 <뉴스1>과의 전화 통화에서 "창업자가 난관에 처했을 때 지나친 자책을 하면 안 된다"며 "실수하지 않는 창업자는 없고,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창업자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재도전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창업 기업인들이 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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