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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스님 "만공선사와 한성준, 닮은 꼴의 삶 살다"

일제강점기 불교·전통무악의 명맥 각각 지켜내 일가 이뤄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018-06-14 17:12 송고
한국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1874-1941, 왼쪽)과 현대 한국불교의 종장 만공선사(1871-1946)© News1
한국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1874-1941, 왼쪽)과 현대 한국불교의 종장 만공선사(1871-1946)© News1

현대 한국불교의 종장 만공선사(1871-1946)와 한국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1874-1941)에겐 수덕사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만공은 충남 덕숭산에 있는 수덕사에서 40여 년을 머물며 일제강점기 불교의 체계와 기틀을 마련했고, 한성준은 만공이 있는 수덕사에서 약 3년간 머물며 익힌 불교춤을 한국 전통무용으로 재정립했다.

전 불교신문 사장이자 현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인 주경 스님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불교사회연구소에서 기자를 만나 "만공선사와 한성준의 삶의 여정이 서로 많이 닮았다"며 "이들은 30대에 이미 일가를 이룬 대 종장이 됐으며, 일제강점기 민족의 정신과 문화, 예술의 맥을 잇고 널리 전한 공로가 가히 크다"고 말했다.
한성준은 100여 가지 전통춤을 집대성해 근현대 한국 전통춤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선구자였다. 그의 춤은 손녀인 한영숙과 조선 제일의 춤꾼 최승희로 이어지고, 다시 김매자, 이애주, 국수호 등 현대 우리춤의 대가들에게 전수됐다.

주경스님은 "명무 한성준은 수덕사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며 "그는 1890년경에 수덕사에 입산해서 3년간 머물며 범패와 승무를 비롯한 다양한 재를 통해 불교의식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성준은 수덕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예를 재정리하고 춤과 장단의 원리와 조화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한성준이 생전에 주장한 춤론을 살펴보면 연꽃 등 불교 단어가 등장하고 하나의 마음에 전체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불교의 영향이 잘 드러난다. 그는 생전에 "뼈 3000마디를 모두 움직여서 춤을 춰야 하느니라"며 "손을 들어올릴 때는 연꽃이 피어나는 동작을 해야 하고 장삼자락을 걷어 올릴 때는 태산을 들어 올리는 기풍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주경스님은 "1938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성준이 창작한 춤이 100여 가지에 이른다고 했다"며 "한성준의 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격변의 세상을 살아가며 몸과 삶으로 익힌 사라져 가는 전래풍속을 취합해 새로운 시대의 양식에 맞게 재정리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그는 한성준처럼 만공선사도 현대 한국불교 선 체계를 확립한 대선사라고 소개했다. 주경스님은 "만공은 일제의 한국불교 훼손에 대응해 스승인 경허선사가 수립한 한국선불교를 지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며 "조선총독부에 의한 식민지화로 한국의 불교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해결했던 주인공이 바로 만공"이라고 말했다.

주경스님은 "삶의 여정이 서로 닮은꼴인 만공선사와 한성준이 직접 만났다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한성준이 1900년께 서울로 올라간 뒤에도 수시로 수덕사를 들렀다는 기록과 1930년대 대웅전을 보수할 때 시주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도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만공과 한성준이 도저한 선풍과 예술혼을 수덕사에서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한성준의 업적도 만공선사처럼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불교신문 사장이자 현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인 주경 스님© News1
전 불교신문 사장이자 현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인 주경 스님©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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