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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증인' 허정무의 조언 "도전자니까, 유쾌하고 당당하게"

"최악의 조? 월드컵사에 쉬운 조는 한 번도 없었다"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18-05-24 15:51 송고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한국 월드컵사의 산증인이다. 선수부터 코치, 감독, 단장으로 두루 본선 무대를 경험했다. © AFP=News1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한국 월드컵사의 산증인이다. 선수부터 코치, 감독, 단장으로 두루 본선 무대를 경험했다. © AFP=News1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대한민국 월드컵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 한국이 3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다시 밟던 1986 멕시코 월드컵 때 선수로 출전한 허정무 부총재는 당시 이탈리아와의 조별예선 최종전(2-3)에서 골까지 넣었다. 한국이 지금껏 월드컵 본선에서 기록한 31골 중 하나가 허 부총재 오른발에서 터졌다.

이회택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는 트레이너로 함께 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김호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였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직접 지휘봉을 잡고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라는 쾌거를 일궜고 아쉬운 결과로 끝난 2014 브라질 대회는 단장으로 함께 했으니 그야말로 '한국 월드컵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선 9회 연속 진출이자 총 10번째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현재 한국에서 선수-트레이너-코치-감독-단장으로 함께 한 이는 허정무 부총재가 유일하다. 누구보다 월드컵을 잘 아는 허 부총재를 만나 신태용호에 도움이 될 조언을 구했다. 시종일관 같은 맥락이었다. 우리는 '도전자'이기에,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맞서라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조별예선 3차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고 있는 허정무. (한국축구 100년사 제공)© News1
1986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조별예선 3차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고 있는 허정무. (한국축구 100년사 제공)© News1

△ 부상자 속출? 새로운 스타탄생의 기회 될 수도

24일 오전 축구회관 5층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만난 허정무 부총재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부상자' 이야기로 시작됐다. 김민재부터 염기훈에 권창훈과 이근호까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들이 속출하며 축구계 안팎의 한숨이 많다. 허 부총재 역시 "특히 김민재와 권창훈은 정말 아쉽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러나 부상자가 팀에 꼭 악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그 악재가 외려 스타탄생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허 부총재는 "우리 축구의 과거를 돌아보면 누군가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다른 누군가가 예상치 못하게 도약하는 경우들이 심심치 않았다. 꼭 있어야할 선수의 대타로 들어간 선수가 스타로 발돋움하는 일이 적잖았다"면서 "나 역시 그런 기회를 살린 케이스"라고 회상했다.
시간을 1974년으로 되돌린다. 대학교 1학년생 허정무가 축구계에 막 등장했을 때고 그 무렵 가장 큰 대회였던 태국 킹스컵을 앞둔 시기였다. 당시 대표팀 간판 공격수인 '풍운아' 이회택이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공격진에 비상이 걸렸는데,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허정무다.

허 부총재는 "대학생이 되고 가파르게 성장하던 1974년에 운 좋게 대표팀에 처음 뽑혔다. 그해 12월 킹스컵을 앞두고 10월부터 대표팀 소집훈련이 시작됐는데, 이회택 감독님이 다쳤다. 그때 내가 대타로 추가 선발돼 합류했다"고 말한 뒤 "그런 내가 태국과의 결승전 때 연장전에서 골을 넣고 한국이 우승했으니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회상했다.

지도자로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자신이 팀을 이끌던 남아공 월드컵 직전, 핵심 센터백 곽태휘가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큰 누수가 발생했으나 그 자리를 메꿔준 이정수가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이른바 '헤발슛(머리와 발을 맞고 들어간)'을 성공시키는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허 부총재는 "당연히 중요한 선수들이 다쳐 아쉽긴 하다. 그러나 창훈이가 다쳐서 황희찬이 더 잘할 수도 있고 이재성이 날아오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떻게 준비하느냐다"라고 덧붙였다. 부러진 카드만 부여잡고 울상 짓는 비생산적인 일을 접고 현실적 노력을 '긍정적'으로 펼치자는 게 허 부총재 조언의 요지다. 조편성 역시 비관적일 것 없다는 견해다.
허정무 부총재는 한국 축구의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우리는 도전자이기에,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도전하라고 충고했다. © AFP=News1
허정무 부총재는 한국 축구의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우리는 도전자이기에,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도전하라고 충고했다. © AFP=News1

△ 스웨덴과 멕시코, 충분히 해볼 만하다

"상대들이 너무 강하다, 최악의 조에 속했다 등의 말이 많은데, 나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 돌아보자. 우리가 지금껏 이번보다 쉬운 조에 속한 적이 있었는가? 절대 아니다."

허정무 부총재는 매 대회 조편성을 그대로 읊었다. 1986년 멕시코 대회(아르헨티나-불가리아-이탈리아)부터 1990(벨기에-스페인-우루과이) 1994(스페인-볼리비아-독일), 1998(멕시코-네덜란드-벨기에), 2002(폴란드-미국-포르투갈), 2006(토고-프랑스-스위스), 2010(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2014(러시아-알제리-벨기에) 대회까지, 강호들 틈바구니에서 싸웠음을 되짚었다.

그는 "개최국으로서 시드를 받았던 2002년과 지난 브라질 대회가 좀 낫긴 했다. 하지만 그 대회도 약팀은 없었다. 우리의 월드컵은 늘 강호들과의 대결이었다"면서 "월드컵은 상대하는 팀의 레벨이 다른 무대다. 쉬운 팀들과 한배를 탈 수가 없는 게 월드컵"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월드컵 본선은 각 대륙 예선을 통과한 팀들이 나선다. FIFA 랭킹만 보아도 한국은 강한 팀이 아니잖는가. 2002년에 4강에 올랐던 것만 떠올리면서 16강은 당연히 나간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면서 "우리는 우리 위치에 맞게 배정된 것이고 당연히 도전하는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단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마냥 주눅들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허정무 부총재는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난 우리의 조편성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계랭킹 1위이자 절대 강호인 독일이 아예 3승을 해서 다른 3팀이 나머지 1장을 놓고 싸우는 구도가 낫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자신이 16강을 견인했던 2010 남아공 대회서 아르헨티나가 3전 전승을 거두고 한국이 1승1무1패로 조 2위 16강에 올랐던 때와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허 부총재는 "독일이 3승을 한다는 전제로, 우리 입장에서는 맞붙는 순서도 나쁘지 않다. 스웨덴과 첫 경기, 멕시코와 2차전인데 여기서 1승1무를 목표로 삼고 승부를 건다면 충분히 절반의 확률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석 없이 마냥 부르는 희망가도 아니었다.

PO를 거쳐 본선에 올라온 스웨덴보다 수월한 유럽 국가를 찾기 힘들다고 언급한 허 부총재는 "스웨덴은 지키는 것에 능하나 상대를 날카롭게 쓰러뜨리는 것은 좀 서툴다"고 짚으면서 "스웨덴은 우리를 꺾지 못하면 16강이 어렵다. 그래서 무조건 이기려 달려들 것이다. 그것을 잘 이용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피드와 결정력을 갖춘 손흥민과 황희찬을 활용한 카운트어택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멕시코와는 과거 나쁘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허 부총재는 "멕시코와는 큰 대회에서 몇 번 만났는데 잘 싸웠다. 당장 2012 런던 올림픽 조별예선에서 멕시코와 0-0으로 비겼다. 그때 한국은 동메달, 멕시코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당시 멤버들 중 적잖은 인원이 현 A팀에서 다시 만난다"면서 "멕시코는 상대적으로 체구가 크지 않다. 빠르고 발재간이 좋지만, 우리도 순간 스피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제공권도 우리가 괜찮다"는 말로 해볼 만한 상대라는 뜻을 거듭 피력했다. 

물론 막연한 자신감과는 선을 그어야한다. 전제는 두 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그에 따른 맞춤형 전술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실을 다진 뒤 필요한 것은 '당당한 도전'이다.

허 부총재는 "우리가 상대를 두려워할 것은 없다. 당당하게 준비해서 싸운다면 우리에게도 절반의 확률은 있다"고 격려했다. 결과적으로 16강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허정무호의 슬로건이 '유쾌한 도전'이었다. 그런 자세가 또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할 때 신태용호가 외치는 '통쾌한 반란'도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허 부총재는 선수들은 물론 팬들에게도 함께 하자고 권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열심히 응원하자는 게 아니었다. 한국 축구를 위해, 나아가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뛰어야할 이유를 설명했기에 곱씹으면 더 와 닿는 당부였다.

"한번쯤은 축구라는 스포츠가 그 나라의 이미지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1994 미국 월드컵 때가 좋은 예다. 비록 한국은 예선 탈락했으나 독일과의 최종전(2-3 패)에서 보여준 끈기와 근성과 투혼은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축구의 힘은 엄청나다. 우리 선수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라는 간판 아래서 뛰는 자신들의 플레이가 국가의 이미지를 얼마나 좋게 만들 수 있는지 마음에 담아야한다. 결과가 전부는 아니다. 의미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팬들의 응원을 진심으로 부탁한다. 팬들의 응원은 선수들을 뛰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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