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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백 카페 르퓌제] ‘폴 세잔’처럼 생각하라

미술 시장을 통해 바라 본 카페 경쟁력

(서울=뉴스1) 김수경 에디터 | 2018-05-18 12:00 송고
학창 시절, 그림을 잘 그리는 한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실력이 워낙 탁월했기에 아마도 미대를 가지 않았을까 싶어, 인터넷으로 친구의 이름을 검색해 보기까지 했다. 왠지 미술 시장에서 어느 정도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아쉽게도 찾을 순 없었다. 

반면 미술을 했던가 싶을 만큼 기억이 희미했던 한 친구는 미대를 나와 한국 영화계에서 특수분장 최고의 전문가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자의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욱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이미지=Flickr)© News1
(이미지=Flickr)© News1

폴 세잔의 정물화를 보고 있으면 여러 복합적인 생각들이 스친다. 폴 세잔이란 이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이 워낙 크다 보니, 왠지 특별한 시선을 가져야 할 것만 같은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면도 있다. 사실 모든 정보를 배제하면 그의 그림을 특별함으로 받아들이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폴 세잔의 그림을 보고 감상문을 제출하라 했더니, ‘그림을 좀 그릴 줄 아는 학생이 자기 마음대로 그린 그림’이라 했다 한들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보이는 그의 그림들은 실제로 그렇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세잔의 작품들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그려졌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2018년의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시선으로 한 세기 훨씬 전의 흐름 속에서 그려진 그림을 보게 된다면 대상과의 소통은 처음부터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미술 분야에서 작품 연도는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폴 세잔과 동시대를 살았던 클로드 모네의 1872년 작품 '인상, 해돋이'는 이후 인상파를 대표하는 그림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평론가들 사이에서조차 조롱의 대상이었다. 사실 이 작품 역시 배경 정보가 없다면 우리 또한 당시 평론가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Wikimedia Commons)© News1
(이미지=Wikimedia Commons)© News1

19세기 중반의 유럽 미술 시장은 소위 아카데미 예술이 지배하던 시대였고, 따라서 그 모범적 전형에서 벗어난 그림은 인정받기 힘든 시대였다. 때문에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선 국가가 주관하는 관선 전인 ‘살롱전’에서 입선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나, 사실 그 결과는 암울했다. 

마치 미대 입학을 위해 입시전형을 철저히 분석하고, 실기 시험을 위한 수많은 반복 학습을 하지만, 막상 시험장에서는 눈앞의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반복 학습이 만들어 낸 나의 기억 체계가 대상을 보지 않고도 자연스레 그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아카데미 예술이 지배했던 시절, 몇몇 작가들은 미술시장의 모범적 전형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이 그리고 싶은 창의적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폴 세잔의 수많은 정물화도,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도 그런 상황 가운데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오래전 TV 광고의 카피처럼 ‘모두가 Yes라 할 때 No’라 선택할 수 있었던 선배들 덕에 미술 시장은 더욱 유연해지고 다양한 화풍의 그림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당시의 젊은 작가들은 물론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수많은 예술가들 역시 앞 세대의 선배 예술가들에게 고마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이제 커피 얘기를 좀 할까 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큼 매력 있는 커피 시장이 되었다. 한 세기 전, 동방의 저 끝머리에 위치한 작은 나라 정도의 인식 속에 커피가 처음 소개된 이후, 현재 한국의 커피 소비량은 이미 전 세계 6위권까지 올라와 있다고 한다. 과연 커피 회사라면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시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커피 시장이라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커피 시장은 늘 소비자를 배제한 그들만의 리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세청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커피 시장 규모는 이미 11조에 육박했다고 한다. 

1999년 스타벅스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이후, 스타벅스의 성공 사례를 롤모델로 수많은 카페 브랜드가 등장해 왔고, 그렇게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원판 스타벅스의 어색한 아류 그이상 이하도 아니었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커피 시장 성장기에 자기 색깔을 가지고 당당하게 소비자의 문을 두드린 카페는 내가 아는 한 거의 없었다. 스타벅스를 따르고 싶었다면, 차라리 스타벅스의 결핍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했고, 그것을 따라야 했다. 

스타벅스의 결핍은 카페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메인 커피의 맛 품질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것인데, 최근 몇 년 사이 스타벅스는 과거의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인 걸로 보인다. 

이런 노력은 사실 커피 시장 초기 때 후발 업체들이 했었어야 했다. 만일 그랬다면 커피 시장의 현재 모습은 어땠을까? 커피 시장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높지 않았을까?

예나 지금이나 커피 시장의 가장 심각한 결핍은 커피의 본질, 즉 맛 품질 및 다양성의 기본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 어떤 음식 분야가 2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성장을 하게 되면, 동시에 맛 품질도 병행해 성장해 오다 결국엔 맛 품질도 함께 상향 평준화되는 안정기에 접어들게 된다. 

 
 

반면 한국 커피 시장은 가파른 그래프를 그리며 성장하였으나, 과연 맛 품질 역시 함께 성장해 왔는지 반문하고 싶다. 수많은 커피 브랜드들은 과연 이 사실을 몰랐을까? 알고도 그랬다면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고, 정말 몰라서 그랬다면 시장을 만만하게 본 것이라 할 만하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못해 부끄러울 지경인데, 한 조사에 의하면 1위 업체인 스타벅스가 올린 한 해 매출을, 2~6위 업체가 올린 매출을 모두 합쳐도 따라가지 못한 상황이라고 한다. 스타벅스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난 스타벅스가 특별해서 성공의 길을 걷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커피 회사들이 카페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반문을 하며 노력하지 않았기에 그 반사이익이 스타벅스로 넘어간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한국의 커피 시장은 어떤 면에선 아카데미 예술이 지배하던 19세기 유럽의 미술 시장을 보는 기분이다. 커피의 본질은 다양성이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제작자의 해석이 달라지면 그 맛의 색깔도 달라진다. 로스팅 전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면 적당히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확연히 달라진다. 

난 ‘커피 스펙트럼’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하나의 빛이 들어왔으나 프리즘을 통과하면 빛이 간직하고 있던 고유의 다양한 색깔들이 드러나듯, 색에 대한 기호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커피 역시 한 종류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커피라 인식할 만큼의 다양성을 갖고 있고 소비자의 기호 역시 그에 따라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즉 커피 스펙트럼 내에서 소비자들의 기호는 가지각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커피의 본질을 충실히 하는 것이고, 동시에 소비자의 욕구도 충실히 반영하는 것일 텐데, 지금의 커피 시장은 마치 뭔가의 어떤 룰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카페의 얼굴인 커피 본질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부디 인테리어와 디저트에 쏟았던 고민의 절반만이라도 커피 본질 연구에 쏟으면 안 되는 걸까?

거듭 강조하지만 커피의 다양성과 개성이 자유롭게 확장되는 시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분 거리 이내의 카페 5곳이 같은 커피를 사용하더라도, 시장의 흐름을 편승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색깔을 잘 반영한 커피를 소개하는 카페들의 구성이라면 이들은 이미 경쟁 관계가 아닌 매력적인 카페 거리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선각자들이라 보아야 한다. 바로 그들이 커피 시장의 폴 세잔이요, 클로드 모네인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개인 카페를 중심으로 참신하고 매력적인 카페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이러한 풍경은 커피 시장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소비자들에겐 소비를 통해 경험하는 일상의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개인 카페를 꿈꾸는 예비 카페 주인들에게 거듭 강조하고 싶다. 첫째 커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해야 한다. 둘째 내가 만든 커피의 맛 품질이 어떠한지 반드시 검증을 해야 한다. 셋째 카페 예산은 절대적으로 커피의 맛 품질을 높이는 방향에 집중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손님의 입장이 되어 카페를 찾았을 때를 떠올리며 그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꼭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시장의 흐름을 뒤집는 카페를 보고 희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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