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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스트레스에 위장병·탈모…"생활지도부장 안할래요"

스승의 날…교사 77%가 꼽은 최악의 보직
학폭 관련 학부모 민원·과다업무 시달려…"교육청서 학폭 담당해야"

(서울=뉴스1) 김재현 기자 | 2018-05-15 06:00 송고 | 2018-05-15 09:18 최종수정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위장병, 원형탈모, 불면증, 극심한 불안증세…. 지난해 생활지도부장 보직 맡고 이런 질환은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심신이 망가졌죠. 그런데도 시간이 없어 피부과, 정신과는 아예 못 갔어요. 교사 생활, 아니 제 생애 가장 힘들었던 한해였습니다."

지난해 한 중학교에서 생활부장교사를 맡았던 교사 A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격정을 토로했다. 그는 1년 내내 학교폭력 사안 처리를 위한 과다 행정업무, 연일 이어지는 피·가해자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와 소송 위협 등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는 "생활지도부장교사, 학생부장교사는 최악의 학교 보직"이라며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안 맡겠다"고 잘라 말했다.

교사들이 학교폭력 문제를 전담하고 학생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생활지도부장 보직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격무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15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스승의 날을 맞아 진행한 '학교보직 관련 교원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107명)의 77%가 가장 기피하는 보직으로 '생활지도부장'을 꼽았다. 2위 교무부장을 택한 응답한 비율(14%)과의 격차도 상당했다.
생활지도부장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극심한 학부모 민원'이 우선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고등학교 전 생활지도부장 교사 B씨는 "학교 복도에 침을 뱉는 등 학생들의 올바르지 않은 품행을 지적하면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라는 학부모의 거센 항의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적되면 부모가 학교폭력 처리 행정절차를 꼼꼼히 따져 생활지도부장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겠다고 압박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생활지도·학교폭력 행정 업무도 과다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교사 B씨는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에서 내려오는 생활지도·학교폭력 관련 공문만 해도 한달에 수십 개"라며 "수업하고 학교폭력 사안처리하고 공문처리하느라 야근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책임만 지나치게 무겁다는 의견도 있다. 재작년 중학교 생활지도부장을 맡았던 교사 C씨는 "학교폭력 처리절차를 문제삼은 가해학생 학부모가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는데 사실상 모든 책임이 생활지도부장에게 전가됐었다"며 "다행히 일은 잘 해결됐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울타리 없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분노하고 허탈했었다"고 털어놨다.

보직을 맡은 이후 교사 정체성이 흔들려 고통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수도권 고등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 D씨는 "생활지도부장도 엄연한 교사인데 생활지도 업무에 치이다 보니 교재·강의 연구 등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요즘 교사로서 심한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학교에서는 경력이 짧은 교사나 기간제교사 등이 생활지도부장이나 학생부장 보직을 맡는 경우도 있다. 거절을 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교사들에게 '보직 떠넘기기'를 하는 셈이다.

교육현장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처리를 학교가 아니라 교육지원청이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교사 D씨는 "학교폭력 문제를 비전문가인 교사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학부모 불신이 계속되고 항의도 빗발칠 수밖에 없다"며 "학교폭력 업무를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고 사안처리도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산하 전문가 집단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총에 따르면, 이런 내용의 관련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서울시교육청도 최근 학교폭력 처리절차를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 전문위원회인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칭)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찬반 여론이 갈리지만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의 학생부 기재 폐지 요구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을 보면, 학교폭력 가해자 조치사항은 학생부에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교사 C씨는 "진로·진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학생부 기재는 학부모들이 민감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며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학생부 기재만 폐지해도 법적분쟁이나 갈등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이유로 17개 시도교육감이 참여하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3월 교육부에 학교폭력 조치사항의 학생부 기재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생활지도부장 등 기피보직에 대한 교육당국의 지원과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철 교총 대변인은 "교육당국은 업무량이 많은 보직교사들에게 이를 덜어줄 수 있는 도움인력을 지원하고 인사상 보상이나 처우 개선, 수업시수 축소 등의 혜택도 충분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j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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