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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영화 '건축학 개론'의 '사랑'에 관한 소고

황지욱의 '도시계획가란?'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8-04-26 07:08 송고 | 2018-04-26 08:42 최종수정
황지욱의 '도시계획가란?'' 표지
황지욱의 '도시계획가란?'' 표지

몇 년 전 '건축학 개론'이란 영화가 상당히 시끄러웠던 것을 기억한다. 대학 신입생 때 주인공들과 15년 후의 주인공들로 나뉜 2인 1역의 파격적 구성으로 당대 최고(?)라는 남녀 배우 4명이 동시에 화제에 올랐기 때문이다. 거기다 저리 '기괴한' 제목의 영화가 무려 러브 스토리였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연애 영화 제목이라면 '무릎과 무릎 사이', '뼈와 살이 타는 밤', '영자의 전성시대' 정도는 돼줘야 한다고, 또 겨우 그 정도 안목이나 가지고 있는 필부들에게는 말이다. 필부인 나 역시 '건축학? 저게 흥행이 될까? 저 감독 바보 아냐?' 했건만 저 영화는 아직도 유효하다. 중년 남자의 허무맹랑한 추측일 뿐이나 남자 배우들은 잘 모르겠고, 여자 주인공 역이 한가인, 수지였던 것이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스무 살 대학생 때 건축학 개론 강의를 들으며 만났던 건축과 남학생과 음대 여학생이 어찌어찌 연인이 되려다 헤어진 후 15년 만에 건축가와 건축주로 재회를 한다. 제주도에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음대 졸업생 '서연'의 집을 지어 나가는 과정에서 둘 사이에 다시 '꽁냥꽁냥'이 싹튼다는 것인데, 시야가 좁은 관객들은 배우들의 아릿한 연기만 볼 뿐 '집을 짓는 것'은 보지 못한다. 창문의 높이를 집주인 키의 어디다 맞출지, 창틀의 크기는 얼마나 하고, 모양은 어떻게 할지, 문은 여닫이가 좋을지 미닫이가 좋을지, 어떤 곳에 어떤 벽돌을 쓸지 고민하며 쌓아가는 건축 자체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을 못 본다. 
그걸 어떻게 보게 됐을까? 황지욱의 신간 '도시계획가란?'을 읽으니 그것이 보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건축학 개론' 영화 개봉소식을 들었을 때가 딱 떠올랐다. '이거 누구 읽으라고 낸 책이야? 이게 읽힐(팔릴)까? 출판사 대표가 재벌인가? 도대체 도시계획에 관여하고 관심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책에 따르면 소위 '도시계획가'는 도처에 널려 있고, 그들의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 그들은 시민의 재산 보호와 공익 사이에서 누구보다 긴장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굴까? 중앙정부는 물론 시청, 구청, 읍면의 도시계획, 도로, 조경, 건축, 건축심의, 환경영향평가, 개발이익상환, 정비계획, 규제위원회 등등 도시의 건설과 운영, 재생에 관여하는 모든 업무의 공직자와 전문가들이 도시계획가들이다. 이들의 막중한 책무는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를 필두로 제34조 1항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 제35조 '환경권', 제122조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운영을 위한 의무와 제한'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규정돼있다. 도시계획가가 지도와 도면, 문서에 쉽게 긋는 줄과 찍는 점 하나가 '힘 없는 국민의 눈물'이 되면 절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고로, 도시계획가는 국가의 근간인 헌법의 수호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문재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할 것, 과정은 공정할 것,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 중심 코리아'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돈의 노예가 되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공동체의 주인으로 행복한 도시를 만들려는 철학을 명백히 가져야 한다. 도시계획가 황지욱에게 가장 큰 영감과 철학을 준 사람은 놀랍게도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을 노래한 '고향의 봄' 시인 이원수와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선화도 한창'이라는 '꽃밭에서' 시인 어효선이다. 도시계획가인 당신은 누구로부터 철학을 세웠는가?
바야흐로 6.13 지방선거 전쟁이 시작됐다. 출마하는 모든 후보들은 이 책에 당신의 차별화된 공약이 들어있음을 명심하라. 당신이 당선되는 순간 당신은 헌법의 수호자로서 당연한 도시계획가가 된다는 것도 명심하라. 당신이 취할 정책과 자세, 철학이 이 책에 들어있다. 지금까지의 도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사랑'에 도전하라. 이 책에는 당신의 머리를 '싹 비운 후 새로 채울 여백'까지 친절하게 설계돼있다. 모름지기 책은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 예의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예의 또한 무척 바르다.

◇도시계획가란? / 황지욱 지음 / 도서출판 말·글 / 1만7000원


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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