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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선량한 흡연자들을 위한 변명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8-05-02 07:00 송고 | 2018-05-02 16:23 최종수정
© News1
“내가 정말 더러워서 담배를 끊던지 해야지…”


20년 가까이 애연가로 살아온 친구의 말이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잘 알다시피 강남의 웬만한 큰 길은 모두 ‘금연거리’로 지정돼 있다. 이 때문에 담배를 피려면 건물 뒤 으슥한 골목길을 찾아가야 한다. 


사건은 며칠 전에 발생했다. 외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피우다 단속에 걸렸다. 낯선 곳이라 그곳이 금연구역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무척이나 억울해 했다. 회사 내부에 있던 흡연구역도 없어진지 오래고 이제는 정말 마음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했다. 말 그대로 비자발적 ‘금연’을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금연구역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1년 670개소에 그쳤던 서울시의 금연구역은 지난해말 1만9201개소로 무려 27배 이상 증가했다. 실내 금연구역까지 포함하면 26만5113곳으로 늘어난다. 금연구역으로 지정은 하지 않지만 금연해야 하는 지하철역 출구 등을 포함하면 서울 면적의 3분의 1이 금연구역으로 추정된다. 


애연가에게 금연을 생각하게 만들었으니 어찌보면 금연구역 확대는 성공한 정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흡연자는 물론 심지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금연구역 확대가 ‘반쪽짜리’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우선 흡연자들은 억울하다. 세금은 세금대로 내면서 마치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못 마땅하다. 실제로 담배 한 값(4500원 기준)을 살 때마다 3318원을 세금으로 낸다. 흡연자들이 서로에게 ‘우리가 애국자’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이유다. 


금연자들도 금연구역 확대가 정답이 아니라는 걸 대부분 알고 있다. 금연구역을 확대한다고 해서 간접흡연 피해까지 막을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자주 체험하고 있어서다. 보행로는 분명 금연구역인데 길을 걷다보면 담배 연기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경계석만 넘으면 흡연구역인 곳이 너무 많다. 현장에는 가보지도 않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무조건 금연구역으로 설정해 놓은 탓이다.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이다. 전문가들은 ‘흡연부스’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단 지금처럼 형식적인 흡연부스가 아니라 제대로 담배연기를 걸러주는 흡연부스여야 한다. 그래야 흡연자들도 마음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고 간접흡연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쓸 수 있는 돈도 있다. 매년 걷어 들이는 담뱃세는 무려 11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흡연부스 설치 등에 사용한 예산은 4.4%에 불과하다. 정부 당국이 제대로 의지를 갖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이유다. 


일본 사례는 좋은 본보기다. 이미 2004년부터 흡연공간을 만들어 비흡연자와 흡연자를 충분히 떼어놓고 있다. 흡연공간의 출입형태와 내부소재, 배기 풍량 등의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흡연공간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다. 심지어 직장 내 흡연공간을 만들면 최대 설치비용의 50%까지 지원한다.


일부 비흡연자들은 흡연자들을 향해 입에 담기 힘든 비난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상당수 흡연자들은 자신이 피우는 담배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담배를 팔면서 간접흡연 피해를 막는데 소극적인 담배회사나 형식적으로 금연구역만 확대하는 정부, 이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게 아닐까.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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