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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세상에…400년째 '머슴제사' 지내는 사연

임진왜란 때 전쟁 예견하고 피난 도운 '행랑아범'
전북 부안김씨 후손들,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제사

(전북=뉴스1) 김대홍 기자 | 2018-04-20 17:58 송고 | 2018-04-20 18:09 최종수정
20일 전북 부안군 줄포면 후촌마을 뒷산에서 부안김씨 자헌공파 후손들이 자신들 조상의 노비였던 '갈처사'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부안김씨 문중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조상인 김응별에게 미리 피난을 권하고 종전 후 집안을 일으킨데 공을 세운 '갈처사'의 제사를 조상 김응별의 제사와 함께 지내라는  유언에 따라 1632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2018.4.2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20일 전북 부안군 줄포면 후촌마을 뒷산에서 부안김씨 자헌공파 후손들이 자신들 조상의 노비였던 '갈처사'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부안김씨 문중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조상인 김응별에게 미리 피난을 권하고 종전 후 집안을 일으킨데 공을 세운 '갈처사'의 제사를 조상 김응별의 제사와 함께 지내라는  유언에 따라 1632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2018.4.2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전북 부안군 줄포면 후촌마을 뒷산에서는 매년 음력 3월5일이면 특별한 제사가 봉행된다.

1600년대 초반 이후 400여 년 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열리는 이 제사가 특별한 이유는 제사의 주인공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한 집안의 머슴(행랑아범)이라는데 있다.
머슴을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그가 주인으로 모셨던 사람의 후손들이다.

양반의 후손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먼 옛날 조상의 머슴을 위해 제사를 올리는 사연은 무엇일까.

후손들에 의해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 사연은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안현 건선방(지금의 줄포면)에 살고 있던 진사 김응별(1538~1631)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행랑아범으로부터 ‘곧 나라에 큰 난리가 닥칠 것이니 가족들과 함께 멀리 피난을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게 된다.
행랑아범은 시대를 읽는 눈이 뛰어났고 종종 앞날을 예지하는 능력도 있었다고 한다.

김응별의 큰 형인 응린과 둘째 형인 응규는 ‘쓸데없는 소리’라며 행랑아범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김응별은 행랑아범의 말을 듣고 자신의 가솔들과 함께 줄포 포구에서 배를 타고 서해의 먼 섬인 왕등도로 들어갔다.

섬에서의 생활이 10년이 다되어갈 무렵, 행랑아범은 이제 난리가 그쳤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섬 생활을 정리하고 뭍으로 나온 김응별의 눈앞에는 믿기 어려운 참상이 펼쳐졌다.

조선 중기 전북 부안의 선비였던 자헌대부 김응별의 신도비각.2018.4.2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조선 중기 전북 부안의 선비였던 자헌대부 김응별의 신도비각.2018.4.2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행랑아범의 제안을 거절하고 육지에 남았던 큰 형 응린은 왜적의 칼날에 이미 운명을 달리했고, 둘째 형 응규는 거지꼴을 한 채 겨우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졸지에 가장이 된 김응별은 기울어지고 폐허가 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폐허가 된 논밭을 경작하고 줄포만의 갯벌을 메워 농토를 넓혀갔다. 이 과정에서 행랑아범은 김응별의 수족노릇을 하며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가뭄이나 홍수가 들어 이웃 주민들이 굶는 상황이 되면 행랑아범은 조심스럽게 구휼미를 내어주자고 건의했고 김응별도 넉넉하게 식량을 풀었다. 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는 집에는 미역꾸러미와 얼마간의 쌀을 보내 조리를 하는데 돕도록 했다. 차츰 근방에서는 김응별의 선행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세월이 흘러 행랑아범은 불귀의 객이 되었고 94세까지 장수를 누린 김응별도 세상을 떠날 즈음이 되자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제삿날이 되거든 행랑아범도 함께 제사상을 마련하고 자신과 똑같이 예우하도록 이른 것이다.

이후 김응별의 자손들은 1632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행랑아범의 제사를 함께 모셨다.

부안김씨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는 '갈처사'의 묘에 불망선은지묘(선대가 입은 은해를 잊지 않겠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2018.4.2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부안김씨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는 '갈처사'의 묘에 불망선은지묘(선대가 입은 은해를 잊지 않겠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2018.4.2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행랑아범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집안에서는 ‘갈(葛)처사’라고 지칭된다. 김응별의 묘 바로 인근에 있는 갈처사의 묘비에는 그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이 ‘불망선은지묘(不忘先恩之墓)’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선조가 입은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20일 현지에서 열린 제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살고 있는 김응별의 후손 200여명이 참석해 자신들의 조상과 행랑아범의 은혜를 기렸다.

김풍옥 부안김씨 자헌공파 전 회장(80)은 “우리 조상님의 곁에서 집안을 보전하고 일으켜 세우는데 힘을 보탠 분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약속을 천금처럼 지키고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지금까지 400여년간 이어져 왔듯이 앞으로 후세들도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95minky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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