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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국민 화나게 하는 ‘대한항공 3세들’

(서울=뉴스1) | 2018-04-19 11:33 송고 | 2018-04-20 14:10 최종수정
뉴스1 © News1
50년 동안 대한항공 비행기를 이용했으니 나는 대한항공의 단골 고객일 듯싶다. 될 수 있으면 대한항공 비행기를 선택했으니 충성 고객일 만도 하다.  

내가 “단골 승객이고 충성 고객”이라고 주장하면 아마 대한항공 오너 가족은 이렇게 말하며 웃고 말 것 같다. “당신보다 우리 비행기를 더 많이 탄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소.”  
맞다. 대한항공이란 간판을 달고 민항기 영업을 한 게 1968년이고, 제2민항 아시아나항공이 비행기를 띄운 게 1988년이니 그 20년 동안 비행기 여행을 했던 한국인은 꼼짝없이 대한항공 단골 승객이고 충성 승객이었으리라. 이제는 저비용항공사들이 많이 등장해서 꼭 대한항공을 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세계 주요 도시에 노선을 확보하고 운항 노하우가 쌓인 대한항공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인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대한항공이 ‘대한’(Korean)이란 이름을 쓰고 태극마크 로고를 단 국적기(Flag-carrier)로 세계의 하늘을 누비게 된 것은 바로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탐스러운 승객들이 존재하는 덕택이다. 비행기를 한 번 타든 수백 번 타든 국적기에 애착을 갖게 되고 그래서 한국인은 ‘국민 승객’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대한항공이 위기다. 항공 안전과 직접 관련된 운항이나 기술적 위기가 아닌 것이 다행이지만, 어쩌면 그런 물질적 위기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 위기다. 
경영에 참가하고 있는 총수 자녀들의 소위 상궤를 벗어난 불법 행위와 ‘갑질 행태’가 종업원, 협력업체 관계자, 고객의 자긍심을 추락시키고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둘째 딸 조현민 전무는 협력업체인 광고대행사 직원과 업무 회의를 하다가 화가 나자 욕설을 하며 물컵을 그 팀장을 향해 뿌린 혐의로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사회적 비난이 들끓고 파장이 확대되자 대한항공 측은 경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조 전무를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물컵 갑질에 앞서 3년 전 ‘땅콩회항’ 사건이 있었다.  

2014년 12월 조현민의 언니 조현아 당시 부사장이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승무원의 서비스 태도를 문제 삼아 이륙을 위해 이동하는 비행기를 후퇴시켜 사무장을 기내에서 쫓아낸 ‘땅콩 회항’ 사건이 아직도 국민들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 조 부사장은 사회적 비난이 일자 부사장직을 사퇴했으며 재판에 회부되어 작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폭행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조 부사장은 지난 3월 한진그룹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대한항공 경영진의 과거 행태로 볼 때, 일단 여론이 가라앉으면 다시 조현민 전무를 복귀시키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계열회사의 경영진으로 보내려 할 것이다.    

대한항공 경영진은 이번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 소동을 회사 내에서 일어난 부적절한 행위 정도인데 여론몰이가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건이 일어나자 온갖 제보가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사실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소위 창업자 3세들이 법에 위배되는 파행적인 행태, 사원과 협력업체 직원에 대한 모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는 기업총수들이 벗어던졌어야 하고, 국민들도 이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은 곧잘 봉건영주에 비유된다. 재벌 오너가 독단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자녀들에게 그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한다. 대한항공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물 컵 소동의 장본인 조현민 전무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항공안전법에는 외국 국적인 사람은 항공사 등기이사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조현민 전무는 법을 어기고 대한항공 계열의 ‘진에어’의 등기이사로 5년이나 재직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항공서비스의 품질은 경제력, 기술력, 문화 등을 포함하는 한 나라의 품격과 권위가 스며들어 있다. 같은 보잉사의 비행기를 보유한 항공사일지라도 그 항공사 소속 국가의 이미지에 의해 신뢰도가 달라진다. 그 이유는 예약시스템, 정비, 기내서비스체제, 항공안전관리, 조종사의 훈련 및 능력 등 종합적인 국력의 영향을 항공사가 받기 때문이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주력 항공사들이 일반적으로 질 좋고 안정적인 항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사는 국민적 자긍심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게 일반 기업과 다른 항공사의 특성이고 프리미엄이다. 

물론 항공사 스스로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구식비행기 몇 대를 갖고 세계적인 항공사의 토대를 닦은 창업자 조중훈의 기업가 정신, 빈약한 장비와 공항시설을 극복한 조종사 및 객실승무원 그리고 지상요원들이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가 오늘의 대한항공이다. 

문제의 대한항공 총수 자녀들은 좋은 환경 아래서 국내외 대학에서 최고의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마 이들이 그들의 실력을 갖고 창업을 하거나 국내외 회사에 들어갔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은 인재들이다.   

물론 이들은 회사 안에서 다른 사원에 비해 주인의식이 강하고 의욕도 높고, 상속자들이란 심리적 우월감을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 밑바닥에서 일하거나 남의 회사에서 쓰라린 경험을 하며 일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절제와 협업을 알지 못할 것이다. 비단 대한항공만 아니라 많은 재벌 3세 후계자들이 안고 있는 환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한항공이 ‘대한’이란 이름과 태극마크를 달고 국민적 성원을 받으며 날아다니려면 환골탈태의 경영쇄신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모든 게 안전과 연결되는 항공사는 다른 기업과 달라야 한다. <뉴스1 고문>


jjy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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