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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한경희 대표와 짜라투스트라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8-04-11 09:13 송고
© News1
몇 년 전 생활가전 업체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는 기자에게 책 한 권을 추천했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한 대표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고 소개했다.
철학 전공자들도 난해하다고 느끼는 책이다. '초인'이라는 개념으로 니체의 방대한 허무주의 사상을 녹였다. 니체 책을 추천하는 여성 최고경영자(CEO)라니……

당시 한 대표를 처음 만난 기자는 기존에 알던 중소기업 CEO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편견이나 통념일 수 있지만, 보통 CEO는 자신의 경영 철학이나 경험을 자신감있게 말한다. 이른바 '상인의 현실감각'이 두드러진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인문학도임을 자처하던 한 대표는 상인보다는 선비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업을 할 때 한 대표는 모험적으로 변했다. 한 대표는 스팀청소기를 앞세워 창립 11년 만에 매출이 10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에겐 '여성벤처계 신화'란 찬사가 따랐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교훈은 그에게도 해당됐다. 한 대표는 스팀다리미, 프라이팬에 이어 화장품까지 사업 품목을 확대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자본잠식에 빠진 한경희생활과학은 결국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경영 외적으로도 구설에 올랐다. 이 기간 전화 통화 연결이 되면 한 대표는 자주 울먹였다. 업계에선 "한경희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한 대표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했고 신제품 스팀다리미도 출시했다. 지난 10일 신제품 출시 기자회견에는 수십 명의 기자가 모여 질문을 쏟아냈다. 그의 경영 능력에 물음표를 붙이는 질문도 적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한 대표가 과거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표는 "회사 위기는 사업 다각화에 따른 대량 제품 생산에서 불거졌다"며 "제품 재고를 떠안으면서 대규모 손실로 이어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렌탈(대여) 사업에 나선 것도 이런 깨달음 때문이다. 리스크가 큰 사업 다각화를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주력 사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일종의 '이상향'이다. 그러나 이는 막역한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냉정한 현실을 긍정하고 자신을 극복해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고객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가장 잘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인 '스팀 기술'을 앞세운 제품을 '재기작'으로 선택한 것은 긍정적이다. '1세대 여성벤처인' 한 대표의 도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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