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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도 끄떡없는 '제주 밭담' 이색풍경 속 애끓는 사연

밭담 합한 길이만 2만2108㎞…지구 반바퀴 길이

(제주=뉴스1) 김현철 기자 | 2018-04-01 13:34 송고 | 2018-04-01 15:33 최종수정
제주 구좌지역 밭담(제주특별자치도)
제주 구좌지역 밭담(제주특별자치도)
 
삼다도(三多島, 돌·여자·바람이 많다는 의미)라 불리는 제주에는 돌로 쌓은 담이 밭을 휘감고 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바다와 어우러진 이색 풍경에 도시사람들은 매료되곤 한다.

하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이 밭담에는 도민들의 애끓는 사연이 숨어있다. 
화산섬으로서 현무암이 많은 제주의 땅은 척박한 농업환경을 가져왔다. 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지어야 했던 섬사람들은 황무지의 돌덩이를 골라내야 했고, 밭 근처에 던져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차곡차곡 쌓여 밭담이 된 것이다.

제주에서는 바람 때문에 밭을 규모화 하기가 어려워 밭의 넓이를 늘리는 대신 여러 개의 밭을 조성하고, 밭의 경계를 돌로 표시했다. 결국 도시민들에게 예뻐 보이기만 하는 밭담은 악조건의 농업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생긴 독특한 농업시스템인 셈이다.

밭담의 틈새는 바람을 흘려 보낸다.(제주밭담 6차산업화 사업기반 구축사업단)
밭담의 틈새는 바람을 흘려 보낸다.(제주밭담 6차산업화 사업기반 구축사업단)
 
밭담은 강한 바람을 막아 작물을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됐다. 허술하게 쌓은 듯해도 밭담은 돌과 돌 사이에 난 틈으로 어떤 강한 태풍이 불어닥쳐도 넘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생물종과 농업문화를 보존하는데 보탬이 됐다.
1234년에는 제주판관 김구의 지시에 의해 재산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한 밭담을 쌓기 시작하면서 경계용 기능이 추가된다. 멧돼지나 노루 등 야생동물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는 경우도 있었다.

제주 전역을 띠처럼 두르고 있는 밭담을 두고 제주도민은 검은색을 띠고 있는 현무암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구불구불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흑룡을 닮았다 해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부르기도 한다.

밭담은 길이가 2만2108㎞에 이른다. 이는 지구 한바퀴(약 4만㎞)의 반을 넘는 길이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밭담의 독창적인 농업 문화와 생물 다양성을 보전해 지속 가능한 농업을 성취하고 농촌개발을 유도한 점을 인정해 2014년 세계농업문화 유산(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으로 지정했다.

이는 제주도민 차원에서는 지천에 깔려 있어서 중요성을 몰랐던 밭담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자손만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깨닫는 기회가 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담 같아 보이지만 밭담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로 일반인들은 밭담 위에 돌 하나 올려 놓기도 힘들다.

강승진 제주밭담 6차산업화 사업기반 구축사업단장은 "밭담을 쌓는 장인(돌챙이)이 제주 읍면 별로 5~6명이 있다"며 "돌챙이들은 밭담 1m를 쌓는데 50여만원, 초보자는 15만원을 번다"고 말했다. 

밭담을 쌓기 위해서는 우선 돌챙이가 담의 밑에 부분 돌인 굽자리를 놓는다. 그러면 기술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그 위에 거스름돌을 착착 쌓아올린다.

밭담을 보고 있으니 제주의 그 옛날 할아버지와 손자가 담을 쌓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하르방(할아버지), 굽자리 놉써(놓아주세요)." "어, 알아쪄(알았어)." "손지(손자), 이거 호끔(조금) 우티(위에다가) 잘 씰으라이(쌓아가라)."

구멍난 담 사이로 보이는 밭(제주밭담 6차산업화 사업기반 구축사업단)
구멍난 담 사이로 보이는 밭(제주밭담 6차산업화 사업기반 구축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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