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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혁명]미투 속 침묵하는 다수…'위계구조에 길든 타성' 바꿔야

유명인사 '미투'는 활발…대다수 시민은 냉가슴만
전문가 "나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 심어줘야"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18-03-08 05:00 송고 | 2018-05-28 16:00 최종수정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추한 민낯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춰지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현직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로 옮겨 붙는가 싶더니 학계로, 종교계로, 정치권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예상컨대 이 불길이 쉽게 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꺼져서도 안 된다. 그러려면 지금처럼 폭로성, 일회성으로 일관된 미투 운동은 재고되어야 한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뉴스1은 현재 진행형인 미투 운동을 점검하고 대한민국의 대변혁을 위한 이 운동의 방향성을 짚어 봤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우린 그저 학생이잖아요.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라는 이름의 태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지금, 미투 운동을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유명인이나 정치인, 연극계의 거물이 아니다. 직장상사나 군대 선임, 친인척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피해자 역시 지극히 평범한 시민일 뿐인 '침묵하는 다수'들이다.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미투'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유명인'이다. 7일 경찰청이 밝힌 '미투 수사대상' 40명 중 유명인은 32명(78%)이다.

반면 친족 성범죄 신고율은 4.6%에 불과하다.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피해자 10명 중 8명은 '그냥 참는다'고 답했다. 지난 5년간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신고는 불과 41건뿐이다. 군대내 성폭력 가해자의 처벌률은 16.4%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미투운동은 가해자가 유명인이거나, 피해자도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을 위주로 퍼지고 있다"고 짚으면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적 약자를 보듬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장기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경직된 위계질서'를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페이스북 '대나무숲'에서 갈무리)© News1
(페이스북 '대나무숲'에서 갈무리)© News1

◇친족 성범죄 100명 중 96명은 신고도 못 해…신고율 4.3%

대학생 임모씨(21·여)는 불과 2년 전 친척으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던 피해를 고백했다. 임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척이 제 방에 들어와 지속적이고 상습적으로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했다"고 털어놨다.

두 눈으로 영상까지 확인한 임씨가 가족들에게 피해를 알렸지만 돌아온 것은 상처뿐이었다. 임씨에 따르면 가족들은 '남자가 실수할 수도 있지' '걔가 사춘기라서 그래'라며 가해자를 옹호하기 바빴다.

심지어 현재까지도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하면 '지난 일로 아직도 그러는 네가 더 못됐고 이기적이다'라며 2차 가해를 했다고 임씨는 밝혔다.

친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사람은 이씨 뿐만이 아니다. 대학생 A씨(25·여)는 페이스북 '대나무숲'에 삼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털어놨다.

"자신을 성추행했던 성범죄자랑 매년 얼굴을 보는 사람이 저 말고 또 있을까요?"라는 말과 함께 사연을 고백한 A씨는 "친가 삼촌이 저를 방으로 데려가서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다"며 "이제 잊을 만도 한데 여전히 생생하다" "진짜 끔찍하고 볼 때마다 뭘 잡고서라도 후려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16 한국성폭력상담소상담통계'의 '친족성폭력 피해 세부통계'에 따르면 2016년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범죄 피해 1353건 중 가해자가 친족이나 친인척인 경우는 10.1%(137건)에 달했다. 2017년에는 8.4% 늘어난 143건이 접수됐다.

피해 유형으로는 △강제추행(52.6%) △강간(32.8%)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피해 지속 기간은 △1년 이상 피해(21.8%) △5년 이상 피해(11.9%)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적대응을 하는 경우는 4.3%에 그쳤다.  

친족에게 성범죄를 당한 100명의 피해자 중 96명은 온전히 혼자서 상처를 감내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제공)© News1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제공)© News1

◇직장인 10명 중 3명 '성폭력' 노출…8명은 "당하고도 참는다"

직장에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도 냉가슴을 안고 속앓이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지난 6일 발표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80% 이상이 '직장상사'에 의해 가해지고, 직장인 10명 중 3명은 '권력형 성폭력'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노총이 산하조직 조합원 714명을 대상으로 벌인 이번 실태조사에서 '직접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115명(16.1%)이었고, 성희롱을 직접 겪진 않았지만 주변에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을 안다고 답한 사람은 91명(12.7%)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희롱은 '회식 장소(77.2%)'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고, 성희롱 유형은 불쾌한 성적농담(78.2%)과 부적절한 신체접촉(64%)이 압도적인 수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사람 중에서 '그냥 참는다'고 답한 직장인은 무려 76.7%(158)를 차지해 피해만 있고 처벌은 없는 한국 직장문화의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 결과 지난 5년 동안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신고는 41건에 그쳤다.

최근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는 폭로에 따른 부담과 불이익 등 2차 피해를 우려해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기 어려워하고 있는 현실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군대 성폭력 신고해도 처벌률 16%…"공공의 적 될 뿐"

군대 내 성폭력 실태도 나을 것이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군사법원 공정한 재판·지휘관계 성범죄 가중처벌 등 권고'에 따르면 지난 4년 동안 접수된 '군대 내 성폭력 건수'는 총 189건이다.

하지만 이중 불과 31건(16.4%)만 처벌을 받았다. 가해자 처벌 결과에 따르면 △기소유예 16건 △혐의없음 11건 △선고유예 9건 △공소권 없음 4건 △무죄 3건 △공소기각 1건 순으로 사실상 '무죄' 판단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군대내 성폭력 사건 처리관련 문제점'이라는 항목을 통해 △부적절한 법률 적용 △온정적 처벌 △성범죄자 등록정보 공개명령 미활용 등 문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간사(예비역 해병대 대위)는 "군대는 폐쇄성과 위계질서가 상당히 강한 집단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더는 복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야만 문제가 불거진다"면서 "피해자가 직접 신고를 하거나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신고를 하더라도 실제로 가해자가 처벌받는 비율은 상당히 낮다"며 "무혐의나 불기소로 처리되고, 징계를 받더라도 견책이나 경고 등 경징계로 끝나고, 그 부담은 피해자가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방 간사는 특히 "민간에서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면 피해자를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지만 군대 내 성범죄는 결국 군대 내부에서 처리된다"며 "피해자로서는 '내가 신고를 하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피해자는 오히려 군대 내의 '공공의 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는 좋든 싫든 복무기간 동안 국방부 내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2차 피해가 지속적으로 가해지기 쉽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피해자 보호제도 마련하고 '위계질서' 뿌리뽑아야"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는 고발에 따른 부담과 불이익 등 2차 피해를 우려해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기 어려워한다"고 분석하면서 "특히 우리 사회의 '을(乙)' 들인 일반 시민도 '나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 세상 변호사는 "미투(#Me too)운동의 목적은 왜 피해자가 오랜 기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피해를 입고도 계속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에 있다"면서 "그 원인은 권력 관계와 우월적 지위, 폭로 이후 본인의 신분이나 직업이 안전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사람들이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이슈가 되다보니, 우리 주변 일상에서 성적 착취를 하는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문제제기가 오히려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교수로부터 성희롱과 막말을 들었다고 주장한 여대생 A씨는 "최근 이슈가 된 이윤택 성폭행 사건만 해도 폭로자가 한 극단의 대표"라면서 "그저 학생일 뿐인 제가 피해를 고백하더라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공론화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피해는 다 같다"며 "가해자나 피해자가 유력인사가 아닐 경우 피해자가 미투를 한다고 해서 바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거나, 가해자가 드러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피해자는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임을 드러내는데 가해자는 여전히 법적 공방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남는 꼴"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따라서 유명인사의 사건은 쉽게 공분의 대상이 되지만 오히려 일반인이나 학생의 불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면서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한 이후에도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피해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억제하는 구체적인 매뉴얼과 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위계질서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미투운동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실장은 "과거부터 한국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위계질서'와 그로인한 경직된 문화·인식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을 부추기고 은폐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면서 "가족관계부터 '위계화'가 시작되고 모든 조직과 관계에서 갑과 을을 규정짓는 것이 '정상'이라고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위계구조에 길든 타성'을 미투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이자 미투운동이 종국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목적"이라고 규정한 이 실장은 "권력에 의해서 개인의 가치가 판단될 수 있다는 인식과 경직된 구조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dongcho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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