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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삼성의 과거, 그리고 이재용의 미래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2018-02-28 06:23 송고
검찰이 다스 측 변호사 비용이 삼성 측에서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해 지난 8일 오후부터 9일 새벽까지 삼성전자 본사와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등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 2018.2.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검찰이 다스 측 변호사 비용이 삼성 측에서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해 지난 8일 오후부터 9일 새벽까지 삼성전자 본사와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등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 2018.2.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삼성그룹은 과거를 살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데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과도 얽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사흘 만에 삼성 서초사옥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보란 듯이 이뤄진 압수수색에 삼성은 얼어붙었다. 출근할 날만을 손꼽던 이 부회장 역시 공식적인 출근경영을 하지 않고 있다. 모처에서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23일 삼성전자 이사회와 화성 반도체사업장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기공식에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참석 여부를 두고 막판까지 고심했지만 참석을 포기했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의 심적 부담과 고통이 크리라 짐작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부회장이 주저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시간은 삼성의 사정을 봐주지도,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정글 같은 글로벌 IT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얼굴을 바꾸고 있다. 글로벌 IT공룡들은 대규모 M&A(인수합병)와 기습적인 투자로 경쟁사들의 팔다리를 묶는다. 삼성전자의 오랜 파트너사이자 세계 최대 모바일 칩 업체 미국 퀄컴을 그보다 몸집이 작은 싱가포르계 브로드컴이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머니게임이 한창이다. 세계 3위가 4위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4위가 3위를 먹겠다는 지각변동이 판을 흔들고 있다. 이때문에 업계에서는 퀄컴이 인수를 추진 중인 네덜란드 자동차 반도체회사 NXP를 삼성전자가 인수하는 '빅딜'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세계 1위 메모리반도체 사업도 자신할 수만은 없다. 지난해 유례없는 초호황의 끝을 점치는 고점논란으로 소란하다. 수급이 가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올해 하반기부터 호황이 꺾일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통상압박과 중국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굴기는 이 분야 삼성전자의 세계 1위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깎아지른 절벽이다. 삼성전자 경영진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지 1년,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관리의 삼성'은 조금씩 무너졌다. 삼성 같지 않다는 위태로움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난폭하게 흐른 1년이란 시간동안 조직은 무뎌졌다. 각 계열사와 사업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내부의 공통된 평가다.

길었던 총수공백의 시간만큼 이 부회장의 어깨에 내려진 짐들은 무겁다. 조 단위 투자결정과 1년간 번번이 놓친 M&A, 미국과 중국, 인도 등 각국 정상을 비롯한 최고위층 인사들과의 네트워킹 재개는 전문경영인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서 "이 부회장은 (평소) 저 같은 전문경영인이 만나서 딜을 할 수 없는 거래선 책임자를 직접 만나서 도와주셨다. (이 부회장이)나오신 지 얼마 안됐는데 그것만으로 마음이 편하다"고 한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의 말도 같은 맥락이리라.

이처럼 이 부회장이 받아든 삼성의 무게는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함에도 자신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를 향한 국민적 공분과 검찰의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는 그를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 2심에서 경영권 승계 청탁 의혹을 벗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 등 과거의 그림자도 여전히 그를 옭아맨다.

아프겠지만,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쌓아올린 삼성의 빛과 그림자는 그가 넘어야할 관문이다. 삼성 임직원들은 과거와의 단절과 이재용이 보여줄 새로운 삼성을 기대한다. 고비고비마다 등장하는 과거의 어두운 잔재는 오롯이 그가 감당할 몫이겠으나, 그가 말했던 새로운 경영을 위해 멈춰설 이유는 되지 못한다. 대법원 판결의 결과가 어떠하든 커튼 뒤에서 숨을 고를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된다. 어떤 질문에는 답이 없다. 결국은 자신이 찾아내야할 답안지다. 양복을 고쳐 입고 구두끈을 다시 묶으며 부담 가득한 스포트라이트 앞에 설 때다. 그가 재판에서 몸을 떨며 이야기한 '기업인으로서의 꿈'의 첫 발걸음을 볼 수 있기를 출입기자로서 기대한다.


se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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