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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전20기만에 합격-3대째 제복…새내기 경찰들, 또 다른 꿈꾼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오기로 버텼다" 오뚝이 순경
"언어만큼은 자신" 美 미식축구선수 출신 순경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전민 기자, 차오름 기자 | 2018-02-23 10:14 송고
(경찰청 제공) 2017.8.4/뉴스1
(경찰청 제공) 2017.8.4/뉴스1

새내기 경찰 1453명(제292기)이 23일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에서 졸업식을 갖고 대민봉사의 일선에 나선다. 제복의 삶을 살게 될 이들이 경찰에 입문한 동기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목표는 하나로 귀결된다. 국민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신임 경찰관들을 당찬 포부를 들어본다. 
◇19전 20기만에 '합격'…오뚝이 경찰 "꿈만 같아요" 

정지원 순경. © News1

정지원 순경(37·경기북부청 고양서)은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려 20번의 도전 끝에 '경찰'의 꿈을 이뤄낸 '끈기의 상징'이다.

중앙경찰학교에서 졸업식을 위해 예행연습 중이던 정 순경은 22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도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정 순경은 292기 동기 중 가장 나이가 많다. 2009년부터 무려 20번이나 경찰공무원 시험을 봤고, 19번의 탈락 끝에 '합격'을 손에 쥐었다.

경상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정 순경은 2010년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직후 그는 잠시 고민했다. 어릴적부터 꿈꿔온 경찰관을 할까, 아니면 창업을 할까, 두 길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가 인생 선배인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경찰이 되기로 마음을 돌렸다. 

활동적이고 친구도 많은 정 순경에게 8년이라는, 이른바 '공시생'생활은 가시밭길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시험공부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정 순경은 "아르바이트를 중간 중간에 하다보니 준비기간이 길어졌다"며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는 것은 힘들고, 그렇다고 놀 수도 없기에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고 들려준다.
20대와 30대 초반을 오롯이 수험생으로 보낸 정 순경에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많았다"고 답한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직장을 잡고, 결혼해 몇몇은 부모까지 된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만 접자"는 마음이 여러 차례 들었지만 정 순경은 포기라는 생각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역시 그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가족이었다. 19번째 시험에서도 낙방한 그는 공부를 하던 노량진에서 짐을 챙겨 고향 진주로 내려갔다. 그는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시고도 제 뒷바라지를 위해 바로 또 취업을 하시고, 나 때문에 집에 계속 부담이 가는 것 같아 '이제 정말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결국 그는 부모님께 "포기하겠다"며 울먹이며 말했다.

그런 정 순경에게 아버지는 오히려 "아직 미련이 남았으면 한 번만 더 해보라"고 설득했다. 아버지는 "내가 빚을 내서라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은 하게 해주겠다"고 정 순경을 다독였다. 바로 다음날 챙겼던 짐을 다시 들고 노량진으로 향한 정 순경은 20번째 시험에서 비로소 '합격'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정 순경은 "젊은날을 모두 경찰 시험에 투자한 세월이 억울해 '오기'로 버텼다"며 "시험을 포기하면 나의 젊은날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다. 그랬더니 경찰 아니면 하고 싶은 게 없더라"고 말했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해 여름, 경찰중앙학교에서 34주간 교육 내내 힘들기는 커녕 행복하기만 했다는 정 순경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의 급박한 마음과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다"며 "꿈만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적부터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을 좋아해 경찰 경호 사이카부대 업무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3대째 경찰 제복…"아버지처럼 교통경찰 하고파"

임승용 순경. © News1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멋있고 공정한 경찰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버지·할아버지에 이어 3대째 제복을 입게 된 임승용 순경(27·경기 남부청)은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임 순경의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부터 근무를 해온 '원조경찰'이다. 부친 또한 경기 남부청에서 교통경찰로 근무한 경찰관이었다. 말 그대로 경찰가족인 셈이다.

'경찰 집안'에서 자란 임 순경은 어린 시절 부친(임재현 경장)을 사고로 잃었다. 임 순경이 6살 꼬마였던 1997년, 교통경찰이었던 임 경장은 음주단속 근무 후 퇴근길에 중앙선을 침범한 화물차량에 의한 사고로 순직했다.

하지만 경찰 사이카를 타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 멋진 제복을 입고 표창을 받는 아버지의 사진을 매일 보며 자란 임 순경은 경찰의 꿈을 키웠다. 순직한 아버지를 대신해 사랑으로 보살펴준 할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군 복무를 마치고 어학연수를 하며 평소 부족했던 영어실력을 키운 임 순경은 1년간 순경 공채 시험준비를 해 2번째 응시만에 덜컥 합격했다.

"남들도 다 그렇겠지만 정말 1년 동안은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최종합격자가 발표됐을 때 믿을 수가 없이 기뻐서 수험번호를 몇번이고 확인했던 것 같아요."

1주일에 5일을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노량진에서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를 해 학원비와 생활비를 해결하며 공부한 임 순경은 가족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임 순경은 "순직한 아들을 일찍이 떠나보낸 할머니는 처음에는 손자 걱정에 제가 경찰이 되는 것을 만류하셨다"면서 "그러나 저의 의지가 강하니까 '항상 조심하라'며 응원해주셨다"며 웃었다.

임 순경은 아버지 임 경장과 같은 훌륭한 교통경찰이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는 "아버지 같은 훌륭하고 공정한 교통경찰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서도 "지금은 첫 근무지인 파출소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美 미식축구 선수 출신…욕심 많은 김 순경 "언어만큼은 자신"
김준혁 순경. © News1

"제가 욕심이 많아요. 동남아국가의 언어도 배워서 보이스피싱 등 국내 외국인 범죄를 직접 검거하고 싶어요."

미국에서 고교시절 미식축구선수로 활동했던 김준혁 순경(24·서울청 종로서)은 경찰로서 첫발을 떼는 포부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김 순경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가 4년 동안 노틀담고교 미식축구팀 소속으로 활약했다. 외국어와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는 김씨는 "중국어 베트남어 말레이시아어 등 경찰 실무에서 요긴하게 쓰일 만한 언어를 배우려 한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영어에 더해 스페인어 의사소통도 가능하다는 김순경은 중국어와 베트남어, 말레이시어 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얼마 전 중국인과 말레이시아인이 연관된 보이스피싱 범죄가 있었다"며 "요즘 외국인 범죄가 많다고 느끼는데 실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영어에 관심을 보인 김 순경은 중학교 재학 시절 영어 말하기대회 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러나 김 순경은 한국에서 입시 위주 공부에 지쳤고, 2009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학교가 미 서부지역이고 사립학교다보니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면서 "경찰이 범죄수사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기회가 주어졌던 이 시절이 값지게 느껴진다"고 고교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시카고 유학 시절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놨다. 유학 초기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니 알아듣기 어려운 은어로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 교내 미식축구팀에 들어갔다.

김 순경은 "매일 수업을 마치고 3~4시간씩 훈련할 정도로 운동에 매진했다"면서 "시즌이 끝나고 대학교 2부리그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당시 고교스포츠 주관 언론사에서 '꼴찌'를 예견했던 노틀담고교팀은 김 순경이 4학년이던 해 진행된 리그에서 4위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김순경은 "20년 동안 꺾지 못한 막강한 상대를 49대 27의 점수로 이겼다"며 "당시 경기를 시작할 때 맨 처음 상대와 몸을 부딪쳐야 하는 '디펜스라인맨'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운파출소에서 실습하는 요즘은 퇴근 후 바로 헬스장에 가서 2시간씩 운동한다"고 말했다.

김 순경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다녔던 애리조나주 퍼듀대학교 우주항공공학과에 진학했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출중한 영어실력은 군대에서도 빛났다. 그는 해병대 장갑차 조종수로 복무하며 한미 해병대 상륙작전 훈련, 코브라골드 훈련 때 통역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군인으로 경기 평택, 경남 진해, 태국 등을 오가면서 김 순경은 국가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는 "군 시절 나라를 위해 봉사하며 자부심을 느꼈다"며 "경찰관이 되면 언어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욕심이 많다'고 표현한 김 순경은  "경찰관이라는 국가공무원으로서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비로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에 도전할 생각이다"며 "장점인 외국어능력을 살려 국제범죄수사대에서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jung9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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