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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한 비행기를 탄 승객과 승무원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2-14 15:00 송고 | 2018-03-02 15:42 최종수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기네스북에는 론 아카나라는 사람이 아메리칸항공에서 63년 동안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고 2억 마일을 비행했다고 나온다. 참으로 비행을 좋아하고 승무원 일을 좋아했던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해외여행은 흔하지 않았고 제약이 많아 국제항공편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고학력 인재들이었다. 선망 받는 직업으로 자부심도 높았다. 보수도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경쟁이 치열해서 자연스럽게 수준급의 외모와 체격조건을 갖추었다. 특히 조종사들 못지않게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요즘은 미국, 유럽 할 것 없이 큰 도시는 하루에도 두 편씩 나가지만 옛날에는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이었고, 따라서 한 번 나가면 현지에서 오래 머물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견문이 넓어지고 국제적인 안목을 갖춘 인재가 되는 ‘특전’도 있었다. 여성 승무원의 경우 일등 배우자감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부인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부인도 승무원 출신이다.

1912년에 비행선에 탑승했던 하인리히 쿠비스라는 사람이 세계 최초의 승무원이다. 여성 승무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의 엘렌 처치라는 25세의 여성인데 간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항공사들도 간호사 승무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1936년 무렵에는 여성 승무원이 남성을 거의 다 대체해버렸다. 남성 승무원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였다.

자격 요건은 매우 엄격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연령 제한뿐 아니라 거의 조종사급의 신체적, 건강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외모도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당시 항공사들은 여성의 멋진 외모가 고객의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게 하고 흰 장갑과 하이힐을 착용하게 했다.

승무원들의 역할이 재조명되는 계기는 911 테러다.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비행기들의 많은 승무원이 생사의 기로에서도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침착하게 최선을 다했고 항공기 내 상태를 관제탑에 알려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 후로 승무원과 승무원의 역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5년 전 아시아나의 샌프란시스코 사고 때도 승무원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이 빛났었고 승무원들이 재평가 받았다.

비행기 승무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항공기와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음식이나 음료수를 주는 기내 서비스 모습이 가장 많이 보이고 승무원들이 대개 여성이기 때문에 이 점을 쉽게 잊는다. 유사시에 이들의 사고 대처 능력, 컨디션, 심리 상태에 우리 생명이 달려있다. 긴급 의료상황이 발생하면 처치하는 사람들도 승무원들이다. 키가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하는 조건도 머리 위 짐칸에 비치되어 있는 안전 장비에 손이 닿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무원에 대한 기내 폭행, 추행, 희롱은 엄격하게 규제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피해자에 대한 범죄임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행동이다. 조종사에 대한 그런 행동과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라면 상무’ 사건, ‘땅콩 회항’ 사건 같은 과한 경우 말고도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에게 지나치게 구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띈다. 우리는 비행기만 타면 왕, 여왕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특이한 심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사소한 불편으로도 승무원들에게 불평을 한다.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것은 우리 국적 항공사들이 필자가 보기에 좀 과할 정도로 승객 서비스 측면을 강조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외국 국적 비행기를 타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다 안다. 광고를 보더라도 최상의 서비스 이야기가 거의 다다. 정비와 안전을 자랑하는 광고를 못 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승객들도 승무원들이 본질적으로 안전요원이라는 것을 잊는다. 위급상황에서는 누구나 승무원의 ‘지시’에 따르게 되어 있는데 ‘왕의 마인드’로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항공요금에 서비스 부분은 사실상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서비스를 잘 하지 않으면 승객이 없기 때문에 항공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서비스’로 승객을 모시는 것이다. 대다수의 승객에게는 비행이 여행의 처음과 끝이어서 서비스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승무원을 감정 노동자로 만들면 곤란하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입장일 때 ‘한 배를 탔다’고 한다. 그러나 살면서 한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운명을 같이 하는 경우는 없다. 예의 있는 승객과 진심 친절한 승무원이 가장 든든한 안전장치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tigerk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