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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시행 임박…의료진들 "취지 공감하나 실효성은?"

의사 보호 장치 마련돼야…방어진료 불가피

(서울=뉴스1) 이진성 기자 | 2018-01-28 07:00 송고 | 2018-01-28 09:36 최종수정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서울의 A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호흡기 내과 전문의인 김모씨(39)는 지난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앓고 있는 50대 남성인 B씨에 대해 연명의료 여부 및 치료 중단을 놓고 환자 가족 일부와 갈등을 겪었다. 환자의 아내인 C씨와 아들 D씨는 B씨가 사전에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연명의료를 중단해달라고 밝힌 반면, 또다른 아들인 E씨는 치료를 중단하면 소송을 건다고 맞섰기 때문이다. 더이상의 치료가 의미가 없을 뿐더러 환자의 고통만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A씨는 연명의료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불거질 소송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내달 4일 환자 스스로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연명의료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시행을 앞두고 의료 현장의 의사들은 대체로 이를 반기는 모양새다. 반면 연명의료를 이행하는 의료진들에 대한 보호장치 등의 미비로 제도의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일명 존엄사법(연명의료법)이 2월4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 등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불필요한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고통을 줄여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다만 의료현장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령 제도상에서는 환자가 직접 의사표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의 경우, 평소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의향을 환자가족 2인 이상이 동일하게 진술하고 그 내용을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확인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과정에서 2인외 다른 가족이 반대하는 경우가 발생할 경우 책임이 의사에게 떠넘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제도 시행에 앞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시범사업에 참여한 상당수 의료기관의 의사들은 이같은 사례가 더러 있었다고 토로했다. 앞서 언급된 사례는 한 대학병원에 있었던 실제 사례로, 의료현장에서는 환자 본인이 직접 연명의료중단 의사를 나타내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 제도가 확산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항암치료와 호스피스·의료윤리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연명의료법에서 환자가 의사결정을 확인하기 어려울 경우 환자가족 2인 이상이 똑같은 진술 또는 환자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확인해 연명의료 중단 여부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다만 본인이 직접 서명하거나 환자 가족 전원이 찬성한 경우가 아니라면 실제 존엄사법을 이행할 수 있는 의사는 얼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명의료법을 시행하는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정해진 원칙에 따라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이행과정을 준수할 경우 이후 문제가 발생해도 의사를 보호하는 장치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의료현장에서 암으로 사망한 환자들을 분석해본 결과 10명중 9명은 연명치료 중 하나인 심폐소생술을 거부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 본인이 직접 연명의료를 중단한다는 법적 양식을 작성하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부분 환자들이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기 전까지는 문화적인 요인으로 사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을 뿐더러, 이행계획서를 쓸 시점에는 이미 작성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임종 여부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을 경우, 해당 의사에 대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부분도 문제다. 의사들이 방어적인 의료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의사들이 제도 시행규칙에 맞게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을 했다면 이에 대해 차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면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같은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의사가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연명의료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강조했다.


jin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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