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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기로 했는데"…'종로 여관 화재' 눈물의 장례식

경찰 "국과수 부검 결과 6명 모두 화재로 인해 사망"
유가족 "정이 많던 사람…소방점검 안 한 당국 원망"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박주평 기자, 차오름 기자 | 2018-01-23 05:30 송고
지난 20일 서울 종로5가 여관 화재현장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이날 새벽 3시께 서울 종로구 종로5가의 한 여관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5명이 숨졌다. 2018.1.2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지난 20일 서울 종로5가 여관 화재현장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이날 새벽 3시께 서울 종로구 종로5가의 한 여관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5명이 숨졌다. 2018.1.2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사고 전날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어머니 주민등록증 사진을 새 사진으로 바꾸느라 여행을 취소했어요. 여행을 갔더라면 살았을 텐데…."

지난 20일 새벽,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는다며 서울 종로구의 한 여관에 지른 불로 6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나고 이틀이 흐른 22일, 날벼락처럼 찾아온 망자의 장례는 유가족의 눈물 속에 쓸쓸히 치러졌다.

22일 오후 6시40분 서울 구로성심병원 장례식장 한편에 마련된 고(故) 김모씨(55) 빈소에서 만난 사촌형 김모씨(64)는 고인을 유독 형제애가 강하고 가족에게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기도 군포시에서 10년 넘게 냉면집을 운영했던 김씨는 한 푼 두 푼 모은 재산을 털어 몇년 전 서울의 한 주상복합단지에 식당 세 곳을 마련하고 성실히 가계를 꾸려나가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모친은 물론 동생 가족과 큰 아버지에게도 매주 안부 전화를 빼놓지 않을 만큼 정이 많았던 김씨는 사고 전날인 19일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모임에 참석했다가 이튿날일 20일 강원도 춘천으로 내려가기 위해 종로5가 여관에 짐을 풀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밤 여관 2층 202호에 여장을 푼 김씨는 다음날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지만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20일 새벽 3시8분 술에 취한 채 여관을 찾아와 성매매 여성을 요구하던 유모씨(53)가 홧김에 지른 불에 변을 당한 것이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구조된 김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날벼락처럼 찾아온 비보를 접한 유가족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빈소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김씨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주를 맡은 사촌형 김씨는 "사고 전날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지만 김씨 모친 A씨(79)의 주민등록사진을 재발급받아야 하는 문제가 생겨 부득이 여행을 취소했다"며 "제주도 여행을 갔더라면 고인이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천 화재 참사를 거론하면서 "여관이 낡고 소방점검도 제대로 되지 못한 탓에 스프링클러는커녕 화재 경보음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며 "숙박업소의 소방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당국이 원망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시각 서울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도 여관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은 김모씨(54)의 빈소가 마련됐다. 김씨는 화재 당일 팔과 다리에 2도 화상을 입고 연기까지 흡입한 상태로 구조됐지만 하루 만에 숨을 거뒀다.

아버지를 잃은 두 딸과 조카는 비교적 차분한 모습으로 고인의 죽음을 맞이했지만 김씨의 사연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은 한사코 거절했다. 이들은 "이미 유가족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고 슬픔을 전했다.

종로5가 여관 방화범 유모씨가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유씨는 지난 20일 새벽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관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 투수객 5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8.1.2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종로5가 여관 방화범 유모씨가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유씨는 지난 20일 새벽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관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 투수객 5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8.1.2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현존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입건된 유씨는 20일 새벽 3시8분쯤 종로의 서울장 여관에 불을 질러 1층에서 묶고 있던 세 모녀 박모씨(34·여)와 중학생(14), 초등생(11) 두 딸을 비롯해 투숙객 6명을 숨지게 하고 4명을 크게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화재 당일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던 사망자 3명이 딸의 방학을 맞아 서울로 여행을 왔던 세 모녀로 확인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전남 장흥군에 거주하던 어머니 박씨는 방학을 맞은 두 딸을 데리고 전국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이모씨는 업무를 이유로 장흥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5일 집을 떠나 전국 각지를 여행하던 세 모녀는 여행 닷새째인 19일 서울 종로구에 도착, 하루 숙박료 1만5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서울장여관에 짐을 풀고 다음날 여행을 위해 잠을 청했다가 변을 당했다.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박씨의 남편 이씨 등 가족 4명은 21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안치된 부인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서를 찾아 조사를 받았다.

유씨는 술에 취한 채 여관을 찾아가 '성매매'를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홧김에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와 여관 복도에 뿌린 뒤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 유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관주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요구했으나 거절해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어 자수한 배경에 대해서는 "펑 터지는 소리가 나서 도망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112 신고를 했다. 지금 멍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유씨는 불을 지르기 전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며 소란을 피우다가 한 차례 경찰의 제재를 받고도 분을 참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던 사실도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사건 발생 1시간 전이었던 오전 2시7분 유씨가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자 여관주인 김모씨(71·여)가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당시 유씨는 술을 마셨지만 만취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출동한 관할 파출소 경찰관에게 "성매매 및 업무방해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만 받은 뒤 훈방 조치됐다.

그러나 분이 풀리지 않았던 유씨는 곧장 택시를 타고 인근 주유소로 가 휘발유를 샀고, 오전 3시8분쯤 여관 1층 복도 바닥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불은 1층과 2층 복도로 번지면서 5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고 박모씨(58) 등 5명이 전신에 화상을 입는 참사로 이어졌다.

서울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망자의 부검을 의뢰했던 경찰은 사망자 6명이 모두 화재로 인해 사망했다는 1차 부검 소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세 모녀를 제외한 피해자들의 발인은 24일에 진행된다.


dongcho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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