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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레이 아트' 창시자 "기형도의 시 읽고 시작하게 됐어요"

[인터뷰]책 '하루를 살아도…' 펴낸 정태섭 연세대 의대 교수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8-01-19 08:56 송고 | 2018-01-19 15:52 최종수정
정태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16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았다. 2018.1.1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정태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16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았다. 2018.1.1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스무 가지가 넘는 취미의 소유자다. 스스로도 "온통 이상한 짓은 다한다"고 말한다. 세계 화폐 수집, 별자리 관측, 넥타이와 핸드백 디자인, 소라 껍데기 스피커 제작, 병뚜껑과 달걀 껍데기 공예, 다게레오 사진 수집, 옛날 엑스레이 기계 수집, 동해가 표기된 고지도 수집, 전축 등 음향기기 만들기, 등산, 당나라 시 암송, 붓글씨 쓰기, 조조영화 보기 등등….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주저하지 않고 하면서 취미는 하나씩 늘어났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의 강남세브란스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정태섭 연세대 의대 교수의 취미다. 

"초·중·고때의 취미가 이어지고 발전한 결과죠. 중고등학교 때는 우리나라 화폐를 수집을 했고 지금은 과학자 얼굴이 나오는 화폐를 수집해요. 학생 때 렌즈를 깎아 망원경을 만들었어요. 천체망원경이 많을 때는 4개 있었죠. 화폐수집하느라 돈이 없어 전축이나 TV를 만들어 팔았어요. 이게 다 제 취미가 되었어요."

정태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16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1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정태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16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1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연세대 의대를 입학한 후 학교 연극반을 들어갔지만 기계를 잘 만진다고 해서 6년간 조명만 담당했다. 무의촌으로 의료봉사를 가서도 친구들은 진찰하는데 자신은 항상 마을의 고장난 라디오를 고치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손재주가 있는 그가 수십 년간 즐겨온 이들 취미 중 'X-레이 아트'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의료기기로만 간주되어온 X-레이로 꽃이나 소라, 사람 등을 찍어 조형미를 보여주거나 깜짝 놀랄 만한 순간을 잡아냈기 때문이다. 

작품 '잎 속의 검은 잎'(정태섭 제공) ©News1
작품 '잎 속의 검은 잎'(정태섭 제공) ©News1

"X-레이 아트를 하게 된 계기가 기형도의 시 '입 속의 검은 잎'이었어요. 그 전부터 사진을 판독하다가 우연히 잡힌 예쁜 모양의 동맥류 같은 것을 찍어왔는데 예술작품처럼 의도적으로 구성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2006년 한 TV 문학 프로그램에서 '입 속의 검은 잎'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그릴 수도 없고 사진도 안되는 '관념'이지만 X-레이로는 찍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첫 작품인 '잎 모양의 브로치를 입에 문 해골' 사진이 완성되었다. 원래 자신을 대상으로 찍었다가 이에 '땜빵'이 많아 흉해, 자신은 이가 깨끗하다고 나선 한 후배를 찍었다. 그 사진이 인터넷으로 퍼지면서 난리가 났다. 언론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전시회까지 이어졌다. 전시회를 하게 된 계기는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다. 인터뷰하러 가는데 "전시회는 언제 할 거냐"고 전화로 물어와 "하게 된다면 6개월쯤 후에 하지 않겠는가" 했더니 '내년 봄에 전시회를 한다'고 신문에 나왔다.

이를 지키기 위해 전시장을 찾으려고 갤러리 12군데를 찾아다녔다가 쫓겨나는 설움을 겪었다. 겨우 한 갤러리가 승낙을 해 첫 전시를 여니 작품이 팔렸다. 작품을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쉽게 관둘 수가 없어 10년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작품의 질이 점점 높아지고 국내외 초청이 이어졌다. 총 전시는 100여 차례, 개인전은 18번, 파리, 모스크바 등 해외에서도 4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 4점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간의 즐거운 취미생활의 경험과 다른 이들에게 주고싶은 조언을 담아 최근 책 '하루를 살아도 후회없이 살고 싶다'(걷는나무)를 펴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사용된 작품 '해바라기'(정태섭 제공)© News1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사용된 작품 '해바라기'(정태섭 제공)© News1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사용된 작품 '약속'(정태섭 제공)© News1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사용된 작품 '약속'(정태섭 제공)© News1

"자르지 않고 물체의 속을 볼 수 있는 것은 X-레이뿐입니다. 예쁜 건물을 보면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내면의 아름다움도 보고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어요. X-레이 아트를 통해서 지금까지 느끼던 아름다움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요." 

X-레이 아트는 세계에서 딱 세 사람이 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물리학을 전공한 네덜란드의 아리 반트 리트라는 작가와 사진 작가의 조수로 따라다니다 X-레이 필름을 보고 재밌을 거 같아 시작했다는 영국의 닉 베세이라는 작가, 그리고 정 교수다. 그중에서 정 교수가 가장 먼저 시작해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너무 돈이 들어 일반인이 하기 힘든 취미 아닌가" 묻자 정교수는 "사진이 취미라고 해도 좋은 사진기 값이 1000만원은 될 것"이라며 "중고 X-레이 기계는 1000만원이 안된다"고 설명했다. 꼭 X-레이 아트를 하라는 게 아니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용기를 내어서 하라는 얘기다. 

"X-레이 아트를 시작할 때 웃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게 예술이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요. 배고픈 건 참는데 배 아픈거 못참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러니 남의 말에 둔해지고 내부의 말에 예민해져야 할 거 같아요."
 
그가 책을 낸 이유는 '인생 2모작'을 잘 해보자고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다들 보면 취미인데도 된다는 보장 없이는 멈칫거리고 그것도 꼭 먼저 한 사람이 있어야 하려고 들어요. 취미인데 뭐 좀 손해본들 어때요. 50~60대가 되면 익숙한 것만 하려고 하는데, 퇴직하고서도 살아야 할 날이 많아요. 그러니 10년 전부터 인생 2모작을 위해 새로운 생활을 위한 바탕을 미리 준비하면 어떨까요." 

정태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16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았다. 2018.1.1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정태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16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았다. 2018.1.1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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