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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사진만 200장인데…어린이집 학대 '증거불충분 무혐의'

CCTV영상 원본도 반환…"재수사 어떻게 할지"
검찰 "항고 신청…고검에서 판단 받아봐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8-01-08 06:00 송고 | 2018-01-08 09:11 최종수정
지난해 1월2일 충남 한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피해아동인 미영양(3)이 다가오자 밀친 뒤 화장실로 데리고 가고 있다.  화장실에 혼자 놓여진 미영양은 7분30초가 지나서야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수사를 담당한 검찰의 불기소이유서에는 이 장면이 언급되지 않았다.© News1
지난해 1월2일 충남 한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피해아동인 미영양(3)이 다가오자 밀친 뒤 화장실로 데리고 가고 있다.  화장실에 혼자 놓여진 미영양은 7분30초가 지나서야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수사를 담당한 검찰의 불기소이유서에는 이 장면이 언급되지 않았다.© News1

지난해 1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신고됐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들을 밀치거나 꼬집는 듯한 행동을 보였고, 울며 떼쓰는 아이들의 경우 화장실에 혼자 가둬두었다. 폐쇄회로(CC)TV에서 학대 영상을 포착한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그런데 아동전문기관도 '학대'로 판단한 사건에 대해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뉴스1과 만난 피해 아동의 부모는 200여장이 넘는 CCTV 캡처 화면을 꺼내 놓으며 검찰의 처분을 납득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검찰은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를 화장실에 혼자 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학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CCTV 분석과 피해 아동의 진술 내용에 대한 기술에서도 '부실수사'에 대한 의혹을 남겼다.

◇두달 분량이라던 CCTV 한달도 저장 안돼

A씨(34·여)는 지난해 1월 쌍둥이 아이 중 언니인 미영이(가명·3)의 팔뚝에 커다란 멍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도 한번 아이가 멍이 들어 귀가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참지 못하겠다'는 생각이들어 어린이집에 CCTV 녹화장면을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CCTV에는 부모로서 참고 보기에는 어려운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A씨에 따르면 어린이집 교사들은 테이블을 밀어 아이들을 밀치거나 목뒷덜미를 잡아 자리에 앉히는 등 신체적인 학대로 보일 만한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A씨를 분노케 한 것은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가 울고 떼를 쓴다는 이유로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가둬 두었다는 사실이었다. 미영이는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5분까지 화장실에 방치됐다. 또 다른 아이의 경우 최대 27분까지 화장실에 갇혔다.

아이가 확실한 학대를 당했다고 생각한 A씨는 경찰에 해당 어린이집 교사들을 고소했다. CCTV 영상이 확실히 남아 있어 처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애초에 어린이집에서 의무저장 분량인 두달분의 영상을 보관하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과 달리 경찰이 확보한 분량은 30일이 채 되지 않았다. 이 30일도 미영이가 어린이집을 퇴원한 이후 9일과 방학기간 9일, 주말 4일을 빼면 채 10일이 되지 않았다.

A씨는 "최초 유치원에 방문해서 확인했을 때 2번에 걸쳐 분명 2달치 영상이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30일 영상밖에 없었고 어린이집에서 사람이 없는 시간대까지 CCTV를 풀가동해 앞선 영상을 덮어쓴 것 같았다"라며 "경찰에도 계속해 영상 확보를 문의했는데 늦장 대응으로 제대로 확보를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동전문기관도 '학대' 의견 검찰은 '증거불충분'

A씨가 CCTV 확보 문제로 항의하자 경찰은 '확보한 영상으로도 학대 정황을 파악했다'라며 '곧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겠다'라며 설득했다. 추가로 경찰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분석한 자료를 보내서 의견을 물은 결과 '학대가 맞다'는 최종 답변을 받아 수사를 종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과의 마찰을 피하고 싶었던 A씨는 그래도 학대가 입증돼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사건이 송치된다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후 8개월여간 수사에 진척은 없어 보였다. 그러던 중 사건을 담당하던 검사가 바뀌었고 한달여 만인 지난해 11월말 아동학대혐의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 내용 중 일부 © News1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 내용 중 일부 © News1

사건을 담당한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불기소 이유서에서 "피의자가 세차례에 걸쳐 1분6초, 27초, 4분여간 피해 아동을 화장실로 데려가 (혼자) 있도록 한 사실은 인정된다"라면서도 "피해 아동을 비롯한 원아들에 대해 훈육이 필요한 상황에서 피해 아동뿐 아니라 다른 원아들도 화장실로 데리고 갔고 교사가 수시로 화장실을 오가며 화장실에 있는 아동을을 살피고 있는 점 등을 보았을 때 피의자가 학대의 고의를 가지고 정서적 학대 행위를 하였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검찰은 "화장실에 다녀 온 아동이 불만을 표시하거나 화를 내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으나 장난기 어린 행동을 보이거나 밝은 모습으로 교실로 돌아오는 모습도 확인돼 화장실 내에서 감금이나 그 외의 학대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검찰이 울고 있는 아동을 혼자 두고 방치하는 행위 자체를 학대로 보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훈육이라는 것은 우는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 주는 것"이라며 "화장실에 가둬 둔다는 것은 공포감을 주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이렇게 상처를 주는 것은 훈육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공 대표는 검찰이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나와 밝은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한 것에 대해 "갇혀 있다가 나오게 되는 아이들이 풀려났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라며 "검사가 아동 심리와 관련해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아동전문가들이 학대라고 판단했는데 오히려 비전문가인 검사가 그렇게 판단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A씨는 담당 검사가 사건 내용에 대해서 제대로 검토를 안 했다는 의심도 하게 됐다. 가족들이 CCTV 자료를 열람·등사 신청해 확인해 본 결과 검찰이 3차례라고 밝힌 것과 다르게 미영이에 대한 감금이 한차례 더 있었고, 다른 아동들의 피해 건까지 합쳐 총 9건의 감금행위가 있었다. 이외에도 아이들을 밀거나 끌어당기고 꼬집는 등의 행위들이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검찰은 이에 대한 설명을 불기소 이유서에 담지 않았다.

또 검찰은 불기소 이유 중 하나로 미영이가 경찰조사에서 '선생님이 좋아. 어린이집이 좋아'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지만 A씨가 경찰조서를 확인해 본 결과 어디에서도 아이가 선생님과 유치원이 좋다고 이야기 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미영이는 조사과정에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에 대해 천안지청 관계자는 "현재 사건에 대해 부모님이 항고하셨으니 검사가 부실하게 수사를 했다면 고등검찰청에서 진위가 밝혀질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구체적인 답변을 해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증거 CCTV 원본 어린이집 돌려줘 재수사해도 걱정

A씨 부부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해 사건을 다시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며 지난달 대전지방고등검찰청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현재 담당 검찰이 배당돼 검토 절차가 이뤄지고 있지만 A씨는 항고가 받아들여져 재수사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사건이 제대로 검토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고 있다.

A씨 부부가 큰 기대를 못하고 있는 것은 검찰이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물인 CCTV 동영상 원본을 피의자인 어린이집에 돌려줬기 때문이다. 최근 항고를 위해 A씨 부부가 천안지쳥에 문의한 결과 CCTV 동영상 원본을 이미 해당 유지원의 요청에 따라 돌려줬다는 답변을 받았다.

"피해자가 항고를 하면 어떻게 하려고 사본도 없이 증거물을 돌려줄 수 있나"라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A씨는 "만약 항고가 받아들여 진다고 해도 원본이 없는데 재수사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천안지청 관계자는 "규정상 무혐의 사건에 대해서는 증거를 제출한 쪽에 돌려주게 되어 있다"라며 "항고가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고 앞서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한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재수사의 문제는 없으리라고 것이라고 판단된다"라고 답했다.

비록 항고 결과가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A씨 부부의 싸움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이제 미영이가 유치원을 다니지 못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현재도 미영이는 유치원 이야기만 하면 말을 피한다. 주변 동네 어린이집에도 소문이 나 미영이의 쌍둥이 동생까지 어린이집을 다니지 못하고 있다.

A씨는 "그나마 여력이 있어서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거지 만약 일반 맞벌이 부부처럼 바빠서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면 그냥 묻어두고 지나갔을 것"이라며 "세상에 이런 일이 있고 부모들이 항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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