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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하면 온다더니 벌써 30년"…가슴에 묻은 이한열열사 모친

영화 '1987'상영 계기로 배은심 여사 인터뷰
"아직도 선명한 마지막 모습…비겁하진 않았구나"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18-01-07 11:55 송고 | 2018-01-07 16:43 최종수정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울삶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br />2018.1.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울삶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엄마, 종강하면 빨리 올게'라고 말했거든. 그게 벌써 30년이 지났네…."
지난 1987년 6월9일, 서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치며 학생운동에 앞장섰다가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희생된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78)는 31년 전 아들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가슴에 자식을 묻고 살아간다. 

이승을 떠난 아들의 안식처가 되어준 서울 종로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한울삶)에서 6일 만난 배 여사는 민주화 열사 105인의 초상화가 연도별로 나열된 사무실에서 온화한 표정으로 뉴스1 취재진을 맞이했다. 뉴스1은 30년 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박종철·이한열 열사 등을 소재로 한 영화 '1987' 상영을 계기로 배 여사를 인터뷰했다.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부르짖다가 산화한 학생 열사의 초상화 한가운데 위치한 아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배 여사는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자식을 먼지 앞세운 어머니의 사자곡(思子曲)일 것이다.

◇"내겐 0점짜리 아들…비겁하게 가진 않았구나"
"0점짜리 아들이죠. 엄마로서 보기에 빵점짜리 아들이야."

제5공화국의 끝자락이었던 1987년, 치안본부에 검거돼 각종 고문을 받다가 숨진 故 박종철 열사의 사망원인이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지면서 촉발된 민주화의 열기는 배 여사 아들까지 삼켜버렸다. "책상을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는 당국의 발표는 온 국민의 분노를 촉발했다.

같은 해 6월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결의대회에 나섰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뒤통수를 맞고 끝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기점으로 민주화 열망은 '6월 항쟁'으로 이어졌지만 아들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을 남겼다.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던 아들을 끝내 잃고 슬픔에 잠긴 배 여사를 받아준 곳은 故(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만든 '한울삶'이었다. 학생과 노동자 등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가 숨진 열사들의 유가족이 모인 이곳은 이후 배 여사의 두 번째 집이 됐다.

"아들이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집에 내려올 때마다 최루탄 냄새가 났는걸. 책상에도 사회주의 서적이 빼곡했어요." 배 여사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내내 마음을 졸였다고 들려준다. 사복경찰이 대학마다 투입됐고, 10명이 모여 시위를 벌여도 최루탄이 발포되는 시대였다.

배 여사는 "항상 아들에게 전화해서 '운동은 하더라도 앞에 서지 말고 뒤에 서라'고 당부를 했다"며 "하도 전화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화를 내더라"고 회상했다.

아들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기 불과 이틀 전이었다. 배 여사는 "6월6일이 현충일이니까 아들이 광주집으로 내려왔다"며 "걱정되는 마음에 '종강하면 빨리 집으로 와라, 엄마랑 같이 방학 보내자'라고 부탁을 했다"고 기억했다.

집에서 현충일을 보내고 이튿날인 7일 서울로 향하는 차에 오른 이한열 열사는 문득 차 문을 내리고는 '엄마, 종강하면 빨리 (집으로) 올게'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배 여사는 "그렇게 말했는데 벌써 30년이 지났다"며 말끝을 흐렸다.

'민주화의 포문을 연 아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배 여사는 "엄마에게는 0점짜리 아들"이라고 답했다. 아들의 죽음이 준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 여사는 "내 아들이 학생운동에 앞장섰다가 사고를 당한 것을 알고 '내 아들이 비겁하게 죽은 것은 아니다'라고 체득했다"며 "모든 국민이 함께한 덕분에 민주화가 찾아왔지만 그 계기의 하나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고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울삶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br />2018.1.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울삶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한국 민주화는 50점…남은 50점은 문재인 대통령 몫"

"촛불집회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난 이제 사람들이 다 잊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 잠재된 것이었어."

1987년 7월5일 아들의 장례를 치른 배 여사는 한 달 뒤인 8월12일 한울삶에 가입해 아들이 못다 한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다.

30년 동안 전국을 돌며 노동자와 학생, 농민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는 배 여사는 "촛불집회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배 여사는 "군사정부 독재시절에는 10명만 모여도 최루탄을 던지니까 촛불은 꿈도 못 꿨다"며 "직선제가 시행되고 최루탄이 사라지니 촛불이 광장을 가득 메울 수 있구나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배 여사는 '오늘날 한국 민주화에 몇 점을 주고 싶은지'를 묻자 단호한 어조로 "50점"이라고 답했다.

그는 "대통령을 교도소로 보내고 적폐를 청산하는 현대 민주화에 50점을 주겠다"며 "나머지 50점은 촛불로 정권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약을 많이 했고 국민은 그 공약을 기억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약속을 모두 지켰을 때, 그때 남은 50점을 주겠다"고 밝혔다.

배 여사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1987'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끝까지 영화를 보지 않을 생각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한열이 모습이 선명하다"고 말한 배 여사는 "영화를 보면 한열이의 다친 모습이 그대로 보일 텐데, 엄마로서 내 아들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어떻게 보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자식 자랑하면 바보라지만 한열이가 키도 훤칠하고 어디 내놔도 봐줄 만 했지"라며 웃어 보이던 배 여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1987년에는 구호가 딱 2개였어요. '독재타도' '호헌철폐'. 지금은 직선제가 생겼고 독재도 사라지고 있죠. 그게 종철이(박종철 열사)와 한열이가 죽었다고 이뤄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계기로 많은 국민이 나와서 싸워서 얻어낸 것입니다. 국민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을 세운 것도 그 덕입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울삶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br />2018.1.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울삶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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