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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금융 복합 공간’으로 탈바꿈 중인 은행들

빅데이터·AI 로봇·카페와 결합해 은행 점포 진화
영업 시간도 탄력 운영…뿌리내리는 디지털 금융

(서울=뉴스1) 전준우 기자 | 2018-01-02 06:1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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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새롭게 개편 중인 디지털 금융 생태계는 전통 은행이 쌓아 올린 공든 탑을 사정없이 위협하고 있다. 은행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로 통장 개설부터 대출까지 다양한 금융 업무를 간편하게 볼 수 있다. 2017년 2분기 기준 스마트폰뱅킹 등록 고객 수(동일인이 여러 은행에 가입한 경우 중복합산)는 8111만 명에 달한다(한국은행). 하루 평균 5816만건을 이용하고, 3조7209억원이 오간다. 이에 비례해 은행 점포는 빠른 속도로 문을 닫고 있다. 2015년 12월 4311개에 달하던 은행 점포는 2017년 6월 말 기준 4046개로 200개 넘게 사라졌다.
비대면 거래가 늘고는 있다지만 오프라인 점포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채널이다. 디지털 금융이 몰고 온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전통 은행들은 다양한 변화를 시도 중이다. 은행 영업점은 고객이 방문해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온라인과 모바일을 활용해 고객과 연결하는 ‘신개념 복합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빅데이터로 자산 관리·인공지능 로봇 은행원도
 
서울 송파에 사는 30대 사무직 김모씨는 맞벌이 회사원이다. 매월 수입은 300만원 내외로 자기 소유 아파트에 거주한다. 여가를 즐기는 타입으로 재테크는 등한시해왔지만, 나와 비슷한 조건의 직장인은 어떤 방법으로 자산관리를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신한은행의 전국 영업점에서는 태블릿PC를 통해 이런 궁금증을 손쉽게 풀 수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0월16일부터 전 영업점 창구에 설치한 태블릿PC로 빅데이터 기반의 상담을 제공한다. 지난해 내놓은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영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전산화했다. 주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엿보고 싶은 심리를 자산 관리 컨설팅에 활용했다.     

고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하루 평균 620건 이상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3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보통사람 금융생활을 엿보는 데 흥미를 느낀다는 후문이다. “대기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면서 자산관리까지 동시에 할 수 있다”는 호평이 줄을 잇는다.     
KB국민은행도 바쁜 시간을 쪼개 방문한 영업점에서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ICT와 상생을 꾀했다. 리브(Liiv)앱을 통해 지도와 내비게이션 기능을 제공하는 ‘지점 찾기’, 대기 고객을 확인하고 순번 대기표를 미리 발급할 수 있는 ‘모바일번호표’를 이용해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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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영업점을 방문하면 로봇이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은행은 국내 금융권 중 처음으로 인공지능(AI) 로봇을 영업점에 배치했다. 로봇사업 회사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개발한 세계 최초 감정인식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Pepper)’가 지난해 10월11일부터 본점영업부, 명동금융센터, 여의도금융센터에서 고객을 맞이한다.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향후 로봇을 활용해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페퍼는 인공지능 로봇 은행원으로 영업점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창구 안내를 하는 등 고객과 교감한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페퍼와 함께하고 싶은 메뉴를 선택해주세요" 등 상품을 추천해주고, 이벤트도 안내한다.

◇경직된 은행은 싫다…카페+빵집과 결합한 ‘휴식공간’

단순히 번호표를 뽑고 앉아 순번을 기다리던 딱딱한 은행은 카페와 결합해 휴식 공간으로 변신을 시도 중이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10월 서울 역삼 금융 센터 내에 카페를 설치해 영업점을 특화 점포인 '카페 인 브랜치'(Cafe In Branch)로 개편했다. 은행 점포 안에 커피숍 '디 초콜릿 커피 앤드'가 운영 중이다. 이 점포 벽면에는 초대형 LED를 활용한 미디어 월(wall)을 설치해 농촌 풍경을 보여주는데 고객들은 이곳에서 잠시나마 힐링할 수 있다며 반응이 좋다. 카페에 방문했다가 미뤘던 은행 업무를 보는 것도 훨씬 효율적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틀에 박힌 영업에서 벗어난 이색적 시도로 고객의 반응도 좋다”며 “은행 업무 대기시간에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카페와 은행의 결합점포 방문 고객이 늘어 2호점도 냈다. 지난해 3월 서울 동부이촌동 지점에 폴바셋과 함께 ‘카페 인 브랜치’를 선보였다. 이후 내점 고객이 기존보다 10%나 늘어나자 빵집에 은행 창구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에 들어갔다.
   
잠실 롯데월드몰에 크리스피크림도넛 매장과 결합한 ‘베이커리 인 브랜치’도 문을 열었다. 도넛매장 한쪽에 우리은행 고객들이 금융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칸막이로 독립적인 공간을 조성하고, 중소기업 대출 등 일부 업무를 제외한 모든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KEB하나은행은 서교동지점을 개방형 문화공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은행 점포에서 공연, 전시 등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 고객 발길을 유도하겠단 전략이다.
     
◇탄력적인 은행 영업시간…얼리·애프터뱅크 각광

시중은행 점포의 영업시간도 다양해졌다. 고객이 점포 운영 시간에 맞춰 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편리한 시간대에 은행 문을 여는 ‘쌍방향 소통’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자영업자나 디지털 금융 소외계층, 담보 대출 등 복잡한 절차로 은행원의 손길이 필요한 고객 수요도 무시 못 한다. 기존 은행은 이런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은행 영업시간을 평일 오전 9시~오후 4시 외에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NH농협은행 가락시장 중앙출장소는 '얼리(Early)뱅크'로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문을 연다. 주거래 고객인 가락시장 상인들의 생활 패턴에 맞춰 은행 영업시간을 앞당겼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시와 광주광역시 5개 지점 영업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적용하는 애프터(After)뱅크를 시작했다. 아파트 밀집 지역과 유통센터 연계지역, 오피스 밀집 지역의 고객 요구를 반영해 시범 적용한 뒤 애프터뱅크를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KB국민은행도 15개 지점에서 유연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직장인이 퇴근 시간에도 은행 점포를 방문할 수 있도록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정오부터 저녁 7시까지 탄력적으로 지점을 운영한다. 외국인 근로자 금융 서비스 수요가 많은 경기 의정부시에는 일요일에도 영업하는 ‘의정부 외환센터’를 열었다.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환전·송금, 계좌 개설·해지, 카드 발급, 출국만기보험 지급 대행 등 외국인을 위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이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가는 현장 중심의 밀착 영업도 확대하고 있다. KEB하나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NH농협은행 등은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직원이 찾아가 일대일 전문 상담을 제공하는 태블릿 브랜치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에 사는 고객이나 지점 방문이 어려운 고객들을 찾아가 계좌 신규·대출 가능 조회 등 은행 창구에서 가능한 상담을 해준다.

◇핀테크 확산이 몰고 온 ‘페이퍼리스’ 바람

핀테크 확산은 금융권 전반에 ‘페이퍼리스’ 바람도 불어넣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3월 7000여개의 전 영업점 창구에 태블릿PC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창구를 도입해 영업점 대면 채널을 디지털화하는 기반을 확보했다. 기존의 종이 서식을 대신해 디지털 서식이나 전자서명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디지털 창구를 도입한 지 7개월 만에 전체 거래의 50% 이상이 디지털 문서를 이용한 전자적 형태로 바뀌었다. 신한은행 스마트혁신본부의 관계자는 “비대면 채널뿐만 아니라 사람에 의한 대면 채널의 디지털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가 인터넷 전문은행 대비 경쟁력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도 최근 서울과 수도권 등 185개 영업점에 디지털 영업점을 도입해 전자서식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채널 운영을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공공 금융기관 입지를 활용해 종이청구서 대신 ‘스마트고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자체 세외수입, KT 통신요금, 아파트 관리비, 국세·범칙금 통지서도 거추장스러운 종이청구서 대신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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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는 디지털 금융, 은행원 근무 환경도 변화    

디지털 금융이 빠르게 뿌리 내리며 은행원의 근무 환경도 점차 바뀌고 있다. ‘별 보고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한다’는 높은 강도의 고달픈 은행원 삶도 이제 옛말이다. 많은 업무가 디지털로 대체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문화도 은행권에 빠르게 확산 중이다. 대다수 시중은행은 개인별 연차에 따라 10~15일은 거뜬히 쉴 수 있고, 유연 근무제도 시행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국내 은행권 중 처음으로 지난해 스마트 근무제를 도입해 단순한 유연근무제를 넘어 업무 특성에 따라 재택근무도 허용한다. 직접 회사로 출근하지 않아도 집에서 업무가 가능한 산업 리서치 담당 부서 직원 등을 대상으로 지난해 재택근무를 시범 시행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의 재택근무 만족도가 특히 높았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되고, 업무 효율도 올릴 수 있다는 후일담이 이어진다.      

KEB하나은행도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자율 좌석제로 각 부서장 자리의 칸막이를 없애고, 직원들은 누구든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공용 PC로 업무를 보고 있다. 디지털 조직화에 초점을 두고 IT 기술을 기반으로 '전자문서의 생활화'도 진행한다. 공용 클라우드에 자료를 올리고, 부서와 상관없이 업무를 볼 수 있다. 오후 7시(가정의 날인 수요일은 오후 6시 30분) 이후 야근 직원을 위해 마련한 일부 층 외에 모든 사무실의 불을 끄는 '일괄 소등제'도 시행하는 등 은행권의 ‘워라벨’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junoo5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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