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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라니요? 재취업해야죠"…'인생 3막' 준비하는 4050

[2017 자화상③] 40·50대의 하루
상품디자이너·버스운전사·제약회사 임원의 일상

(서울=뉴스1) 김다혜 기자, 박지수 기자, 유경선 기자 | 2017-12-31 10:00 송고 | 2017-12-31 17:20 최종수정
편집자주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본 2017년도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를 콕 짚으라고 한다면 촛불집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새해 벽두 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의 열기는 결국 대통령 탄핵과 새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국민 모두는 올해를 빛낸 역사의 주인공이자 산 증인이다. 하지만 광장을 철수해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의 삶은 어떤가. 입시의 중압감과 바늘구멍 같은 취업 장벽에 청년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불확실한 경제에 40~50대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 60~70대 어르신들의 삶은 또한 얼마나 고단한가. 뉴스1은 연말을 맞아 촛불을 살아낸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추적해 봤다.
40·50대는 우리 사회를 이끄는 '허리'로 불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전체 취업자 가운데 48%가 40~59세였다.

노인보다 열정적이고 청년보다 노련하게 가정과 일터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내고, 정년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4050세대를 만나봤다.

◇ "'무능한 아줌마' 소리 싫어…난 일할 준비 된 엄마"

'워킹맘' 나윤경씨(44)에 있던 여덟살 딸을 데리고 나오는 모습. © News1
'워킹맘' 나윤경씨(44)에 있던 여덟살 딸을 데리고 나오는 모습. © News1

지난 27일, '워킹맘' 나윤경씨(44)는 여느 때처럼 새벽 4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가 잠든 사이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3시간의 고요한 업무시간이 지나고 오전 7시면 전쟁이 시작된다. 딸을 깨우고 아침을 먹인다. 오전 8시40분, 딸이 등교하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씨는 그제야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한다. 

나씨는 프리랜서 브랜드 디자이너이다. 캐릭터나 브랜드를 개발해 상품화하는 일을 한다. 대학에선 그래픽을 전공했다. 

사무실과 외부미팅을 오가며 일하다 보면 금세 오후 4시, 딸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시곗바늘이 4에 다가갈수록 나씨가 시계를 확인하는 빈도도 잦아진다.

"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는 강박이 굉장해 급하게 딸을 데리러 가다 접촉사고를 낸 적도 있어요. 이제 픽업 시간이 되면 신데렐라처럼 하던 일을 끊고 노트북을 덮죠."

업무상 어려울 때는 시부모님에게 SOS를 친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 올 때도 있다. 다행히 27일은 별일 없이 아이를 데려왔다.

오후 5시30분쯤 집에 도착한 나씨는 딸의 알림장, 통신문을 보며 숙제를 체크했다. 저녁을 차리고 딸의 학습지 공부를 도왔다.

나씨는 1년 정도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출장이 잦은 업무였는데 어느날 딸이 손수 편지를 써 여행가방에 담아둔 것을 보고 왈칵 눈물이 났단다. 

이를 계기로 프리랜서로 전환해 일을 줄이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프로정신은 여전하다. 

나씨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전공자, 능력자로 평가해준다"며 "일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미션"이라고 했다.

그는 "'칼퇴근'을 해야 하는 여성에겐 '무능한 아줌마'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느냐"며 "워킹맘은 그냥 '일하는 엄마'가 아니라 '일할 준비가 돼 있는 엄마'라고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 "아직 짱짱한 나이인데…은퇴하면 뭘 해야 하나"

604번 서울시내버스를 운전하는 30년차 베테랑 운전기사 윤승병씨(57) © News1
604번 서울시내버스를 운전하는 30년차 베테랑 운전기사 윤승병씨(57) © News1

지난 26일 윤승병씨(57) 낮 12시쯤 서울 강서구 자택을 나서 6648버스에 몸을 싣었다. 지난주엔 '첫차'를 몰기 위해 택시를 타고 출근했지만 이주는 오후 근무조이기에 느긋하게 버스를 타도 된다.  

"윤 기사, 왔어?" 신월동 차고지에 도착하자 동료들이 윤씨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버스 운전사다. 1988년부터 588버스를 운전했고 지금은 그 노선을 이어받은 604번을 운전한다. 

음주 측정을 받은 뒤 버스 안을 청소하고 앞·뒷문이 잘 열리는지, 거울은 깨끗한지 등을 확인하면 출차 준비 완료. 

"배차간격 신경 써야 해." 윤씨에게 한 동료 기사가 당부했다. 회사는 버스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무전으로 '서행하라' '빨리 따라붙어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도로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다. 

강서구청, 홍대입구, 서울역 등 서울 곳곳을 지나는 동안 윤씨는 항상 승객들에게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 묵묵부답이지만 때로 화답을 하는 승객도 있다고 한다. 윤씨는 "늘 같은 시간에 타는 단골 승객들이 박카스를 건네줄 때도 있다"라며 웃었다. 

집회·행진 때문에 노선이 바뀌거나 도착이 늦어져 승객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무임승차 승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때도 있다. 그래도 직업에 대한 윤씨의 애정은 남다르다. 

"원래 행정직을 하고 싶었어요. 먹고 살려고 시작한 것이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고, 시민들의 발이 돼 시내를 누빈다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걱정스러운 것은 은퇴 이후다. 윤씨는 "쉰일곱이면 아직 짱짱할 때 아니냐"며 "결혼 안 한 아들과 외손주들을 보면 계속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씨는 "택시기사를 하고 싶지만 개인택시 면허를 얻는 데 1억원이 넘어 부담이 크다"며 "특별히 노후 준비를 해놓은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18년 일한 회사 떠나 재취업 "도전은 즐거움"

지난 3월 한 제약회사 안과사업실 마케팅 이사로 재취업한 김재중씨(55) © News1
지난 3월 한 제약회사 안과사업실 마케팅 이사로 재취업한 김재중씨(55) © News1

지난 27일 점심시간, 경기 성남에 있는 한 제약회사 구내식당은 깔끔한 정장 차림의 직원들로 북적였다. 김재중 안과사업실 마케팅 이사(55)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김 이사는 18년 넘게 제약산업에 종사해온 '고참'이지만 이 회사에서는 신입사원급 '신참'이다. 전 회사에서 퇴직한 뒤 지난 3월 이곳으로 부임했다.

이전 회사에서의 마지막 7개월은 편치 않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전 회사가 부서를 해체하고 직원들을 재배치하지 않았다. 업무도 소속부서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재취업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새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진취적인 분위기가 좋아서다. 회사를 옮길 때도 두려움보다 기대가 컸다. 김씨는 "새로운 도전은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이라고 했다.

"옛날 경험만 갖고 입으로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내가 가진 역량들과 연결하기 위해 늘 고민하고요."

신제품 마케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김씨는 매일 아침 8시~오후 8시 회사에서 일한다. 신제품 관련 부서별 업무상황을 확인·조율하고 차별화된 제품 마케팅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챙기는 것이 김씨의 일이다.  

김씨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때 3년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이후 학교를 벗어나 제약 영업에 뛰어들었고 이어 마케팅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그는 "정년 후에는 사람들의 재능을 필요한 곳에 연결해주는, 좋은 뜻을 나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씨는 "두 아들도 올해 취업에 성공했는데 어려운 시기에 제 길을 찾아가 기쁘다"며 "가족들이 탈 없이 한 해를 보낸 2017년은 내게 축복"이라고 말했다.


d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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