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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③저녁있는 삶에 "이직계획 접었습니다"

신세계 등 일부 대기업 선제적 단축…"저녁있는 삶"
중소기업 직원에겐 '남의 일'…"장시간 근무에 사표 결심"

(서울=뉴스1) 이승환, 정혜민 기자, 김민석 기자 | 2018-02-21 06:02 송고 | 2018-02-21 10:23 최종수정
편집자주 한주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월 임시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다. 최근 몇 년 간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했던 정치권은 번번이 합의에 실패하다가 지난해 말 큰 틀에서 잠정 합의에 성공했다. 다만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 부담 등을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하면 '최저임금 인상'에 버금가는 거센 논란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뉴스1>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직장인·기업인·정치인·학계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심층 취재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 News1 송원영 기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 News1 송원영 기자

"주 35시간제를 활용해 오후 5시부터 회사 헬스장에서 1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다이어트에 꼭 성공할 것입니다"(이마트 직원 40대 A씨)

"근로시간 좀 단축했으면 합니다. 추석과 설 연휴에도 제대로 쉬지 못 합니다. 근로시간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중소 식품유통업체 여직원 29세 이모씨)

이달 임시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이 선제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 주목을 받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저녁 있는 삶을 실현했다"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중견기업보다 규모가 작은 상당수 중소기업 직원은 근로시간 단축이 아직 '남의 나라' 일 같다. 이들은 장시간 근무에도 연장·휴일 근로수당이 미지급되는 등 열악한 근로조건을 호소하고 있다.

◇ 이마트 피트니스 센터 이용 직원 33% 증가

21일 신세계 그룹에 따르면 올해 계열사에 주 35시간제를 도입하면서 국내 대기업으로는 최초로 하루 8시간 근무에서 7시간 근무체제로 전환했다. 그룹 사무직 직원은 이른바 '나인 투 파이브 근무(오전 9시·오후5시 퇴근)'를 하고 있다.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것이다. 백화점 점포 직원들은 오전 10시~ 오후 6시에 근무하며 역시 '하루 7시간 근무체제'를 누리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신세계백화점 개점시간도 39년 만에 30분 늦춰졌다. 오전 10시30분에서 11시로 개점 시간이 변경됐다. 오는 3월부터 영등포·경기·광주신세계 등 3개 점포가 시범적으로 적용되고 이후 다른 점포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주35시간 근무제로 이마트 본사 내 피트니스 센터 이용 직원 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는 "지난달 이마트 피트니스 이용 직원은 하루 200명으로 작년 150명보다 33.3% 증가했다"고 전했다.

직원들은 어학·건강관리·자녀 교육 등 다양한 '저녁 계획'을 잡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일하는 B씨(31)는 "퇴근 후 어학 학원에 다니며 영어 공부를 할 계획"이라며 "주35시간제가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아모레퍼시픽 임직원들은 'ABC워킹타임'(유연근무제)을 활용해 최대 두 시간 일찍 출퇴근(오전 7시출근·오후 4시 퇴근)하고 있다. 기존 정규 근무시간보다 한 시간 늦은 출퇴근(오전 10시 출근·오후 7시 퇴근)도 가능하다. 두 시간 일찍 출근한 날엔 동료들과 '오늘 칠사(7-4) 썼어'라는 말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아모레퍼시픽 인사팀에서 일하는 C씨(35)는 "평소보다 일찍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야 할 때 유연근무제 덕을 보고 있다"며 "특히 우리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中企, 직원 이탈에 어려움…"근로조건 개선해야"

한샘은 "여성이 일하기 가장 좋은 회사로 만들겠다"며 조직문화 쇄신안을 실행하고 있다. 이 덕분에 임신한 여성 직원의 정규 근무 시간은 하루 6시간(휴게 시간 포함)으로 줄었다. 이들의 주말 근무와 연장 근로도 금지됐다. 또 기존 1년 휴직 외에 추가 1년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30대 한샘 여직원 D씨는 "남성적이고 구시대적인 회사 조직 문화에 실망해 이직을 계속 고민했으나 여성을 배려한 이번 쇄신안을 보고 회사에 남기로 했다"며 "회사가 바뀔 것이란 기대감이 내부에서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중소기업 직원들은 제도 도움없이는 사실상 근로시간 단축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중소기업 경영인들은 근로시간 단축시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중기에 다니는 직원들은 근무요건이 개선돼야 중소기업 취업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 매출 500억원 규모의 제조업체에 근무했던 정모(여·26)씨는 "추석·설 등 연휴 기간에 쉰 적이 없어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퇴사했다"며 "첫 직장이었는데도 사표 쓰는 날 마음이 홀가분했다"고 털아놨다. 정씨는 "근로 시간이 단축되면 전 직장 동료 모두가 좋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40대 김모씨는 "중소기업의 연봉과 복지 등 처우와 사회적 평판은 대기업에 크게 못 미친다"며 "회사의 성장과 미래상(비전)도 대기업이 우월해 직장인들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작은 계열사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박진 산업연구원 연구원·지민웅 산업연구원 연구원·윤명수 인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 '2017년 중소기업정책연구 겨울호'에서 "중소기업은 입사 초기 높은 수준의 이직률에 직면하고 있으며 특히 입사 후 2년 이내 이직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구조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고 장시간 근로를 지양하는 등 적극적으로 인력 문제에 대응하는 중소기업에 정부 지원 사업이 집중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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