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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눕지 않는다…'아트스페이스 풀'로 본 대안공간 현주소

박찬경·김용익 등 주도 국내 1세대 대안공간
정권 성향따라 기금도 흔들…"자생력 과제"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10-22 14:11 송고 | 2017-10-24 12:42 최종수정
서울 종로구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 전경. (아트스페이스 풀 제공) © News1
서울 종로구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 전경. (아트스페이스 풀 제공) © News1

'도대체 이런 전시는 누가 볼까'. 서울 종로구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디렉터 이성희)에서 열리는 전시들을 보면 떠오르는 질문이다. '이런 전시를 왜 할까' '작품은 팔릴까' 같은 질문들도 꼬리를 문다.
1999년 2월 문을 연 '아트스페이스 풀'('대안공간 풀'의 후신)은 '대안공간'이라고 통칭되는 국내 1세대 비영리 미술 전시공간이다.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은 전시에서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이 공간은 그러나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2015)을 받은 임흥순 작가나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2016)인 믹스라이스가 성장한 발판이다. 

1990년대 전후로 태동한 아트스페이스풀을 비롯한 대안공간 루프, 사루비아 다방 등 1세대 대안공간들은 기성 갤러리와는 다르게 작품 매매보다 작가 발굴에 가치를 둔, 말 그대로 '대안'으로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제도권 미술에 문제의식을 느낀 미술인들이 발기해 창작활동과 비평저술활동, 연구토론활동 등을 펼쳤다. 상업 갤러리들과 협업하는 기성 작가들도 이 곳을 '이상향' 삼아 활동하기도 했다.

풀은 소유주가 따로 없이 이사회와 임기제 대표(디렉터)로 운영된다. 운영 자금 대부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에 의지한다. 이 때문에 제도권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 풀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부침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정권에서 기금이 절반으로 깎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둔 이성희 대표를 최근 만나 한국 미술계에서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대안공간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봤다.
현재 아트스페이스풀의 기획전 '녹는바다'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김영은 작가의 사운드 설치 작품 '소리의 살'(6분 4초). © News1
현재 아트스페이스풀의 기획전 '녹는바다'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김영은 작가의 사운드 설치 작품 '소리의 살'(6분 4초). © News1

◇'주인없는 대안 전시공간' 아트스페이스 풀
풀은 '미술의 대안적 실험'과 '주체적 미술문화 형성'이라는 사명을 갖고 20여 명의 작가, 기획자, 비평가, 이론가, 학생 등이 공동 발기해 1999년 2월 설립됐다. 처음에는 종로구 관훈동에서 문을 열었지만, 인사동 거리 일대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하면서 2006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현 구기동 공간으로 이전해 자리를 잡았다. '풀'이라는 이름은 초대 대표였던 미술비평가이자 전주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인 이영욱씨가 김수영 시인의 시 '풀'(1968)에서 따 왔다.

제도권 미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만의 예술실천을 하던 작가들이 외환위기가 닥치자 더욱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 대안으로 물리적 공간을 만든 것이 풀을 비롯한 대안공간들이다. 1980~1990년대 작가그룹이나 동인으로만 활동하던 움직임들이 풀의 출범과 동시에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근거지'로서 대안공간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풀의 주 목적은 작가발굴이다. 초창기에는 신진작가 공모를 많이 했다. 전시할 작가도 공모로 선정했다. 작가와의 대화, 비평과의 만남 등 지금은 대중화한 많은 실험적인 형식들이 풀에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 구조는 7~8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와 임기제 대표 1인, 상주 직원 2명 정도다. 대표는 3년을 임기로 하며, 현 대표와 이사회의 추천으로 차기 대표가 선정되는 방식이다. 이영욱 대표를 시작으로, 김용익, 황세준, 박찬경 등 유명 작가 및 평론가들이 풀의 대표 자리를 거쳤다.

이성희 대표는 "주인이 없는 게 이 공간의 가장 큰 생명력"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기부금을 유치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무엇보다도 대안공간으로서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부금은 비영리 공간인 풀에 매우 중요한 동력 중 하나다. 1~2만원 소액부터 많게는 1000만원대까지 액수도 다양하다. 민중미술 그룹의 원로작가인 김정헌씨(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는 아예 프로젝트 후원을 통째로 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풀의 신진작가 전시에 사비 1000만원을 후원한 것이 그 예다. 이어 김용익 작가도 '기부 릴레이'에 동참했다.

이 대표는 "기부금을 강화하는 것이 공간의 자생력을 위해 더 낫다"고 말했다. 정부 기금에만 의존할수록 정권 성향에 따라 부침을 심하게 겪을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기금과 기부금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풀은 박근혜 정권 때인 2015~2016년 기금이 반으로 깎였다. 매년 5000만~6000만원을 받던 것을 지난 2년 동안 3000만원 밖에 못 받았다. 기금 외에 다양하게 연동할 수 있는 성격의 기금들도 이 때를 기점으로 뚝 끊겼다. 이 대표는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풀 같은 공간이나 집단에 대한 암묵적인 블랙리스트가 작동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올해 3~4월 아트스페이스풀 기금마련전에 출품됐던 임흥순작가의 작품 '귀환'. 2014, c-프린트, 49.3x37cm(각) (아트스페이스풀 제공) © News1
올해 3~4월 아트스페이스풀 기금마련전에 출품됐던 임흥순작가의 작품 '귀환'. 2014, c-프린트, 49.3x37cm(각) (아트스페이스풀 제공) © News1

◇대안공간, 정부기금 아니어도 살길은 없을까

풀은 정부 기금이 깎이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예술위 외에도 다양한 정부 출연 재단 기금을 유치하기 위해 작가들이 직접 발로 뛰었고, 안 하던 기자간담회를 열어 전시를 대중에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실험적으로만 하는 신생공간이 아닌, '기성화한 비영리 공간'으로 역할 재정립을 모색하고 있다.

2017년 정부 기금은 다시 원수준을 회복됐다. 지난해 말 블랙리스트 사태가 터지면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이 대표의 추측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내년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종전에 2년 단위로 기금을 신청해서 받던 것을 올해부터는 1년 단위로 신청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술위는 그동안 운영했던 '대안공간 사업'을 올해부터 '비영리 전시공간 운영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재정비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주는 기금은 한편으로는 항상 긴장을 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일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기금을 보전해주는 것이 전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기금에 대한 의존도가 대안공간을 망친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홍콩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기관 '아시아아트아카이브'(AAA)와 '파라사이트'를 예로 들면서, 기부에 의한 작품 경매를 통해 자체 기금을 마련하는 것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성공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기부하고,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이 이 작품들로 기금마련 경매를 열면, 컬렉터나 사회적 명망가들이 50만~100만원에 해당하는 비싼 입장권을 내고 들어와 작품을 사 가는 형태다.

풀 역시 기금마련전을 열고 있는데, 이 대표는 이러한 기금전이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문화예술계 내에서 사회환원과 기부의 선순환에 대한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공간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초대 대표인 이영욱 교수는 "이제 대안공간들도 자신들이 쌓아온 경험과 자원, 역사,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현재 속에서 그 필요성을 찾아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풀을 비롯한 초창기 대안공간들이 시대변화에 뒤쳐졌던 기성 갤러리 등 제도권을 대신해 '대안' 공간으로서 변화를 민첩하게 수용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는 각각의 대안공간들이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어떻게 현재 미술계에서 새롭게 요청되는 사안들에 활용할 수 있을지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처음에는 기존 제도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가졌으나 이제는 정부 기금 지원을 받는 등 일정정도 제도 속에 안착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제 끊임없이 새로운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아트스페이스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노원희 작가의 작품 '관객중에'. 캔버스에 아크릴, 90.9x116.7cm, 2017 (아트스페이스 풀 제공) © News1
올해 5월 아트스페이스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노원희 작가의 작품 '관객중에'. 캔버스에 아크릴, 90.9x116.7cm, 2017 (아트스페이스 풀 제공)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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