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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 고용불안?’…고급 독서실 향하는 어른들

해외대학 본뜬 '유럽풍' 독서실 성황…대기표까지 등장
실용성 강조 'B+프리미엄' + '고용불안' 맞닿은 사회현상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17-10-22 06:05 송고
서울시내 위치한 프리미엄 독서실에서 이용자들이 공부하고 있다. (프리미엄 독서실 작심 제공(위쪽))© News1
서울시내 위치한 프리미엄 독서실에서 이용자들이 공부하고 있다. (프리미엄 독서실 작심 제공(위쪽))© News1

"오늘은 독서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내일은 영어회화 스터디 가요."

지난해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 박모씨(28·여)는 '공부계획'이 빼곡히 적힌 다이어리를 내보였다. 국제부로 발령을 받았다는 박씨는 "취업하면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 줄 알았는데 인사고과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금융공기업에 다니는 김모씨(32)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취업 1년 만에 공인회계사(CPA) 자격시험 준비를 시작했다는 그는 "CPA 자격이 있으면 승진에 매우 도움이 된다"며 "주변 동료들도 대부분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 공무원시험준비생 등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까지 수험서를 펼치는 '평생 공부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 박씨와 김씨가 다니는 독서실이 일반 독서실과는 다르다. 탁 트인 로비에 놓인 널찍한 고급 원목 책상에 책을 펼친 김씨는 개인 전등을 켜고는 독서실에 마련된 카페 라운지에서 원두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카페나 해외 대학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프리미엄 브랜드 독서실'이다.
◇고급책상·카페까지…'프리미엄 독서실' 찾는 사람들

'공부'가 소비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지만,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났다. 날로 높아가는 '청년실업률'과 다양화된 '자격증 시험', '업무 전문성'이 요구되면서 공부 소비자층이 학생에서 샐러던트((Salaryman+Student·공부하는 직장인) 등 '성인'까지 확장된 탓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시장도 넓어진다. 프리미엄 독서실이 속속 등장하는 배경이다. 프리미엄 독서실은 좁고 미로 같은 일반 독서실과 다른 모습이다.

서울의 한 프리미엄 독서실에 들어서자 넓은 로비에 들어선 개방형 책상과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총무의 안내에 따라 '학습성향'을 진단받으면 맞춤형 좌석을 추천받는다.

카페 분위기로 구성된 자유석부터 원형 칸막이 책상이 마련된 열람실, 1인실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고 스터디룸이나 1 대 1 공부 멘토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또 다른 프리미엄 독서실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의 '보들리안' 양식 설계를 본 따 독서실을 설계했다. 자유석부터 1인실까지 고급 자재로 구성한 이 곳에서도 △카페 △인터넷 강의 전용 컴퓨터실 △스터디룸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급스러운 학습 분위기나 편의시설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일반 독서실보다 이용가격이 2배 이상 높지만 일부 프리미엄 독서실은 대기 순서표까지 발급할 만큼 성황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프리미엄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박씨는 "평소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비슷한 분위기에서 더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는 프리미엄 독서실을 선택했다"면서 "일반 독서실보다 비싸긴 하지만 환경이 워낙 좋아 기꺼이 투자했다"고 말했다.

201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프리미엄 독서실 사업을 시작한 '토즈 스터디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프리미엄 독서실 이용자의 비율은 학생 60%, 성인 40% 수준이다. 관계자는 "전국 312개 스터디센터를 이용하는 누적 이용자는 10월 기준 180만명에 달했다"며 "성인회원의 비중이 한해 사이 70%가량 증가했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프리미엄 독서실 사업을 시작해 1년 사이 105개 지점을 낸 '작심 독서실'의 강남구 대표는 "일부 상권을 제외하면 독서실을 이용하는 회원 중 성인비율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며 "평생 공부시대에 맞춰 성인 이용자의 만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 유명 대학교 도서관 설계 양식을 본뜬 프리미엄 독서실 인테리어. (프리미엄 독서실 '작심' 제공)© News1
해외 유명 대학교 도서관 설계 양식을 본뜬 프리미엄 독서실 인테리어. (프리미엄 독서실 '작심' 제공)© News1

◇'청년실업·고용불안'…"언제 직장 바뀔지 모르는데 공부해야죠"

일반 독서실보다 비싼 가격에도 프리미엄 독서실로 몰리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변화한 학습성향'과 '평생 공부 추세'를 꼽으면서도 "악화되는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이 낳은 사회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프리미엄 독서실'을 찾는 이유로 'B+프리미엄 현상'을 들었다. B+프리미엄이란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대중 제품의 고급화를 선호하는 현상이다.

전 교수는 "과거에는 명품가방·고급 자동차 등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했다면 이제는 실생활에 필요한 제품 중 고급 제품을 찾는 방향으로 소비성향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국적으로 공부 열풍이 불면서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셀러던트 등 취업 후에도 승진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공부가 대중적인 사업 아이템이 됐고 같은 환경이라면 보다 좋은 학습공간에서 공부하길 선호하는 소비심리가 맞닿은 것"이라고 보았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변화한 학습성향'에서 원인을 찾았다. 윤 교수는 "과거와 달리 개인의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더 좋은 환경을 누리는 생활이 보편화됐다"며 "학습공간도 더욱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진화했다"고 진단했다.

또 "가구당 자녀의 수는 줄어들고 개인의 사회진출 시기는 늦춰지면서 30대까지 부모의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고등학생이나 취업준비생도 좁고 어두운 일반 독서실보다는 익숙한 넓고 쾌적한 프리미엄 독서실에서 공부하길 선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청년실업률의 악화와 고용불안도 성인의 발을 독서실로 향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재수, 삼수하는 취준생이 늘어나고 자신이 공부한 것 외에 새로운 전문지식을 습득할 필요성이 생겨나면서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설령 취업했더라도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그 직장을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고용불안'이 성인들도 공부할 수 밖에 없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윤 교수도 "한국의 경우 서비스업이 성장하면서 직업마다 상당한 전문지식을 요구하게 됐고, 계속해서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20대에 취업해 60대까지 3~4번 정도 직장을 바꾸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공부'는 평생에 걸쳐 계속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매주 3일씩 밤마다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밝힌 김씨는 "언제까지고 지금 직장에서 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며 "자격증이라도 갖고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 뒤 다시 펜을 잡았다.


dongcho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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