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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베스트셀러④]1980년대의 울분 드러낸 '인간시장'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10-07 09:05 송고
편집자주 신문배달 소년이 오기를 기다리고, 받자마자 신문을 휙휙 넘기며 면 가운데 옆으로 길게 실린 소설을 먼저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문예지에 연재된 작품을 아껴 읽으며 다음편에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 상상하던 '소설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뉴스1은 한국근대문학관의 추천으로, 해방 후 신문이나 문예지에 연재되고 책으로 출간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5편의 책 속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한다. 소설적 재미는 물론 당시의 사회상도 읽을 수 있는 '다시 읽는 베스트셀러' 네번째는 김홍신 작가의 '인간시장'이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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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있으니까 여자들만 불쌍해 보여. 여자들이 그렇게 악 받쳐가며 낳은 애들이 결국 남자의 성씨를 따르게 되고……. 애인끼리 서로 좋아하다 보면 남자는 멀쩡한데 여자는 뱃속에 혹이 생기고……. 왜 하느님은 여자의 배를 그렇게 학대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했을까? 하느님이 남자라 그랬을까.”
언젠가 병원 앞에서 기다리다 지쳐버린 내게 다혜는 이런 식으로 미안함을 얘기했다. 어떤 소녀의 낙태 때문에 늦었다는 핑계였다. “만약 남자에게 애를 배게 했다면 볼만했을 텐데…….” 다혜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볼만했겠지.” 나는 이렇게 대답해 놓고 어려서 어머니가 나를 꼭 배꼽으로 낳았다고 우기던 생각을 하고 피식 웃었다. 사내가 임신한다면 사내들 배꼽이 더 볼만하게 생겼을 것 같았다.

“굳이 여자보고 애를 낳으라고 할 테면 평등하게 여자는 낳기만 하고 통증이나 악쓰는 소리는 남자들에게 대신 시켰으면 되었을 걸…….” 다혜는 뭐가 그리 억울한지 내내 그런 소리를 했다. 내가 병원 입구에서 한 시간 가까이 떨고 기다리던 것이 미안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어린 게 불쌍해…….” 치한에게 못된 짓을 당한 소녀의 하소연을 다혜가 직접 들은 모양이었다.

“걱정 마. 내가 지금 하느님 되는 법을 연구하고 있으니까 곧 간단히 그런 걸 해결해 줄 수 있어.” “제발 그렇게나 좀 돼봐.” 다혜가 빈정거렸다. 늘상 들어서 면역이 되었을 텐데도 가끔은 내 황당한 소리를 삭여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투표 같은 걸로 뽑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구. 그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당선될 거야. 부정, 테러, 위협, 공갈, 사기 다 동원해서라도. 그래서 다혜의 소원부터 풀어줄게, 까짓 거. 여자에겐 잉태를, 사내에겐 이마나 코 끝에 혹이 생기게 해버릴 테니까.” 다혜가 꺄르륵거리며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덧붙이는 설명
‘인간시장’은 주인공 장총찬을 통해 인신매매의 본거지와 창녀촌 등에서 일어나는 이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1981년 '주간한국'에 처음 연재되었다. 간호학과 대학생인 다혜를 좋아하는 주인공의 사회의 불의에 저항하는 활약상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암울했던 1980년대의 시대적 울분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부 7권이 발행된 1984년에 대한민국 소설로는 최초로 100만 부의 판매기록을 세웠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9월26일부터 12월10일까지 인천시 중구 소재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에서 '금수회의록' '장한몽' '명금' '자유부인' '별들의고향' '인간시장' 등 근·현대 베스트셀러 소설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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