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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오주석의 한국의 美(미) 특강’

(서울=뉴스1) 최보기 북 칼럼니스트 | 2017-09-20 10:00 송고
© News1


우리 전통 문화예술에 별 감흥이 없었던 20세기 후반기의 필자에게는 그나마 '김덕수패'의 사물놀이와 판소리가 가장 익숙했다. 판소리는 음악적 애호보다는 고(故) 인당 박동진 명창이나 김상현 명창이 자주 등장해 풍자와 해학을 섞은 웃음을 선사했던 TV프로그램 덕분이었는데 인기의 정점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 카피였다.
'우리 것'에 대한 달아오른 열기는 지상파 방송국에서 추석이나 설 특집으로 기획했던 마당놀이로 이어져 연극배우 윤문식과 국악인 김성녀를 국민 스타로 끌어올렸다. 1993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가 발화(發花)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서편제의 하이라이트는 김명곤, 오정해, 김규철이 어우러져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청산도 청보리밭길의 롱테이크 샷(편집없이 길게 찍은 장면)이다.

사물놀이, 판소리, 마당놀이 정도에 머물렀던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은 한참 후인 2009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이 나오면서 건축, 조각, 서예, 미술, 주변 스토리(역사)까지 지평이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아는 것은 이전과 다르리라’는 '문화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최순우가 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최석조의 ‘우리 옛 그림의 수수께끼’, 손철주의 ‘꽃 피는 삶에 홀리다’ 같은 책들이 전에 없던 대우(?)를 받았다. 그 책들 중 일학(一鶴)은 2003년 출간된 고(故) 오주석 선생(1956~2005)의 ‘한국의 미(美) 특강’이었는데 얼마 전 개정판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미(美) 특강’은 저자가 전국 팔도를 누비며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설파했던 강연의 속기록을 풀어서 보강한 강연 모음집이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안목만큼, 정확히 그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다. 

알다시피 청중 앞의 강연에는 어려운 이론이 길게 누운 문장이 아니라 생생한 입말이 날아다닌다.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므로 연사의 말이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할 수 밖에 없다. “무조건 1미터 전방이 아니라 마음이 끌리는 그림의 대각선 길이 1~1.5배 앞에서 느긋하게, 천천히 마음을 집중해서 감상하시는 것이 좋다,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처럼 구체적이다. 그 때의 감상 원칙 두가지는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독자가 만약 이 책을 읽은 후에 단원 김홍도의 '무동'이라는 풍속화를 본다면 그 동안 한눈에 쓱 보고 지나쳤던 것을 최소한 십 분 이상은 들여다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8페이지에 걸쳐 '무동'의 미술적 총론부터 등장 인물과 소품, 배경 등 각각이 갖는 감상 포인트를 알게 된 덕이다. 같은 풍속화 '씨름'에서 ‘다음에 나설 선수가 누구인지, 구경꾼 한 사람의 손바닥이 거꾸로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김홍도의 암호인지 실수인지 해학인지’ 등은 이젠 너무 알려져서 식상할 정도다. 이런데도 ‘어? 그래? 천하의 김홍도 그림에 손바닥이 거꾸로 그려졌다고?’ 하는 사람은 얼른 책부터 사고 볼 일이다.

풍속화, 산수화, 인물화, 기록화, 민화, 불화 등 그림은 물론 서예, 도자기, 가구, 현판, 건축까지 동서남북으로 휘젓는 ‘고인의 강연’은 꼭 우리 전통의 문화예술이 아니라 서양 예술의 감상에 나설 때도 미리 읽고 가면 도움이 될 만큼 ‘예술 감상의 기술’이 살아 숨쉰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푸른역사/ 2만5000원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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