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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비엔날레'는 무엇을 위한 행사일까

9월 서울, 청주, 광주, 부산, 제주 등 비엔날레 동시 개최
수십억 예산…"지역성에 발목, 미술 담론형성도 역부족"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9-17 13:49 송고 | 2017-09-18 09:51 최종수정
지난 1일 오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제주비엔날레 2017'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2017.9.1/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지난 1일 오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제주비엔날레 2017'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2017.9.1/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9월 서울을 비롯해 청주, 광주, 부산, 제주 등 전국에서 각종 미술 '비엔날레'가 잇달아 막을 올렸지만, 대중은 물론 미술인들의 공감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행사에 국비 및 도비·시비 등 국민 혈세가 수십억원 많게는 100억원 안팎이 들어가는 행사지만, 부실한 전시 내용 및 조직 운영의 문제는 물론, 지역성에 발목 잡혀 정작 미술계 담론 형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9월 들어 '2017서울도시 건축비엔날레'(9월2일~11월5일)를 시작으로 '제5회 국제타이포그래피비엔날레'(9월15일~10월 29일) 등 서울 내에서 크고 작은 비엔날레가 시작됐고, '제주비엔날레(9월2일~12월3일), '광주디자인비엔날레'(9월8일~10월23일), '청주공예비엔날레'(9월13일~10월22일), 부산 '바다미술제'(9월16일~10월15일)까지 전국 주요 도시에서 격년제 형식의 미술전이 시작됐다.

각각의 비엔날레는 미술, 디자인, 공예, 공공미술 등 장르를 달리하고 있지만, 운영 조직 및 지역성의 문제를 비롯해 전시 내용에 있어서도 장르를 제대로 특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3일 2017 청주공예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해 작품들을 관람했다. 2017.9.13/뉴스1 © News1 남궁형진 기자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3일 2017 청주공예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해 작품들을 관람했다. 2017.9.13/뉴스1 © News1 남궁형진 기자

◇공예없는 청주공예비엔날레…"모터쇼라고 해놓고 에어쇼하는 셈"

청주공예비엔날레의 경우 공예를 주제로 내세웠지만 정작 공예가 없는 비엔날레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에는 57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디자인평론가 최범씨는 "청주공예비엔날레의 가장 큰 문제는 공예비엔날레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엔날레의 메인 행사인 기획전에 공예가 아닌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미술 타 분야 장르가 뒤섞여 있다"면서 이는 "자동차 모터쇼인 줄 알고 갔는데 에어쇼를 하고 있는 형국인데다, 그나마 에어쇼이면서도 실제 비행기는 한 대도 없는 상황"이라고 빗대어 쓴소리를 했다.

아울러 "기획전과 함께 페어(작품을 사고 파는 장터)가 행사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데, 페어 역시 반은 지역 공예품이고 반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화랑들의 전시 작품들이었다"며 "지역 공예품 또한 동네 아트숍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비엔날레를 주최하는 지방자치단체 쪽이 '비엔날레 경제효과'를 내세워 홍보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2014년 청주시는 청주대학교에 청주공예비엔날레 성과 분석 연구용역을 맡겨 직접유발효과 및 산업파급효과에서 총 621억원의 경제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 평론가는 "경제효과가 비엔날레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을뿐더러, 경제효과로 산출된 수치가 과연 적정한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바다미술제가 열리는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의 설치 현장. 2017.9.15/뉴스1© News1 김아미 기자
바다미술제가 열리는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의 설치 현장. 2017.9.15/뉴스1© News1 김아미 기자

◇자연환경 고민없는 바다미술제…폐쇄적인 운영 조직도 문제

부산에서 열리는 '바다미술제'에는 올해 국비와 시비 등 17억여 원이 투입됐다. 부산비엔날레를 이끄는 사단법인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 집행위원장 임동락)가 이 행사를 주최한다. 

바다미술제는 자연환경미술제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정작 바다와 해변 모래사장이라는 장소의 환경적 특수성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막 하루 전인 지난 15일 바다미술제가 열리는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은 제주도에서부터 태풍 '탈림'이 북상하며 영향을 받아 미술 작품들이 채 설치되지 못했다. 환경미술제를 표방하면서도 가변적인 자연환경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주최 측은 "예년보다 작품들의 크기가 더 커졌다"고 홍보했지만 드넓은 백사장에서 무조건 작품 크기만 키우는 게 자연환경미술제로서 바다미술제가 가야 할 방향인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바다미술제의 더 큰 문제는 운영 조직에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바다미술제는 부산비엔날레와 함께 사단법인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이끌고 있으며, 임동락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도태근 전시감독 등 모두 부산미술협회를 기반으로 한 작가들이다.

앞서 임 위원장은 부산비엔날레 운영 등을 놓고 직원 및 전시감독과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부산비엔날레의 전신인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과 바다미술제,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 운영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제9대에 이어 10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공모와 재공모를 거쳐 재선임되면서 사실상 부산 지역 주요 미술행사들을 도맡고 있다.

부산 미술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지역 미술단체들이 기득권을 쥔 이익단체로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행사를 휘두르면서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망쳐놓고 있다"며 "특히 지방자치제 이후 지역 정치인들이 '표밭'을 의식하며 이들에게 휘둘리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제주비엔날레 본관 전시인 제주도립미술관 전시 전경. 2017.9.1/뉴스1© News1 김아미 기자
제주비엔날레 본관 전시인 제주도립미술관 전시 전경. 2017.9.1/뉴스1© News1 김아미 기자

◇1년도 안 돼 뚝딱 만든 '제주비엔날레…"연속성 의문"

올해 처음 생긴 '제주비엔날레'는 제주도립미술관이 주축이 돼 행사를 이끌었다. 지난해 8월 선임된 김준기 관장이 지난 4월 비엔날레 출범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5개월만에 선보인 행사다.

6월 쯤 참여작가 최종 명단이 나오고 작품 설치까지 총 석 달 안팎이 소요됐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현대미술전인 독일 카셀도큐멘타가 5년,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10년 동안 준비해 여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이 때문에 행사를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졸속으로 강행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지역 미술계에서도 나오는 상황이다.

주최 측은 비엔날레의 주제를 '투어리즘'으로 잡고 "미술을 매개로 제주 지역과 연계한 문화예술 축제를 지향해 궁극적으로 제주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행사에는 예산 15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정작 제주 관광의 새 패러다임을 모색할 만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시각이 있다. 그나마 일제 강점기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던 곳인 알뜨르비행장에 장소 특정적 설치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본전시에 해당하는 제주도립미술관 전시는 "시각예술 작가들과 함께 관광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살펴본다"는 취지와는 다르게 지역 작가들 및 단체들의 맥락없는 '잡탕' 전시로 그쳤다는 것이다.

미술관 입구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을 이용한 조각 작품들의 수준이 "비엔날레급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비롯해, 미술관 1층에 제주 지역 화가들이 그린 한라산 풍경화 45점을 성인 키의 3배쯤 되는 높이의 벽면 맨 위쪽까지 다닥다닥 붙여놓은 '한라살롱'은 "관람객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은 큐레이팅"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여기에 김준기 관장이 과거 예술감독을 맡았던 '지리산프로젝트' 작품들이 제주비엔날레에서 '재탕'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비엔날레를 '브랜딩'화하기 위해 원희룡 도지사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선출직 공무원인 도지사와 타지에서 온 임기제 미술관장이 주도하는 미술전이 연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제주비엔날레를 비롯해 전국 모든 비엔날레들이 이제는 양이 아닌 질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 평론가는 "비엔날레가 열려도 특정 미술인들과 관계자들을 제외하고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미술이 대중의 기호에 영합할 필요는 없지만, 나랏돈을 쓰는 미술전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네 축구 선수들을 데리고 유럽리그에 갈 수 없지 않느냐"며 "각 지역 비엔날레들이 지역성을 고려하고 지역 작가들을 안배하는 문제에 발목 잡히면서 말 그대로 '지역 비엔날레'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2017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막식이 7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비엔날레에서 열리고 있다. 2017.9.7/뉴스1 © News1 남성진 기자
2017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막식이 7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비엔날레에서 열리고 있다. 2017.9.7/뉴스1 © News1 남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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