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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조선소]② 다단계 하청에 빠진 조선…안전사각 광폭확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STX조선 사고 희생자
하청 급증…미숙련 근로자 대거 유입, 사고 점증

(서울=뉴스1) 이철 기자 | 2017-09-11 06:00 송고 | 2017-09-11 10:36 최종수정
21일 오전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폭발사고와 관련해 해양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6개 관계기관 직원들이 사고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사고현장에 방폭등이 걸려 있다.(창원해경제공)2017.8.21/뉴스1 © News1 강대한 기자
21일 오전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폭발사고와 관련해 해양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6개 관계기관 직원들이 사고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사고현장에 방폭등이 걸려 있다.(창원해경제공)2017.8.21/뉴스1 © News1 강대한 기자

#지난달 20일 오전 11시37분쯤 창원 STX조선해양 4안벽에서 건조 중이던 7만4000톤급 석유화학운반선 내부의 잔유(RO)보관 탱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4명이 숨졌다.

숨진 근로자들은 1차 협력사가 아닌 재하청 업체 소속의 소위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일용직 근로자들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번 사고가 환기시설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탱크 안에 유해화학기체가 빠져나가지 않고 쌓여 있는 상황에서 전기스파크가 일면서 인화성 가스가 발화해 사고가 생긴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숨진 4명의 사인은 폭발로 인한 것이 아닌 질식사다. 경찰에 의하면 숨진 4명은 송기 마스크가 아닌 방독 마스크를 착용했다. 송기 마스크는 산소 결핍이나 먼지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게 작업자에게 호스를 통해 공기를 강제로 공급하는 장치가 달린 마스크다.

◇ STX조선 사고 희생자, 위험에 무방비 노출

지난달 STX조선해양에서 있었던 폭발사고는 선박제조 과정이 외주화되고 하청·재하청의 다단계 구조가 일상화되면서 근로자의 작업안전을 위한 관리의 사각이 크게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전대책 자체는 강화되고 있지만 하청에 재하청 구조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지켜지지 못하는 안전규정이 돼 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조선소 작업은 원청이 조명등이나 환기구 시설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각각 전문적으로 설치하는 업체들이 필요한 물량을 신청하면 원청이 지급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협력업체들이 조명과 환기구를 설치하면 도장 전문 협력업체가 탱크에 들어가 일을 하는 구조다.

경찰은 환기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은 원청인 STX조선해양 책임으로 보고 있다. 원래는 배기관 4개, 흡입관 2개를 설치해야 하지만 사고 현장에는 배기관 2개, 흡입관 1개가 전부였다.

사고 현장 2층에서 깨진 채 발견된 조명등을 비롯해 4개의 조명등 모두 패킹 등이 없는 것으로 확인, 방폭기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폭등은 가연성 가스가 전구와 부딪치지 않게 패킹(공기·가스 등 차단) 등으로 접합부를 봉합해 놓은 조명등이다. 만약 폭발 원인이 조명등 때문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해당 설비를 보유·관리한 원청의 책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예방에 필요했던 송기 마스크는 원청이 모두 하청업체에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송기 마스크는 머리 뒤쪽에 공기가 들어오는 관이 있어 작업시 불편한 단점이 있다. 때문에 작업자들은 평소 방독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하청업체도 이를 용인했다.

평소 환기가 곧잘 되던 작업장에서는 방독 마스크만 써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사고 당시에는 달랐다. 수사본부는 사망원인이 특정 가스 흡입인지, 산소부족인지는 규명하는데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원인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니나 안전 관리 소홀에 대한 원청의 책임은 비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전의식에 대한 낮은 체감도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면서 원청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안전 사각지대가 커진 점은 사고방지 대책 마련과 관련해 주목할 대목이다.

실제 STX조선해양은 사고 뒤 사망자들이 하청업체인 K기업 소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망자들은 K기업이 아닌 K가 재하청을 준 M기업 소속이었다. 수사본부는 숨진 4명의 근로계약서가 허위로 작성됐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이와 관련 "숨진 작업자들은 STX조선 협력업체의 재도급업체 소속임을 4명의 고인이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통해 확인했다"며 "다단계 하도급과 하청에 대한 원청의 위험작업 전가 등이 빚은 구조적 참사"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고 당일 작업자 250여명이 근무했으나 안전 관리자는 3명에 불과해 위험에 대한 대비가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2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선박 폭발 사고현장이 통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11시 37분께 STX조선해양 석유화학제품선박 내 잔유보관탱크가 폭발해 4명이 숨졌다. 2017.8.22/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2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선박 폭발 사고현장이 통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11시 37분께 STX조선해양 석유화학제품선박 내 잔유보관탱크가 폭발해 4명이 숨졌다. 2017.8.22/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급속히 늘어난 외주…하청 미숙련 근로자 대거 유입, 사고 점증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실제 조선소 작업현장에 투입되는 협력사(하청) 직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8년 8만 3979명이었던 조선업 전체 협력사 기능직 직원수는 2012년 10만 2308명, 2013년 11만 4167명, 2014년 13만 4843명, 2015년 13만 5785명으로 대폭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원청의 기능직 직원수(사무직, 기술직 제외)는 2008년 3만 8576명에서 2015년 3만 5809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2015년 조선업 전체 기능직 종사자 17만 1594명 중 하청 직원의 비중은 79.1%다.

조선작업의 급속한 외주화에 비례해 하청근로자 사망사고 건수도 늘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정의당의원실에 따르면 2013년 300인 이상 11개 조선 사업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하청근로자는 7명이었으나 2014년 15명, 2015년17명, 2016년 15명, 2017년 12명으로 급증했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한 조선소 관계자는 "2013~2015년에 해양플랜트를 대량으로 수주하면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3사를 중심으로 인력부족 현상이 일어났다"며 "이 때부터 미숙련 노동자들이 협력사를 통해 대거 유입됐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협력사만으로 상선·해양플랜트를 건조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설계부터 도장까지 거의 전 공정에 협력사가 투입된다는 설명이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사실 조선소 직영(본사) 직원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효과가 미미한 이유가 협력사들이 거의 전 공정에 투입되기 때문"이라며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면 (파업을 하면)공장 자체가 '올스톱'인 자동차와 달리 조선소의 경우 원청이 없어도 대부분의 공정이 협력사 선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청 직원들도 하청과 비슷한 위험에 노출돼 있으나 절대적인 수가 적어 사고 인원수 역시 적은 것"이라며 "특히 오랫동안 해당 분야에서 근무한 원청 직원과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다 막 조선업에 몸담게 된 하청업체 직원의 숙련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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