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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콘크리트 시대'에 저항하다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개최
1987~1997년 건축집단 활동 통해 한국 현대건축 재조명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9-05 11:23 송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News1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News1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김중업(1922-1988)과 김수근(1931-1986)의 타계, 분당·일산신도시 건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이다. 도시 건축의 급속한 발전과 동시에 건축물 붕괴라는 참사가 동시다발로 벌어진 게 바로 이 시기다.

한국 현대건축 10년의 '명멸사'를 되짚어 보는 전시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을 지난 1일부터 서울관에서 개최했다. 'UIA 2017 서울 세계건축대회'가 열리고 있는 9월, 서울 주요 전시공간에서 건축 관련 전시가 활발한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이같은 전시를 마련했다. 

'콘크리트'가 민주화 이후 건설과 소비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폭발적인 성장과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시장 개방, 그리고 외환위기로 이어진 짧은 영화의 급속한 붕괴를 상징한다면, '종이'는 그에 대응한 우리 건축계의 각성과 이를 토대로 한 건축운동이 남긴 결과물이자 건축 집단이 추구했던 이념을 뜻한다.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를 기획한 정다영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1987년 6·10 민주화혁명 30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올해 한국 현대건축을 되짚는 비평적 성찰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 주제에 쓰인 '종이'는 '콘크리트'로 대변되는 당시 견고한 시대상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라며 "1987~1997년 활동했던 주요 건축집단들의 활동을 되짚어보고, 그들이 생산한 대안적 움직임들을 종이라는 결과물을 매개로 살펴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태동한 청년건축인협의회(1987-1991), 건축운동연구회(1989-1993), 민족건축인협의회(1992-), 4·3그룹(1990-1994), 건축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1993-2000), 서울건축학교(1995-2002), 그리고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1995-2006) 등 11개의 건축 집단을 소개한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News1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News1

당초 전시 주제로 생각했던 건 '찌라시와 공구리'였다. 그만큼 이번 전시에서는 '종이'라는 매체는 각 건축집단들이 당대 건축 문제들에 대한 대안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요 수단으로 부각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청년건축인협의회 활동과 이들이 남긴 연구 자료가 최초로 공개된다. 먼저 청년건축인협의회는 도시 빈민 문제, 재개발·재건축 문제에 대해 대응하고자 했던 청년건축인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청년건축'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해 활동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진보 건축 집단으로서 이들은 진보적인 역사이론을 전파하며 '도심지 소필지' 개발, 용산 공원화 사업 등 오늘날에도 유효한 도시건축 문제를 처음 제기했다.

수도권지역건축학도협의회는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였다. 청년건축인협의회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들은 건축가들이 사회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운동을 전개했다.

건축운동연구회는 가장 학술적인 단체로 꼽힌다. 당시 첨예한 이슈였던 중앙청 철거 문제, 건축 분야의 포스트모더니즘 이슈 등을 학술적 맥락에서 분석했다. 또 러시아 구성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들은 러시아 혁명이 생산한 건축운동에 대한 학습을 통해 관련 책을 번역해 내놓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4.3그룹은 건축계 내부의 질적 갱신을 위해 상호학습했던 단체였다. 이 그룹에 속한 승효상, 안상수 등이 현재 리딩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 삼청동 한옥보존지구가 해제되고 빌라들이 들어서던 시기, 도시의 맥락에 맞는 건축물 제안하는 전시 및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과 같은 건축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안상수 역시 다수의 전시 도록을 디자인하는 등 한국 건축계를 매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민족건축인협의회의 역할도 컸다. 이들은 지역으로 내려가 '흙 건축' 주창했다. 젊은 건축인들이 함께 도시 문제를 재발견하자는 취지로 '문예아카데미'를 진행했는데, 당시 배움에 목마른 건축학도들이 이 아카데미를 통해 서구 이론을 수용했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News1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News1

주택 200만호 건설, 신도시 공급 등 건축시장이 가장 풍요로웠던 시절 등장한 이 집단들은 당대 상황을 비판적으로 성찰했지만, 그 활동이 10년 넘게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집단들의 활동들은 한국 현대건축의 담론 지형을 그리는 지표를 제공했을뿐 아니라 한국 건축이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학예사는 "1990년대는 건축인들이 건축 내·외부 경계를 넘나드는 지적 토대를 쌓고자 분투한 시기였으며, 한국에서 현대건축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시기"라며 "이 전시는 콘크리트의 세계에 대응하고자 했던 종이가 남긴 유산과 만나는 공간이자 한국 현대건축을 둘러싼 다층적인 맥락과 지평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이 건축가 개인전이나 파빌리온 설치가 아닌 한국 건축의 역사를 주제로 기획한 전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라며 "건축을 연구·수집하는 전문 시각예술기관으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건축 아카이브 연구와 향후 건축 전시의 방향을 점검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와 함께 오는 12월9일에는 한국건축역사학회와 서울관 멀티프로젝터홀에서 공동주최 심포지엄을 진행한다. 또한 전시기간 동안 제 3전시실 내에서 건축운동에 참여한 주요 관계자들을 초대하여 8차례 포럼을 진행한다.

전시장 공간은 포럼이 열릴 때마다 테이블이 이동되는 등 주제에 맞게 재배치되어 공간의 새로운 분위기를 전달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할 예정이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하는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9월1일~11월5일) 관람티켓 지참 시 미술관 관람료 1000원이 할인된다. 전시는 2018년 2월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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