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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자유경제 바탕에는 약탈의 그림자 있다"

'김훈과 함께 하는 소설 낭독 캠프' 강연

(칠곡=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9-03 10:59 송고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경북 칠곡군 송정자연휴양림에서 열린 '김훈과 함께 하는 소설 낭독 캠프'에서 김훈 작가가 '문학과 인생'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News1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경북 칠곡군 송정자연휴양림에서 열린 '김훈과 함께 하는 소설 낭독 캠프'에서 김훈 작가가 '문학과 인생'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News1

"우리 동네에 한 그릇에 3000원짜리와 9000원짜리 짬뽕집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누가 채찍으로 때리지 않아도 '아 나는 3000원짜리다' 이러면서 돈 없는 젊은이들이 싼 집을 갑니다. 돈이 있으면 9000원, 없으면 3000원 짜리를 먹으라는 것은 시장의 자유, 평화, 합리성, 시장경제의 건전함, 공정거래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마지막 사회의 모습이 이런 것인가, 이런 것이라야 하는가 의문이 있습니다."
  
'공터에서'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김훈(69)이 경북 칠곡군에서 독자들 100여 명을 만났다.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경북 칠곡군 송정자연휴양림에서 열린 '김훈과 함께 하는 소설 낭독 캠프'에서 김훈 작가는 '문학과 인생'이라는 주제로 소설과 인생이 어떠해야 하는지 강연했다. 김 작가는 기근으로 사람들이 죽는 상황에서 책읽기에 몰두하다가 화적의 손에 죽은 조선시대 인물 김득신(1604~1684)을 현실과 문학하는 이 사이의 갈등과 모순의 예로 들며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 김 작가는 펄펄 뛰는 현실, 마음의 힘 등을 작품에 담은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등이 자신이 지향해야 할 문학이라고 밝혔다. 이념이라는 '프리즘' 없이 늘 먼저 맨눈으로 현실을 관찰하려고 애써온 작가답게 그는 "자유경제, 시장질서 이런 말에는 약탈의 그림자가 있다"면서 개를 위한 고급 음식점이 생겨난 반면 3000원짜리 짬뽕집에 가난한 젊은이들이 가득한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낭독캠프는 경북 칠곡군(군수 백선기)과 이야기경영연구소(대표 이훈)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출판사 해냄이 협찬했다. 김훈 작가의 강연 외에도 '문학 토크' '문학 콘서트', 김훈 작가의 작품 일부를 참가자들이 조를 지어 낭송하는 '낭송대회'도 열렸다.

다음은 김훈 작가의 강연 내용 요약이다.

주최 측에서 '소설과 인생'이라는 주제로 말하라고 정했다. 내가 정한 게 아니다. 광범한 거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많은 작가들이 인생이 뭔가 쓴 것을 분석해서 설명해주는 좋은 강연이 되겠다 싶었는데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 오면서 좋은 글을 읽었는데 조선 선조시대 김득신이라는 선비에 대한 글이다. 안동 김씨인 이 선비는 출세는 높이 못해 미관말직에 머물렀지만 책을 읽고 많은 시를 비평한 당대의 가장 높은 비평가로 알려졌다. 극렬한 언사를 동원해 인정사정없이 비판하거나 칭찬하는 일을 했다. 특히 책을 많이 읽어 자기 글에 따르면 두보를 5000번, 사기를 1000번 읽었고 백이숙제 평전은 1억번을 읽었다 한다. 책을 억이나 만번 읽어 자기 서재 이름을 '억만재'라고 지었다.
그런데 조선 현종 때인 1670년 무렵 2년에 걸쳐 기근이 들어 500만명중 10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김득신은 이 기근 속에서도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가 쓴 글 중에 "어떤 사람이 그때 나에게 와서 묻기를 '금년에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죽은 사람 숫자와 당신이 읽은 책 중 어느 것이 많은가' 물었다. 그런데 이는 대체로 조롱하는 것이었다"라는 부분이 있다. 이걸 읽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팔도에 기근이 들어 인구 5분의 1이 굶어죽고 나머지도 기동불능의 상태인 비참한 현실에서 책을 억만 번씩 읽는 독서가의 시선이 있다. 그 비극 속에 들어앉아 책을 읽는 자를 조롱하는 또 다른 지식인이 있다. '저 놈이 나의 책읽기를 조롱하고 있구나' 하는 김득신 자신의 시선이 있다. 여러 가지 시선이 짧은 문장 속에서 교차하며 비극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 시대에는 많은 이들이 굶어 도적이 됐다. 화적은 조직을 이루는 노상강도들인데 김득신은 책을 읽다가 화적들에게 끌려가 살해됐다. 책읽기와 현실 사이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마친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책읽기와 글쓰기와 인간의 현실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의 심각한 의문을 이 문장과 그의 삶이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여름에는 날이 더워 여러가지 책만 읽다 날을 보냈는데 주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이었다. 2500년~3000년 전의 책들인 테로도투스의 역사책,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 등이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원래 책 읽는 것을 자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 책을 보니 전쟁이 아닌 역사는 없었다. 이 사람들은 전쟁이나 살육에 대한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고대에 부족과 부족이 싸우면 전원이 나와 싸우다 전원이 죽는다. 씨를 말리는 전쟁이다. 부락을 점령하면 아무도 살려두지 않는다. 문명이란 교역을 통해 이뤄지는 것인데 인간의 교역은 약탈과 구별이 되는 게 아니다. 원래 같은 것이다. 아마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교역은 기본적으로 약탈의 구조를 갖고 있다. 고대 전쟁은 이게 뒤죽박죽해서 아무도 둘을 구분못한다. 예를 들어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과 약탈, 살육이 이뤄졌다. 셋이 명료하게 구별되는 거 아니다. 교역한다며 통행료를 받고 안되면 약탈하고 그런 거다. 이런 역사서들을 읽다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김득신처럼 읽고 글을 써야 하는가, 어떤 길이 있는가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 책 중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즐겨읽는다. 우리는 그보다 오래된 역사서를 가진 게 없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전쟁과 약탈과 살육, 왕조의 흥망성쇠에 관한 기록이다.

삼국사기도 전쟁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신라가 고구려를 쳐부술 때는 피가 흘러 개울을 이루었고 당 병사들의 방패들이 비에 떠내려갔다고 써 있다. 과장된 것이겠지만 얼마나 참혹한지 보여준다. 페이지마다 사람이 죽은 기록이 나온다. '적 3000을 베었다' '5000을 베었다' 같은. 고대 전쟁에서는 되도록 포로를 산채로 잡지 않았다. 농업생산량이 적어 먹일수 없고 또 포로는 항상 배반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들을 먹여 다시 전쟁터로 데려가 쓸 수 없으니까.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도 전쟁과 살육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부분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이다. '마음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스님이 보여준 것이다.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시기에 몽고군은 우리나라 남해안까지 왔다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 하기를 일곱 번을 했다. 그때 일연은 황룡사가 불타고 잿더미가 된 경주를 봤다. 일본 원정을 갈 전선 500척을 만들라는 몽고의 명령을 받아 고려는 포항 일대에서 배를 만들었다. 이것이 지체되자 독려한다고 왕이 경주에 왔는데 그때 일연이 수행했다. 나는 그때 일연의 마음을 상상할 수 없다. 불타 잿더미가 된 경주를 보는 마음을.

그런데 일연은 삼국유사에 황룡사 얘기를 썼다. 황룡사가 잿더미가 되고 어디어디 부서지고 같은 피해 그 자체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우리 한국인이 황룡사를 구상할 때 가졌던 평화와 화해의 비전이 뭐였는지를 쓴 것이다. 황룡사를 만들 때 어떻게 인도같은데서 시주가 들어왔는지, 온 나라가 어떻게 우리의 포부를 지원했는지, 이런 얘기를 쓴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전쟁에 의해 무너질 수 없는 인간의 꿈, 황룡사의 꿈을 거기 써놓은 것이다. 황룡사 얘기뿐 아니라 다른 많은 마음의 일들을 기록했다.

마음은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중요한 것이다. 마음으로 역사를 구성할 수 있다. 실증주의를 공부한 이들은 삼국유사가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책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것이다. 마음이 인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데 마음이 역사를 이룰수 없다는 것은 공허한 이야기다.

얼마전에는 울진 반구대 암각화 있는 곳을 가 하루종일 유심히 들여다봤다. 태화강 상류가 흘러내려 울산 앞바다에 이르는 그곳에 만년 전 그린 그림이다. 호랑이를 창으로 찍는 그림, 보트를 타고 물줄기를 따라 동해바다에 가서 고래를 잡는 그림이 있다. 고래는 종류가 수십가지인데 돌고래, 여우고래 등 그 특징을 다 잡아 그려놨고 먼바다에서만 사는 고래도 그려놨다. 반구대 사람들은 호랑이도 잡고 고래도 잡는 아주 멋있는 남자들이었다. 고은의 시의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의 구절처럼 산에도 살고 바다에도 사는 이들의 그림이 거기서 석양무렵 빛을 받아 찬란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안에 종교적 제의의 표현이나 추상, 문양이 없는 완전한 생활의 그림이었다. 십여 명의 남자들이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고래를 잡으러 가는 그림이 있었다. 십여 명이 동원되는 강력한 생산력을 가진 거대한 부족, 집단노동을 통제할 수 있는 질서와 체제가 있었다는 의미인데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거기서 울산 앞바다를 갔더니 아직도 고래가 드글드글하더라. 만년전 고래가 아직도 솟구치며 있는 그걸 보니 신바람이 났다. 암각화 그림은 전쟁이나 살육이 없고 노동에 의한 생산. 생산에 의한 분배, 노동에 의한 생활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구려 (초기)벽화도 씨름하고, 곳간에 고기가 걸려 있고, 귀부인들이 외출하는 생활과 밀착한 그림을 그려냈다. 하지만 일상의 구체성을 그려놓다가 점점 추상화되어 도형과 기호, 이념의 세계가 된다. 처음에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생활만 있었다. (고구려 벽화에는) 은하수, 견우 직녀, 카시오페이아, 큰곰자리 등 별의 좌석이 지금이랑 똑같이 그려졌다. 별들이 무리를 이뤄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그려놓은 것이다. 그림이 실제적이고 생활적인 순결한 구체성을 갖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반구대 그림을 보면서 저런 삶의 모습을 쓰는 것이 내가 내 소설과 삶을 밀착시켜나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했다. 굉장히 행복한 생각이지만 원고지에 옮기는 것은 고통스럽고 때때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내가 갈 길이라는 것을 안다. 그게 어려운 것을 알기에 고통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것이다.

일연이 경주에 가서 짓밟을 수 없는 황룡사의 꿈을 쓰는 것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것이었다. 짓밟혀진 조국에 대해 쓰려고 70살이 넘은 일연이 자료를 모두 갖고 인각사(경북 군위군 소재)로 들어갔다. 인각사로 들어가는 늙은 중을 생각하는 것은 눈물겨운 일이다. 인각사를 최근에 가봤더니 불도저로 밀어 절을 두 토막 만들어놨더라. 절 가운데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민족의 성지일텐데 가슴이 아팠다. 이런 것들이 글 쓰는 일, 소설과 인생을 결부시키는 일에 대한 나의 고민이다. 김득신이라는 선비의 비극과 일연스님이 걸아간 길, 반구대 암각화의 그 때의 사람들이 남긴 삶의 자취가 내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한다. 

나는 1948년생인데 6.25전쟁 때 3살이었고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없지만 부산 피난지에서 내가 자랐을 때의 기억은 있다. 중고등학교 때는 파출소나 동사무소 앞을 지나지 않았다. 국가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어렸을 때부터 딱 봤기 때문에 옆으로 피해다녔다. 총을 든 경찰관이 보초서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무서웠다. 이 세상에 대한 공포, 두려움, 억압, 비리, 부조리, 부패 이런 거를 잘 알았다. 총체적으로 썩었기에 국민학생들도 다 알고 있었다.

교실이 없어서 천막을 치고 배우는데 겨울에 조개탄이라는 걸 땠다. 천막 뒤는 찢어져서 찬바람이 불고 나같은 애는 항상 거기에 않고 어떤 아이는 항상 난로옆이었다. 선생은 그것을 바꿔주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다 안다. 돈을 안갖다주면 항상 바람 구석에 앉는다는 걸. 나는 너무 추워서 집에서 깡통을 가져와 불을 덜어 깡통에 담아 끼고 앉았다. 옆의 애들도 난로에서 불을 집어다 깡통을 끼고 있는다. 그러자 난롯가에 앉은 애들이 불을 가져가지 말라고 했다. 운동장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계급 투쟁. 전쟁 뒤라 애들이 정말 사나워서 무섭게 싸웠다. 각목을 들고 두들겨 패고 싸웠다. 며칠 후에 나는 난롯가로 갔다.(웃음) 그게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소년의 가슴에 정말 회복할 수 없는 상처였다. 

나는 일산에 사는데 짬뽕값이 한그릇에 6000원이었는데 지금은 3000원과 9000원, 둘로 갈라졌다. 돈이 많은 이들은 9000원, 없으면 3000원 짜리를 먹는데 3000원짜리 가게에는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는 사람들, 또 교대하려 출근하는 사람들, 밤새 대기한 의경과 전경들, 모텔에서 나온 젏은이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젊은이들이 가득 차서 먹고 있다. 어떤 젊은이들은 혼자 왔는데 자리가 없어 처음 본 낯선 이와 둘이 마주앉아 먹는다. 새벽 3000원짜리 짬뽕가게 풍경은 정말 비극적이다.

9000원은 정말 맛있다. 3000원짜리와 국물 베이스는 같다. 그런데 주꾸미 같은 거를 더 넣은 거다. (하지만) 국물을 먹어보면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 선한 음식이 아니라 가루를 풀어 만든 것이다. 먹으면 목구멍을 쥐어뜯으면서 넘어간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은 든다. 국물은 무한리필이다. 이걸 젊은이들이 계속 먹고는 어디론가 간다. 이것은 '약육강식'은 아니다. 돈이 있으면 9000원, 없으면 3000원 짜리 먹으라는 것은 시장의 자유, 평화, 합리성, 시장경제의 건전함, 공정거래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게 완벽한 경제질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마지막 사회의 모습은 이런 것인가, 이런 것이라야 하는가의 의문 또한 있다. 이 의문을 제기하는 힘을 '인문주의'라고 생각한다. 이게 아니면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경제주의, 자유로운 교역이라 하더라고 거기에는 어떤 약탈의 의미가 바탕이 깔려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내 말은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경제 수치를 들이대며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러리라는 혐의를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 동네는 애완견들이 많다. 개병원들이 많이 생겼는데 개 한방병원도 생겼다. 개침, 개부황, 개보약 이런 걸 해주거나 만들어준다. 한의학에 개 한방이 없는데. 개종합병원엔 개 시티(CT), 개 엠알아이(MRI)도 있다. 비난하는 건 아니다. 개식당도 생겼다. 개를 데려가 먹이는 식당 3개가 생겼다. 메뉴가 40개가 된다. 사슴고기는 한끼에 1만5000원, 샐러드는 유기농인데 8000원이다. 하도 신기해서 식당마다 메뉴 적힌 종이를 모아 집에 갖고 있다. 꿩고기도 있다. 나도 못먹어본 게 너무 많다. 전국서 성업중이다.

그런데 이것도 시장의 자유다. 프리 마켓. 그 개식당 옆골목이 사람 먹자골목이다. 젊은이들이 3000원짜리 짬뽕을 먹는다. 좋다, 나쁘다 보다는 풍경이 이렇다는 얘기다. (세상이) 이렇게 됐고, 자꾸 시장의 자유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이러는 게 일상의 풍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람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자기가 알아서 순응하는 것다. 누가 채찍으로 때리지 않아도 3000원짜리를 찾아 먹는다. '아 나는 3000원짜리다' 이러면서. 권력이 채찍을 휘두를 필요가 없다. 그대로 둬도 다 순응하니까. 여러분들의 동네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일산이 신도시라 급하게 생겨 두드러져 보일지는 몰라도. 이런 것들을 일상에서 보고 저런 걸 어떻게 소설로, 삶과 소설을 어떻게 연결시키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동네에 아름다운 것도 많다. 고등학생들을 보면 정말 예쁘다. 나이를 먹으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예뻐보인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너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워보인다.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차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저 놈들을 잘 키워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여학생들은 나무 아래서 립스틱을 바른다. 한 명이 립스틱을 가져와서 네 명이 같이 바른다. 입을 뾰죽하게 내밀고 입을 들이대고 있으면 한 명이 발라준다. 사람의 딸들은 저렇게 아름답구나 싶다.
 
요새는 젊은이들은 길에서 키스를 한다. 그걸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가 됐구나 생각한다. 예전에는 담 밑에서 남녀가 끌어 안고 있으면 엄마들이 물을 끼얹었다. 요새는 공원에서 키스하는 거 보면 저게 희망이구나 싶다. 우리나라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정치인들이 무슨 소리를 하면 무슨 헛소리 하나 하는 생각만 들지만. 젊었을 때는 몰랐다. 

내가 메모를 해왔는데 다 말을 할 수가 없다. 소설과 인생이 제목인데 연결시키는데 내가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앞으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는 말이다. 일연이나 반구대 그림처럼 하려는 소망이 있다는 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근처를 지나던 사슴벌레를 들어서 보이는 김훈 작가.© News1
근처를 지나던 사슴벌레를 들어서 보이는 김훈 작가.© News1


송정자연휴양림 산책길© News1


2일 '김훈과 함께 하는 소설 낭독 캠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News1
2일 '김훈과 함께 하는 소설 낭독 캠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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