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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친일문인 서정주 전집 내는 이유

서정주 전집 20권 완간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8-21 12:22 송고
출판사 은행나무가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년의 작업 끝에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 완간을 알렸다. 간행위원장인 이남호 고려대 교수(가운데)가 미당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 News1
출판사 은행나무가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년의 작업 끝에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 완간을 알렸다. 간행위원장인 이남호 고려대 교수(가운데)가 미당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 News1

'친일문학인'으로 비판받아왔고 최근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의 폐지 논란까지 일고 있는 미당 서정주 시인(1915∼2000)의 전집이 20권으로 완간됐다.

출판사 은행나무는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년의 작업 끝에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을 완간했다고 밝혔다. 2012년 작업을 시작한 전집은 2015년 6월 1권인 화사·귀촉도·서정주시선·신라초·동천·서정주문학전집으로 출간이 시작되었다.  

간행위원장인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미당의 문학을 "언어와 비언어를 포함해 최고의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하면서 "그의 문학이 정치적, 역사적 이유로 폄하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미당의 문학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예술의 관점, 좀더 넓은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데 대해 안타까움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집에서 나오면서 꼭 이 말을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고 덧붙였다. 

전집 작업에는 이남호 교수, 이경철 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 전옥란 작가, 최현식 인하대 교수 등 미당의 제자와 전문 연구가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특히 책임편집위원 제도를 도입해 미당이 운영하던 문학지 '문학정신'의 편집기자 출신이자 미당의 제자인 전옥란 작가가 총 책임을 맡았다.

전집은 10대의 문학부터 80대의 문학까지, 시, 자서전, 산문, 시론, 방랑기, 옛이야기, 소설, 희곡, 전기, 번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당의 작품들을 담았다. 시간상으로는 한민족의 역사 태동에서부터 먼 미래의 영원까지, 공간상으로는 고향 질마재 마을 이야기에서부터 세계 전역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개인 연대기로 보면 방황과 격정의 불안한 문학청년의 모습부터 원숙한 달관에 이르는 노년의 지혜에 이르까지 망라된다. 

편집위원들은 특히 "압도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것은 역시 ‘시전집’ 5권"이라면서 "정본 950편을 담아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로 평가되는 그의 시집들의 전모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또 "미당이 1933년부터 2000년까지 수십 년 동안 작품을 발표하다보니 언어도 여러차례 바뀌었는데 전집에서는 어떤 것을 정본으로 삼아야할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9~10차례 교정을 본 것이 기본이었다. 어떤 전집도 이처럼 방대하고 꼼꼼하게 만들어진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긍지를 가진다"고 자부했다.

특히 이남호 교수는 서정주 시인의 정치적,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큰 문학세계가 전집으로 기려질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당처럼 한국어로 넓고 다양한 세계와 지극한 마음을 보여준 경우가 한국문학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미당이 '화사집'을 출간하고 돌아가셨다면 '애비는 종이었다' 이 문장만으로 최고의 민중시인이 되어 대한민국의 문학사속에서 큰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면서 "하지만 한국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유산이 있는 게 천배 만배 낫다 생각한다. 많은 시인들이 시집 1~2권으로 유명하지만 '화사집'과 '귀촉도'도 큰 별이고 산문집도 큰 별이었다. 미당은 별 하나가 아닌 안드로메다같은 큰 성운"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서정주 시인의 친일행위나 독재정권 당시 권력자를 위해 시를 쓴 것 등에 대해서는 "훌륭함 속에는 인간적인 약점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잔디밭이 있는데 한뼘만한 잔디에 잡초 2포기 있는 것과 잠실 운동장만한 잔디에 잡초가 10~15포기 있는 것과는 다르다. 큰 잔디밭에 잡초 서너 포기 있다고 잔디를 다 뒤집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 문학이 어떤 사람의 삶과 100% 분리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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