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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의 탐식 수필] '파리로 가는 길' 영화 속 음식에 숨은 은유들

이국적 식탁 위에 오른 보편적 삶의 이야기

(서울=뉴스1) 김수경 에디터 | 2017-08-11 14:01 송고
편집자주 정상원 셰프의 세계 여러 나라 미식 골목 탐방기를 연재한다. 정상원 셰프는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르꼬숑'의 오너 셰프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시각과 청각을 통해 텍스트를 전달하지만,  미각과 후각의 자극은 좀 더 깊은 곳의 기억을 되살리고
영화와 추억을 뒤엉키게 한다.(배급사-티케스트제공)© News1

영화 속 음식들은 영화가 전할 수 있는 감각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고 우리의 개별적 추억들을 영화에 이입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투이’에서는 프로방스의 채소 스튜 라따투이가 화려한 음식을 제치고 큰 호평을 받는데, 이 장면을 통해 영화가 전하고 싶은 주제를 전달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어머니의 음식이 우리 마음속에 각인된 미감의 기저이고 화려한 수식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조금은 우화적인 이야기다.
  
집과 어머니, 그 노스탤지어를 음식을 통해 표현한 국내외 영화를 통해 수 없이 찾아 볼 수 있다.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에서는 프랑스 대통령의 요리사 할머니가 알자스 지역의 고기 파이 퀴시 로렌느인 ‘아름다운 오로로의 베개’를 선보이는데, 트러플이나 푸아그라와 같은 고급 음식보다 무던한 고기 파이가 전하는 향수의 자극은 어떤 대사보다 크게 다가온다.
  
대서양의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르 아브르’에서는  출근하는 구두닦이 남편의 구두를 매일같이 닦아 현관 앞에 두는 아내의 가난하고 무디지만 짙은 애정이 담긴 사랑을 이 지역 음식으로 꾸려진 식탁에서 느낄 수 있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 두 사람의 감정은 프렌치 코스요리에 맞춰 풍미를 더해간다.(배급사-티케스트제공)© News1

만약 소품을 이용해 스치듯  복선을 전달하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 장모님이 끓여낸 굴 매생이 국밥이 식탁 위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면, 우리는 사위를 향한 곱기도 하고 밉기도 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매생이 국에 얽힌 험담을 알지 못한다면 그저 특이한 한국의 토속음식으로 비치고 말 소품일 것이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 속의 음식과 와인들은 프랑스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는 뉘앙스들이 잔잔하게 깔린다. 이국적인 음식들의 속 사정이 영화 속 감정 흐름의 중심이 되고, 프로방스의 자유로운 시크함, 론강을 유유히 흐르는 프렌치 톨레랑스의 가치, 사랑을 탐구하는 그들의 열정이 맛과 향으로 영화를 감싸 안는다. 
  
마치 프렌치 코스를 순서대로 즐기는 듯 배열된 음식 장면들의 배치와 요리 속 뉘앙스, 그리고 와인을 통한 섬세한 감정의 마리아주까지. 이 영화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아니라 미슐랭 스타를 받을 만하다. 

돌이켜보면 시작이었던 그 순간, 칸달 로프 멜론 하몽과 샤토 네프 뒤 파프.

코스의 시작인 오르되브르는 셰프의 환대와 손님의 기대를 담은 서로의 첫 대화이다.© News1

두 사람의 첫 식사에서 프로방스의 특산품인 칸달로프 주황색 멜론과 여기에 잘 숙성된 하몽과 짭조름한 치즈를 올려 애피타이저로 낸다. 가장 프랑스적인 과인 칸달 로프와 무려 스물한 종의 포도가 블렌딩된 식전주 샤토 네프 뒤 파프는 두 사람의 복잡한 상황들이 프랑스 특유의 낙관으로 덮여 갈 것을 이야기하는 복선이다.
  
프랑스 코스에서 시작을 알리는 애피타이저를 오르되브르(hors d’oeuvres)와 아페리티프(Aperitif, 식전주)는 셰프와의 첫 대화다. 훌륭한 셰프는 특별하지 않지만 자신의 색을 분명히 하여 오르되브르를 낸다. 손님은 다음 음식의 방향에 대한 선언인 오르되브르를 맛보고 개별적 취향을 표시한다. “조금 싱겁게 조금은 더 익혀서.” 셰프의 환대와 손님의 기대는 그렇게 사랑의 밀고 당기기처럼 시작된다.

칸달 로프와 멜론. 프로방스의 햇살을 품은 달콤함과 지중해 해풍 미스트랄에 말려진 하몽의 짭조름함의 조화는 우리 궁중음악인 정악에서 '착'하고 박을 쳐 시작을 알리듯 미감을 환기한다.© News1

지중해 니스를 출발하여 론강을 따라 파리로 가는 로드트립.  샤또 네프 뒤 파프는 영화의 출발지인 남부론의 대표적인 와인 마을이다.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지역의 와인은 20종 이상의 포도를 블렌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와인의 주조에 있어서 서너 가지의 이상의 품종이 들어가는 경우가 없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특별한 와인이다. 
  
그라나 슈 포도의 산뜻함으로 시작해 쉬라의 향기 그리고 카리냥의 가리그(Garrigue, 프로방스 땅의 풍토를 표현하는 단어)까지. 한 병을 열 잔 정도로 나누어 마시면 열 잔이 모두 다른 맛을 가진다. 그리고도 다음 잔의 향이 궁금해질 정도로 변화무쌍한 와인이다.
  
두 사람의 시간은 결국 프로방스 햇살이 과일을 달콤하게 만들 듯, 삶의 우아함에 대한 믿음을 통해 만족에 대한 기쁨으로 물들어 가는데 이러한  프랑스적인 만남은 언제나 낙관적이다.

낯선 설렘이 주는 집중과 밀도, 달팽이 에스카르고와 콩드리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에서 그 사람의 말과 행동들은 그의 성향을 넌지시 전한다. 셰프의 성격을 나타내는 달팽이 에스카르고는 코스의 지휘자로 작은 알맹이 안에 셰프와 레스토랑의 음식 철학을 함축한다. 
  
부르고뉴 지방색인지 파리의 모던함인지 프로방스의 자연을 담아내는지에 따라 에스카르고는 다양하게 변화한다. 프로방스의 레스토랑 오스트 드 보마니에르에서 에스카르고를 먹은 것이 아니라 그 에스카르고를 통해 오스트 드 보마니에 이르를 먹은 것이다. 프랑스의 이러한 각자의 개성에 대한 애정이 미식의 다양성으로 자리 잡는다. 

르꼬숑의 달팽이 에스카르고는 부르고뉴의 진중함을 담는다. 다양하게 해석되는 에스카르고이기에 그 코스의 색이 드러난다.© News1

남자는 콩드리유 한 병을 통해 자신 있게 그러나 부드럽게 본모습을 내보인다. 콩드리유(Condrieu A.O.C.)는 론 최고의 화이트 와인으로 소비뇽 블랑의 찬란한 과실향은 아니지만 특유의 영롱함이 있다. 샤르도네처럼 짙게 깔리는 가죽 항의 진중함은  아니지만 비오니에 품종 특유의 강직함이 결코 가볍지 않다. 아스팔트는 아니지만 굳게 다져진 흙길을 딛고 있는 느낌 그리고 밭두렁에서 넘어오는 부지런한 농부가  베어놓은 풀 향기와 그 땀방울이 주는 짭조름함이 콘드리유를 완성한다.
  
가볍지 않은 위트, 들뜨지 않는 설렘, 단절되지 않은 지조가 반복적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 

똑. 똑. 똑.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랑은 매콤한 아이러니, 브레스 닭과 에르미타주 블랑.
 
리옹의 시장은 미식 재료의 집합소다.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많은 관광객이 프랑스 미식 재료 탐방을 위해 리옹 폴 보큐즈 시장(les Halles de Lyon Paul Bocuse)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이 시장의 꽃은 다리가 푸른 색인 가금류의 제왕 브레스 지역의 '닭'이다. 마치 기사의 투구처럼 깃털도 뽑지 않은 채 진열된 브레스 닭의 특별한 풍미는 재료의 다양성이 준 선물.

노릇하게 익어가는 순간 수플레가 완성된다. “계약과 수플레는 타이밍이다.” - <파리로 가는 길> 대사 중© News1

다양한 입맛을 존중하고 다양한 감정을 인정하는데서 출발된 프렌치 톨레랑스 관용의 정신은 그들의 사랑법에도 적용된다. 존중의 범위는 넓지만 선의 구획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다름은 넓게 인정하되 틀림을 정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한 룰을 가지는 것이 톨레랑스. 그들의 이야기는 옳고 그름의 날카로운 선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론의 에르미타주는 보르도의 마고, 부르고뉴의 에세조와 더불어 명실상부 세계 3대 레드와인 산지다. 이 와인은 론 쉬라 특유의 짙은 열정과 긴 여운이 특징인데, 빈틈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 구조와 뇌쇄적이라고까지 표현될 와인의 향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레드와인으로 유명한 에르미타주는 드물게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영화에서는 화이트 에르미타주가 등장한다.
  
당연히 레드와인이어야 하는 자리에 위치한 화이트 와인 에르미타주 블랑은 이루어질수 없는 이야기의 아이러니를 전한다. 잘 진행되고 있던 코스의 진행에서 불협이 감지되고 눈빛이 흔들리는데 두 사람만의 순간처럼 도미 요리에 에르미타주 블랑은 훌륭한 마리아주이지만, 결국 그 자리에는 레드와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에르미타주 블랑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현실에 대한 죄책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론 와인에 대한 양조 스타일을 잘 아는 관객이라면 와인병을 보는 순간 불편함을 감지하고 객석의 등받이에서 등을 떼게 된다. 촉촉이 녹아들었던 감정이 순간 이성적 현실로 넘어온다.   
  
열정의 짙은 향기 남 기는 긴 여운, 코틀레트 다그뇨와 코트 로티

양 갈비 코틀레트 다그뇨. 셀러 가장 깊이 숨겨둔 와인에게 안부를 건네지 못한다면 코틀레트 다그뇨가 아니다.© News1

요리 코틀레트 다그뇨는 어린 양의 갈비 부위를 구워 만드는 메인 요리다. 양의 풍미는 테이블을 압도하고 코틀레트 다그뇨 특유의 식감은 턱이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작은 관절을 운동시키는데, 식자의 정점에서 좋은 레드와인은 필수다.
  
북부 론의 진한 향을 가진 코트 로티. 이 지역의 와인은 짙은 레드 벨벳의 색 속에 수많은 매력을 감추고 있다. 론강 둑의 아기별 꽃의 하늘 한 향인가 하면 잘 정리된 정원의 리산 셔스가 풍기는 농익은 향이다. 간질이는 듯하더니 지긋이 누르고 마지막 날숨에서까지 다시 넘어오는 긴 여운을 남긴다.
  
코트 로티는 분명하다. 에두르지 않고 말한다. “지금 취하지 않으면 더 이상 다음 와인은 없다.”

메인 요리가 나오면 식사는 절정으로 이른다.© News1

쇼콜라. 쓸쓸함을 감추기 위한 달콤함


미국인 여자와 프랑스인 남자의 로드 트립. 그 마지막 날의 디저트는 처음으로 남자의 취향이 아닌 여자의 취향으로 선택된다. 남자가 주문한 수많은 초콜릿 디저트는 자신의 모습을 모두 다 드러낸 남자의 마지막 구애로 달콤함 속에 감춰진 씁쓸함 그것이 영화 속 쇼콜라 디저트가 전하는 이야기다.

비너스의 니플. 요리의 위트는 고된 노동을 하는 퀴지 노에 들의 소소한 재미다.© News1

뉴욕의 미술관에 걸려 있는 세잔의 생 빅투아르 그림이 슬퍼 보였다는 여자는 남자를 통해 제자리에 걸려있는 자신을 알게 된다. 모네의 풀밭 위 점심 식사 속 사람들이 슬퍼 보인다는 남자는 그림이 아닌 현실에서 그의 비너스를 찾는다.
  
누구에게나 로망이 있고 그것이 실현되는 로맨틱한 순간이 있다. 영화 속 요리들은 기억과의 연결 다리가 되고 자기만의 기억을 통해 이야기를 풍요롭게 한다. 조금 전 먹은 오늘의 그 한 끼 식사도 언젠가 추억의 일부분이 되어 되살아나 로맨틱한 순간을 이야기하게 된다. 한 끼의 식사는 결국 하나의 단어다.

<배급사 티캐스트/정상원 셰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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