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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까지 이어지는 데이트폭력 … 한국판 '클레어법' 필요할까

찬성측 "기존 법률로 다양해지는 데이트폭력 대처 한계"
반대측 "평생 반복적으로 개인정보 침해 위험에 노출돼"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7-07-22 09:00 송고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지난 18일 새벽 서울 중구 약수동에서 20대 남성이 과거 연인이었던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히 고스란히 담긴 폐쇄회로 TV(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동안 수사기관이 데이트폭력을 사랑싸움으로 치부하는 등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폭언과 폭행을 넘어 살인사건까지 발생하자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기존 법률로도 충분히 처벌할 방안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데이트폭력'을 특별한 범주의 범죄로 보고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데이트폭력 … 신고율 낮고 심각성 인식 부족

데이트폭력(연인간 폭력, Dating Abuse)은 서로 교제를 인정하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위협이나 폭력행위 등을 뜻하는 말이다. 넓은 의미로는 연인관계에 있거나 연인관계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의도를 갖고 행하는 신체적, 정서적, 언어적, 성적 폭력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데이트폭력은 흔히 폭언, 폭행, 협박, 성폭행, 성희롱, 스토킹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경미한 폭언수준에서 시작된 데이트폭력이 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데이트폭력 발생 건수에 비해 실제 신고율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고율이 낮기 때문에 정확한 데이트폭력 피해발생 건수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2016년 한 여성단체가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에 해당되는 일을 당했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답변 비율이 90%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로는 피해가 경미하다고 생각해서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거나 신고·고소 등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답변이 나왔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경찰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2015까지 해마다 100여명의 피해자들이 데이트폭력에 의해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이 경미한 언어폭력에서 시작해 점차 그 양상이 거칠어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한국판 '클레어법' 필요 vs  "기존 입법으로 충분히 대처 가능"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데이트폭력을 따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는 법은 마련돼 있지 않다. 다만 데이트폭력의 유형에 따라 폭행, 상해, 체포·감금, 협박, 강간, 강제추행 등을 기존 형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데이트폭력의 한 유형인 스토킹은 형법이 아닌 경범죄처벌법이 적용된다.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 3조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된다. 스토킹 피해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반해 처벌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셈이다.  

이 때문에 기존 법률 만으로는 점점 다양해지는 ‘데이트폭력’ 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여론을 반영해 박남춘 더민주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은 "데이트폭력범죄가 폐쇄적 관계에서 발생해 국가가 인식하거나 개입하는데 한계가 있어 현행 형사법 체계로는 데이트폭력 근절이 어려워 보인다"며 '데이트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2016년에 발의됐던 해당 법안은 임기 만료 폐기된 상태다.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데이트폭력' 대응 방안은 경찰이 도입 추진 중에 있는 한국판 '클레어법(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 Domestic Violence Disclosure Scheme)'이다.

클레어법은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끝내 살해된 ‘클레어 우드’의 이름을 딴 영국 법으로 지난 2014년 시행됐다. 문제는 ‘클레어법’이 개인의 범죄경력이라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는데 있다. 폭력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지속·반복적으로 개인정보 침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허용되려면 엄격한 심사절차 등이 마련돼야 한다. 전과공개 심사절차 등이 복잡해지면 제도 활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문에 형법과 폭력행위처벌법 등 기존 법률로 데이트폭력 범죄에 대처할 수 있다면 굳이 새로운 법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폭력행위가 연인을 상대로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폭력범죄보다 특별히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 형평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장철준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데이트폭력으로 불리는 행위들은 기존 형법 등으로 처벌이 가능한 범죄에 해당한다"며 "특정사건이 이슈화하면 처벌강화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특별법 도입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클레어법의 입법취지는 좋지만 이 법이 도입되면 개인정보 침해 등의 기본권 침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자칫 폭력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동안 지속 반복적으로 개인정보 침해 위험에 노출되고 이로 인해 평생 연인을 사귀기 어렵게 되는 '낙인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데이트폭력이라고 해서 형법으로 처벌되는 폭력행위 등과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데이트폭력이라는 범주를 만들어 강하게 처벌하도록 정하거나 개인의 민감한 정보에 해당하는 전과기록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숙고를 거쳐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데이트폭력 범주에 포함되지만 현행 법체계로는 적절하게 대응하기 애매한 스토킹 유형이 문제가 된다"며 "현행 경범죄 처벌법이 스토킹 범죄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다면 스토킹 범죄를 형법전 안으로 끌고 들어와 제대로 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기존 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가 정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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