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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⑤]부부소득 월 200만원 안돼…"우린 비정규직 가족입니다"

비혼·단신 근로자 생계비 고려하면 높은 수준 아냐
기업·소상공인도 상생하는 길 모색해야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2017-07-23 08:00 송고 | 2017-07-23 08:51 최종수정
편집자주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 보다 1060원이 오른 시간당 7530원으로 인상됐지만 노동계와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 모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자칫 '을'들간의 전쟁이 벌어질까 우려된다. 이런 현상이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이 정부에서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도대체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뉴스1이 노동계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그 내막을 들여다 봤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점거농성 중인 한 대학 청소노동자가 식사를 하고 있다.  © News1 구윤성 기자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점거농성 중인 한 대학 청소노동자가 식사를 하고 있다.  © News1 구윤성 기자

"'무이자 할부 되나요'라는 말이 입에 붙었어요"

5년 전부터 대학 청소 용역업체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변모씨(55·여)는 몸이 아파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덜컥 겁부터 난다. 혹시라도 병이 생겨 큰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나이도 있고 일하다 보면 관절 때문에 정형외과를 자주 가게 돼요. 그러면 의사 선생님이 검사해야 한다고 하는데 '검사 비용이 얼만데요', '무이자 할부 될까요'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와요. 검사받으라고 하면 '네'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변씨가 한 달 동안 일하고 받는 돈은 연차를 쓰지 않아 발생하는 수당을 합쳐서 세후 140만원 정도.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어린이집 차량 운전사로 일하는 남편의 소득이 적어 사실상 변씨가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변씨와 남편의 소득을 합쳐도 월 200만원이 채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는 자녀들도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등 생활전선에 나서야 한다. 그런 자신의 가족을 변씨는 '비정규직 가족'이라고 했다.

200만원이 안 되는 월 소득으로 생계를 꾸려가다 보면 항상 적자가 발생한다. 주거비, 통신비, 각종 세금 등 기본적인 지출액을 빼고 나면 정작 입는 것, 먹는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변씨는 "식당을 가도 비싼 메뉴는 쳐다보지도 못하죠. 맛있는 냉면 한 그릇 먹고 싶어도 8000원 이상 하잖아요"라며 "내가 사 먹을 여유가 있는데 안 먹는 거랑 물질적으로 부족해서 못 먹는 거랑 다르잖아요. 그게 가장 슬프죠"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명절 때가 되면 변씨의 한숨은 더 깊어진다. 친정어머니에게 드릴 용돈 봉투에서 5만원 한 장을 뺐다 넣었다 할 때마다 '사람 구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변씨는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마음으로는 더 드리고 싶은데 안돼요"라며 "그 돈을 가지고 살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서울 종로구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 종로구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 News1 송원영 기자

경기도 수원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는 김모씨(35)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학원 강사 일을 접고 취업 준비에 나선 김씨는 월 95만원 정도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아도 30만원을 월세로 지출해요. 먹고는 살아야 되니까 식비, 통신비, 교통비 빼고 나면 운영할 수 있는 돈이 10~15만원 정도밖에 안 남죠"

김씨는 갑자기 목돈이 필요할 때가 가장 두렵다.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으니 옷이나 신발 구입은 꿈도 꾸지 못한다.

"소설가가 되려면 책도 많이 사봐야 하고 강연도 들어야 하는데 강연비도 30~40만원 정도 하니까 엄두가 안 나죠.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버틴다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고 독학을 하고 있어요"

학원 강사로 일할 때 모아둔 돈이 없었다면 보고 싶은 책 한 권도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의 생활을 '최저 수준의 삶'이라고 평했다.

김씨는 "이번에 최저임금이 인상되니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 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며 "그런 말을 들으면 속상하다. 주휴 수당, 야간 수당도 제대로 못 받고 일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분들이 정말 하실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지난 15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018년도 최저임금 수준이 7530원으로 의결됐다. 올해 최저임금 시급 6470원에서 1060원이 인상되며 전년 대비 16.4%의 인상률을 보였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변씨와 김씨같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던 근로자 약 463만명이 2018년부터 인상된 최저임금안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 40시간 기준(주휴수당 포함·월 209시간)으로 한 달에 약 157만원을 받을 수 있다.

기존 최저임금 6470원 기준에서는 근로자들이 월평균 126여만원을 받았다. 월급으로 따지면 약 31만원이 인상된 셈이다.

2016년 기준 통계청의 2인 이상 가구 가계소득·지출 분석 결과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439만9000원, 월평균 지출이 255만원이었던 것을 놓고 보면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최저임금 근로자들의 생활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최소 최저임금 1만원은 돼야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며 순차적인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통계학회의 2016년 기준 비혼·단신 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 연령대 비혼·단신 근로자의 월평균 생계비는 약 175만원에 달한다. 34세 이하 비혼·단신 근로자 평균 생계비는 약 190만원, 29세 이하 비혼·단신 근로자 평균 생계비는 약 164만원이다. 전 연령대 월평균 생계비는 중위수 기준으로 약 155만원이다.

지난해 기준임에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받게 되는 한 달 157만원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물가상승률 등 영향으로 앞으로 더 증가할 평균 생계비를 고려하면 최저임금 7530원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올 법 하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반면 인상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적용된 일본의 최저임금 수준을 원화로 환산하면 전국 평균 약 8239원이다. 일본의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상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결코 낮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숨통을 틔운 건 맞다. 인간답게 살 권리, 적절한 생활을 향유할 권리 차원에서는 잘된 일이다"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이 구매력 향상으로 소비 증가 등의 효과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보장할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며 "앞으로 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비 진작, 빈곤완화 등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노인 빈곤율이 심각한 상황이라 이런 점을 본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이라며 "기업이나 영세소상공인도 이런 점을 고려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도 "지금까지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낮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들 대체로 공감하고 있었다"며 "인상률은 높지만 액수로 따지면 1000원 정도 오른 것이고 우리 경제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hanant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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