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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말하다…"인간과 기계는 언젠가 같아질거야"

백남준아트센터 '우리의 밝은 미래-사이버네틱 환상'전
급변하는 기술환경에 대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사유 담아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7-19 17:38 송고 | 2017-07-20 11:32 최종수정
양쩐쭝 '위장'(2015), 4채널 비디오 컬러, 유성, 9:20,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32:36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News1

"인간과 기계는 근원은 다르지만 언젠가는 같아질거야. 인간이 기계의 씨앗을 온 몸 곳곳에 들이고 있으니까…."

노진아 작가의 인터랙티브 조각 작품 '진화하는 신, 가이아' 앞에서 노 작가가 "너는 왜 인간이 되려고 하니"라고 묻자 인간의 형상을 반쯤 닮은 사이보그 조각이 이같이 답한다. 노진아는 인공지능 및 기계적 시스템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이아'는 관객이 다가서면 눈동자를 굴리며 관객을 쳐다보고 관객이 말을 걸면 거기에 답을 한다. 놀라운 속도의 '딥러닝'을 보여주는 인공생명체들이 아직은 인간의 모습을 반토막만 닮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인간을 지배하는 '가이아'(Gai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만물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노 작가의 신작은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가 20일부터 개막하는 기획전 '우리의 밝은 미래-사이버네틱 환상'에 출품됐다. 백남준아트센터는 급변하는 기술환경에 대한 예술가들의 사유를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1894-1964)가 주창한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키워드로 내세워 전시를 꾸렸다. 사이버네틱스는 '피드백'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제어·통제한다는 관점에서 생명체와 기계를 동일하게 보고자 한 이론이다.

전시에는 김태연, 노진아, 다이애나 밴드, !미디엔그룹 비트닉, 박경근, 배인숙, 백남준, 손종준, 스펠라 페트릭, 양쩐쭝, 언노운 필드, 언메이크 랩, 자크 블라스&제미마 와이먼, 프로토룸, 황주선 등 총 15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박경근 '1.6초' 한 장면.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News1

박경근 작가는 2채널 비디오·사운드 작품 '1.6초'에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간극을 '1.6초'로 제시했다. 지난해 방문했던 자동차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 벌어진 노사간 갈등이 작품의 배경이 됐다.

사측이 로봇의 생산 시간을 1.6초로 단축하는 과정에서 작업 환경 변화에 따른 노동자들의 적응문제, 안전문제가 대두됐는데, 이 때문에 노사간 공방이 벌어졌다. 작가는 여기에서 단 1.6초의 시간이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만들고 '분열'을 만든다고 봤다.

어두운 공간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2개의 화면은 각각 인간과 기계의 시선으로 공장 풍경을 훑는다. 여기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건 로봇이고, 생기를 잃은 건 인간이다. 게다가 인간의 움직임은 기계의 시선에서 답답하리만치 굼뜨게 비친다. 생명은 없으나 생동감 넘치는 기계와 생명체로서 생기를 잃은 인간의 모습을 대조시키며 오늘날 노동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를 짚어냈다.
슬로베니아 작가 스펠라 페트릭의 '비참한 기계' 세부 장면(2015). 화면 아래쪽에 보이는 하얀색 작은 물체가 살아있는 홍합의 근육 덩어리다.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News1

슬로베니아 작가 스펠라 페트릭의 '비참한 기계' (2015).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News1

과학자 출신인 슬로베니아 작가 스펠라 페트릭의 설치작품 '비참한 기계'는 급변하는 기술환경에서의 노동문제를 조금 더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살아있는 홍합의 근육을 떼어내 이따금씩 물을 주며 계속해서 '일'을 시키는 것이 작품의 콘셉트다. 

전기장치에 매달린 홍합이 충격을 받으면서 움직이고, 이 움직임이 장치에 전달되면 화병에 그림을 그려지는 방식이다. 기계적인 시스템 아래 죽을 때까지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는, 혹은 '고문'받는 인간의 모습을 작고 연한 생물체인 홍합에 투영했다.
노진아 작가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 © News1 김아미 기자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자크 블라스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제미마 와이먼의 4채널 비디오 공동작업 '나는 여기서 공부하는 중 :))))))'은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만들었다가 하루만에 사라진 인공지능(AI) '테이'의 이야기다.

당시 19세 미국 여성으로 디자인된 테이는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단 몇시간 만에 대량학살, 동성애 공포증, 남성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나치즘 등을 배웠다. AI 테이에게 사람들이 이같은 부정적인 키워드를 입력한 것이다. 작가팀에 의해 3D 이미지로 환생한 테이는 사망 후 합병증과 파괴된 삶에 대해 원망섞인 독백을 늘어놓는다.

자크 블라스&제미마 와이먼의 4채널 비디오 작품 '나는 여기서 공부하는 중
:)))))) '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News1

황주선 작가는 뇌파 측정기로 인간의 집중력을 측정하고 이것이 데이터 값으로 대형 스크린에 전송되는 방식의 작업 '마음!=마음'을 선보였다. 뇌파 측정기를 쓴 관람객의 집중력이 높아질수록 화면에 나타나는 영상의 해상도는 높아지는 방식이다. 황 작가는 '정량화'로 정의되는 현대 과학기술과 사회적 합의에 의문을 제기했다. "무엇엔가 집중한다는 것, 내 마음을 내 마음처럼 쓰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며 "정량화되는 모든 것은 서열화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 작품들을 관통하는 메시지 뒤에는 'AI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는 듯 읽히지만 전시를 기획한 구정화 큐레이터는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로 미래시대를 규정하고자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상황에서 '과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유지하는게 가능할까'라는 보편적인 물음이 있다"면서도 "단순히 로봇을 대상화하고 일을 시키고 마음껏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규정해나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해 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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