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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팅앱서 만난 남성에 40일간 납치·감금 '악몽'

사촌 20대 여성 2명…"의심하거나 도망치면 죽인다" 협박
낮엔 차에, 밤엔 모텔에 감금…성폭력에 빚더미까지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2017-07-16 05:20 송고 | 2017-07-16 13:48 최종수정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해 전 한국에 홀로 온 A씨(22·여)는 우연찮은 기회에 채팅앱에서 이모씨(24)를 만나게 됐다. 한국 물정에 어두운 A씨는 지난 4월21일 "얼굴을 보자"는 이씨의 말에 응했고, 그렇게 그날부터 약 40일 간의 감금생활은 시작됐다.  

이씨는 A씨를 만난 그 순간 "채팅앱에 접속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경찰 수배 대상이 된다"며 "나는 중간에서 당신과 같이 수배된 사람을 붙잡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당신은 이미 수배된 상태지만 내가 체포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자신이 부산의 유명한 조폭 출신이며 자신의 아버지는 부산의 한 경찰서 형사라고 A씨를 속였다. 실제 수갑까지 가방에서 꺼내 자신의 팔목에 채우자 A씨는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도와주겠다"는 말과 달리 이씨는 바로 A씨의 핸드폰과 지갑 등 모든 소지품을 빼앗았다. 그리곤 낮이면 자동차에, 밤이면 모텔에 A씨를 가뒀다. "언제든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 짓은 생각도 말라"며 A씨를 협박하기 일쑤였다. 

감금된 지 약 열흘이 지난 4월 말 A씨는 이씨에게 한국에서 유일한 가족과 같은 고종사촌 B씨(22·여)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렵게 B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씨는 A씨의 의사와 달리 "A와 나는 연인관계"라고 소개했다.

이씨 범행은 A씨의 사촌인 B씨에게까지 이어졌다. 이씨는 "A가 채팅앱을 이용한 핸드폰의 명의가 B씨 당신의 것이라 당신 역시 수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주일만 기다리면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겠다"며 B씨마저 지난 5월1일 감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A씨와 B씨는 24시간 계속되는 이씨의 감금 아래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A씨와 B씨가 현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이씨는 서울과 대구, 강원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매일같이 잠자리를 바꿨다. 혹시나 자신이 없는 사이 A씨와 B씨가 이야기를 나눌까 싶어 항상 3명이서 함께 잠을 청했다. B씨는 "어머니한테 전화가 올 경우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전화는 받게 했지만, 3분 안에 끊어야 했고 모든 통화는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 모드를 이용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유일하게 외출이 허락되는 장소는 매일같이 바뀌는 모텔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이었으나 이 역시도 이씨와 함께 해야 했다. A씨는 "식당에서 반찬을 받기 위해 몇 m 가는 것도 이씨와 동행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과거 장기매매를 해 본 경험이 있다는 등 수도 없는 거짓 위협으로 A씨 등을 겁줬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B씨가 자신을 의심하는 낌새를 보이자 A씨에게 "B씨를 감시하라"며 "자꾸 B씨가 의심하는 말을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이씨의 범행은 납치와 감금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씨는 A씨와 B씨 앞으로 5대 이상의 휴대폰을 개통해 이를 되팔아 현금을 챙겼다. 또 이들 앞으로 각각 900만원, 200만원 이상의 불법 대출을 받게 했다. 

심지어 이씨는 A씨를 한 차례 성폭행하고 B씨에게는 유사성행위 업소에서의 성매매를 강요했다. 이씨는 "변호사를 통해 당신들의 수배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며 "변호사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B가 성매매 업소에서 성매매를 하는 사진이 필요하다"고 다소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혹시나 자신이 거절하면 사촌인 A에게 불똥이 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한 B씨는 그렇게 이틀 동안 어딘지도 모르는 유사성행위 업소에 출근해 10명에 가까운 남성들을 마주해야 했다. 

이씨는 B씨에게 이처럼 끔찍한 일을 강요한 뒤 A씨를 데리러 인천에 가겠다며 B씨를 경기도 수원의 한 모텔에 방치했다. 핸드폰도, 돈도 없던 B씨는 이씨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부터 계좌 비밀번호 등 모든 개인정보를 알고 있는 탓에 한참을 모텔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이씨는 늦은 오후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버려지다시피 한 B씨는 5월26일, 약 한달 만에 긴 감금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경찰 로고./뉴스1 © News1 신채린 기자
경찰 로고./뉴스1 © News1 신채린 기자


그러나 A씨는 여전히 이씨와 함께였다. 이씨는 B씨가 도망친 후에도 A씨를 계속해서 감금하고 협박을 이어갔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모텔에 A씨를 돈도, 핸드폰도 없이 두고 밤이면 가끔 와서 얼굴을 확인하곤 했다. 식사를 거부할 때면 억지로 음식을 먹여 토하기도 몇번이었다고 A씨는 말했다. 사촌인 B씨가 도망치고도 약 보름이 흐른 지난달 17일, 도망칠 기회를 수없이 엿보던 A씨는 이씨의 말을 거부하고 탈출했다. 

당시 이씨는 A씨에게 대포폰 한 대를 쥐어 주며 "택시를 타고 내가 말하는 주소로 오라"며 "오는 길에 대포폰은 길에 던져 버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A씨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렇게 40일 이상의 감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둡고도 긴 시간에 대해 B씨는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눈치를 보이면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위협했다"며 "시간이 길어지니 그가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매 순간 도청을 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는 어떠한 질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A씨와 B씨의 신고로 지난달 2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PC방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이씨를 감금과 강간,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와 B씨가 알고 있던 이씨의 이름부터 나이, 모든 정보는 거짓이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처럼 보이지만 A씨와 B씨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A씨는 "20대 초반인 나이에 이씨의 불법 대출 등으로 1200만원 상당의 빚이 생겼다"며 "매일같이 제3금융권은 '돈을 갚으라. 갚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독촉 전화를 걸어 온다"고 토로했다. 자체 소송을 통해 자신들이 대출을 받은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지만 20대 초반에 가정형편마저 어려운 이들에는 그림의 떡과 같다.

이들에 대한 상담을 지원하고 있는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상담국장은 "이씨는 A, B씨에게 '나가면 바로 체포된다', '만일 도망가다 잡히면 죽이거나 사창가에 팔겠다' 등의 협박을 수없이 했고, 이에 이들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었다"며 "어릴 적부터 묶여 자란 코끼리를 풀어 놔도 도망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심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이들은 보복에 대한 트라우마 등 두려움 때문에 대인기피 증상까지도 보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이들에 대한 상담을 통해 주위를 환기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jung9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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