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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이라도 되고 싶어요"…서울시청식당 '정'의 호소

"난 파리목숨, 내일 해고될지도"…고용 불안정
"구조적 문제 가장 약자가 감당했다는 비판도"

(서울=뉴스1) 정혜아 기자 | 2017-07-09 07:10 송고 | 2017-07-09 13:35 최종수정
서울시청 식당 배식구. © News1
서울시청 식당 배식구. © News1

젖지 않기 위해 비닐로 코팅된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남색 장화를 신었다. 무거운 식기를 나르다가 손이 다칠세라 양 손에는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덧끼기도 했다.

7일 서울시청 식당에서 만난 20대 A씨의 모습이다. 가뜩이나 더운 여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A씨는 "시청은 냉방이 잘 되는 편이지만 이런 차림으로 설거지를 하고 식기를 옮기다 보면 땀으로 젖기 일쑤"라며 "정말 너무 덥다"고 말했다. 
처음 A씨를 봤을 때 그는 식판을 옮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점심에만 평균 1200명이 이용하는 서울시청 식당에서 나오는 설거지와 뒷정리 양은 엄청났다. 

지난해부터 이 일을 해온 A씨는 노동강도가 센 편이라고 말했다. 출근 하자마자 점심식사를 위한 설거지를 시작으로 3~4시간 가량 허리 필 틈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월·화·목요일에는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수·금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일한다. 점심시간 오후 1~2시를 빼고 일주일 동안 40시간 정도 근무하는데 항상 일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일해서 A씨는 한 달에 약 130만원의 돈을 손에 쥔다. 시급 8000원 수준으로 일하는 셈이다. A씨는 "노동강도가 세고 낮은 임금도 좌절감을 주지만 무엇보다 고용불안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라며 "내일 용역업체에서 나오지 마라고 하면 그만 일해야 한다. 내 목숨은 파리목숨"이라고 말했다.
B씨 역시 용역업체 소속 직원이다. 서울시청 식당에는 용영업체 소속 직원 12명이 세척, 서빙, 배식 등을 담당하고 있다. B씨 역시 시급 8000원 수준에서 일하고 있다. 

B씨도 항상 고용불안을 느낀다. 특히 서울시가 1년 단위로 용역업체를 바꿔서 계약을 진행해 연말이 되면 더 불안하다. 시는 2015년에는 제니엘, 지난해에는 스탭스, 올해 다시 제니엘과 계약을 맺었다. 용역업체 소속 직원 중 오래 일한 사람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고 B씨는 설명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기계약직이라도 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서울시가 20일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무기계약직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자신들도 기억해주길 바랐다.

서울시청 식당 점심시간. © News1
서울시청 식당 점심시간. © News1

서울시청 식당 노동자 구성원은 다양하다. 시 공무원 3명, 무기계약직 9명, 기간제 2명, 용역업체 직원 12명 등이 일한다. 시 공무원은 회계 등의 관리업무를 담당하고 무기계약직은 조리를 맡고 있다. 기간제직원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둔 직원들이다.

때문에 용역업체 직원들은 자신들을 '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을'이라도 되고 싶다는 절박함을 드러냈다.

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고용 불안정이 해결되면 처우도 개선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무기계약근로자 봉급표를 보면 조리원, 회계, 서빙요원 1호봉의 경우 기본급 161만370원이다. 시급은 1만원 수준이다. 교통비 10만원을 더 받을 수도 있다. 월급은 171만 3170원이다. 보험료 등을 감안하더라도 실수령액은 한 달 30여만원, 일 년 400만원 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측은 식당의 예산 부족 때문에 용역업체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식당은 3500원 수준의 식사비를 받아 운영된다. 낮은 식비로 식당 재정이 매달 마이너스인데 노동자들 처우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식사비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또 2015년 박 시장이 간담회를 통해 식당 노동자 처우개선 지원방안을 모색했으나 중앙정부 측에 막혔다는 얘기도 나왔다. 실제로 중앙정부 측에서는 시 공무원 이중지원을 지적했다. 현재 시 공무원에게는 급량비 명목으로 월 10만~13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시 측에서 식당 노동자를 지원하면 시 공무원 식사 관련 지원이 중복된다는 비판이다.

시 관계자는 "행정자치부의 공무원 급량비 이중지원 금지기준을 준수하면서도 식당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임금인상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무원 이중지원 지적을 피하기 위해 식당 노동자 처우가 열악한 상황을 두고봤다는 점에서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노동전문가는 "현 사회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피해는 가장 '약자'가 감당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경우도 비슷하다. 이중지원을 해결하는 방법이 용역업체를 통한 직원 고용이라는 것은 노동특별시를 표방하는 서울시의 결정이라고 하기에는 의아한 점이 많다"고 꼬집었다.


wi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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