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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회의 회의록 들여다보니…"작은 표현·구두점 하나에도 신경"

의결 시점도 표결로 결정…공정성 확보 노력 흔적
법관회의 공정성 흔들기 사그라 들까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7-07-08 09:00 송고 | 2017-07-08 13:49 최종수정
지난달 1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 법관대표회의에서 전국에서 모인 판사들이 굳은 얼굴로 자리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지난달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법관회의의 상설화와 법원내 사찰문건으로 의심되는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추가조사를 의결하는 등 '사법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 당시 회의가 편파적이고 불공정했다는 문제제기가 등장했다. 법관회의 참석자는 전국의 판사들을 대표하는 100명. 전국 3000여명 법관 가운데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2900명의 법관들은 당시 회의가 어떤 분위기에서 무슨 논의가 이뤄졌는지 자세히 알기 어려웠던 터라 이같은 논란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결국 전국법관대표회의 측은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법관대표들에게 설문을 발송해 회의록 공개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설문결과 찬성 80, 반대 6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지난 5일 회의록이 공개됐다.

지난 5일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게시된 회의록은 구체적인 의안에 대한 논의 내용은 물론 각 안건별 논의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 그리고 표결결과 등을 빼곡히 기록하고 있었다.

◇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둘러싼 꼼꼼하고 치밀한 논의
회의록은 총 141페이지의 PDF 파일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법관대표들은 회의 당일 점심시간을 위한 1시간7분여와 오후 4시10분쯤 12분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같은 날 오후 7시50분까지 총 8시간30여분 동안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 참석한 법관들의 최고 관심사는 단연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또는 재조사 여부였다. 전체회의 시간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위한 추가조사를 할 것인지 재조사를 할 것인지 또 누가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조사를 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전체 141페이지의 회의록 가운데 13페이지부터 91페이지까지 총 78페이지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논의로 구성돼 있다.

법원 행정처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는 '블랙리스트'와 이에 따른 학술대회 '탄압·축소 지시' 논란의 중심에는 법원 내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법관회의의 정당성을 흔들려는 이들은 회의에 참여한 100명 가운데 39명이 인권법 연구회 소속으로 과잉대표돼 있고, 회의 자체를 인권법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장악했다며 공정성 논란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법관대표 2명이 대표 자격을 내려놓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회의록에 따르면 각급 법원 대표들은 증거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법문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등 공정성을 기하고자 노력했던 모습이 엿보인다. 해석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작은 표현 하나, 구두점 하나도 쉽게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이 회의록을 본 법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 법관 대표들, 설문조사 등 객관적 자료 근거로 의견 개진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 참석한 법관 대표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법원의 자체 의견 수렴 결과를 찬성과 반대표를 던지는 근거로 제시했다. 구체적 설문결과 등도 내놓았다.

회의록에 '의견9'로 기재 된 한 법관은 "우리 법원에서 전체 판사를 대상으로 의견수렴을 한 결과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의 경우 74명 중 65명이 찬성, 책임규명의 경우 74명 중 60명이 찬성의견이었다"고 밝혔다. '의견19'는 "우리법원에서도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총 21분 중 15분이 답을 주셨으며 그 중 12분이 (블랙리스트) 재조사 필요성에 찬성했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의견20' 역시 "추가조사 부분은 원래 우리 법원의 의안에는 없다가 판사님들이 추가조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따로 주셨다"며 소속 법원 법관들의 의견을 표결 근거로 제시했다. '의견21'로 기재된 법관 역시 "우리 법원도 지원 포함 1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고 회신은 66명, 그 중 49명이 블랙리스트 재조사에 찬성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근거로 제시했다.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측도 소속 법원 법관들의 의견을 근거로 제시했다.

'의견18'은 "부장판사 50명을 대상으로 한 우리 법원 설문조사 결과 블랙리스트에 대한 추가조사 또는 재조사 필요여부에 대해 반대 입장이 74%였다"며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이 돼 결과가 나왔는데 그 내용이 부족하다고 해도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진상조사를 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취지에서 반대 입장이 압도적으로 나온 것 같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회의록 상으로는 해당 발언을 한 법관이 '부장판사'만으로 설문대상으로 한정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안건을 점심식사 이전에 처리할지를 두고도 표결에 부칠 정도였다. 판사 특유의 꼼꼼함과 정당성 확보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찬성 68, 반대 20 이라는 표결 결과가 나오자 법관대표 회의 측은 끼니를 미루고 논의를 계속했다. 이후 법관 대표들은 추가조사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고 오후 1시13분쯤 찬성 84, 반대 14의 압도적 의견으로 블랙리스트 추가조사를 결의한다.

◇ 회의록 본 법관들 반응은? 

양승태 대법원장 /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그간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대강의 분위기만 전달 받았던 일선 법관들은 코트넷에 회의록이 게시되자 법관회의 정당성 시비 등과 관련해 답답했던 심경을 토로했다.

일선 법원의 A 판사는 "격무에 시달리는 법관대표를 붙잡고 그날 있었던 모든 논의와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알려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며 "회의록 공개 이전에 코트넷 익명게시판 등에 계속해서 회의가 편파적으로 진행됐다는 취지의 글들이 게시돼 혼란스러웠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의록을 읽어보니 판사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인 토론과 표결이 이뤄진 것 같다"며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에 대해 법관대표 가운데 84명이 찬성했다는 것은 전국 모든 법관들의 84%가 추가조사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재경지원의 B 부장판사는 "회의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법관회의 내용은 각급 법원에서 이미 결의를 했던 사안을 전국법관회의에서 다시 확인한 정도"라며 "그런데도 법관회의의 정당성 훼손 시도가 계속 이뤄진 것은 추가조사나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책임을 져야 할 측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원의 C 판사는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블랙리스트 추가조사가 이뤄져 진상규명이 되면 무언가를 잃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외에는 굳이 법관회의 정당성을 훼손하거나 집요한 공격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 판사는 "전국 법원에서 자체적으로 선출한 100명의 법관대표들을 모욕한 셈"이라며 "솔직히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법원 수뇌부에 대한 의혹의 시선만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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