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정상원의 탐식 수필] 시골시장에서 만나는 프랑스 미식 재료

이국적 식탁 위에 오른 보편적 삶의 이야기

(서울=뉴스1 ) 김수경 에디터 | 2017-06-22 17:41 송고
편집자주 정상원 셰프의 세계 여러 나라 미식 골목 탐방기를 연재한다. 정상원 셰프는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르꼬숑'의 오너 셰프다.
리옹의 정육점. 지역의 시장은 미식 재료의 보고이다.© News1
리옹의 정육점. 지역의 시장은 미식 재료의 보고이다.© News1

게랑드 소금(Fleur de Sel de Guérande)으로 마리네이드(marinade)해서 자작하게 브레이즈(겉을 구운 뒤 뚜껑을 덮어 육즙으로 졸이는 조리법)한 브레스지역의 닭(Volaille de Bresse)은 감히 육질의 제왕이라 불릴 만하다.
 
제철의 송로버섯(truffle)을 넣은 수풀레(soufflé, 치즈와 달걀을 부드럽게 오븐으로 조리하는 요리)는 입에서 녹아 사라지는 부드러운 식감 속에 날숨에서 다시 되뇌어지는 송로향이 벼락 치는 듯한 전율을 불러온다.
 
푸아그라(foie gras)를 다져 만든 고소하고 부드러운 파테(paté,페이스트)는 잘 구워진 바게트의 연한 속살 사이로 물들이듯 스며든다. 바게트의 바삭한 부분이 살짝 들리며 그 사이에 잘 다져진 소스가 촉촉이 배어든다. 
 
미식가 스티븐 젠킨스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맛있다고 표현한 상파뉴 지역의  랑그르치즈(langres). 이 치즈에 군고구마 향으로 무장한 잘 익은 샴페인으로 소테(souté)를 하면 오래된 이야기를 머금은 풍미가 식탁을 압도한다. 
 
이들 미식의 정수라 불릴 만한 요리들은 재료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식감을 자극한다. 이들 식재료에 대한 경험이 각인되어 있다면, 이름을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미감이 이끄는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된다. 

치즈를 파는 프로마주리, 햄과 소시송을 파는 샤르퀴테리© News1
치즈를 파는 프로마주리, 햄과 소시송을 파는 샤르퀴테리© News1

미식의 출발점, 전문 식료품점들

 
 빵집 불랑주리(boulangerie), 제과점 파티세리(pâtisserie), 치즈가게 프로마주리(fromagerie), 생선가게 푸아소너리(poissonnerie), 정육점 부처리(boucherie),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만들어 파는 샤르퀴테리(charcuterie), 청과점 프루터리(fruiterie),  향신료 집 에피세리(épicerie), 크레이프 전문점 크레 페리(crêperie). 
 
시골 마을의 간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료품 전문점들의 이름이다.
부르고뉴 정육점 부처리에 걸린 고기 가격표. 부르고뉴의 고기 요리는 한 부위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부위를 사용한다. <br /> © News1
부르고뉴 정육점 부처리에 걸린 고기 가격표. 부르고뉴의 고기 요리는 한 부위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부위를 사용한다. 
 © News1

프랑스의 시장도 카르푸(carrefour), 모노프리(monoprix), 프랑프리(franprix)처럼 각종 가공식품과 신선식품을 모두 구비하여 편리함을 도모하는 대형마트가 유행이지만, 그 사이에서 가업을 이어가며 백 년에 노하우를 가지고 재료를 제안하는 전문 식료품점들이 있다.
 
이러한 식료품 전문점들은 지역의 가까운 재료, 제철의 신선한 재료를 구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노하우로 만드는 반제품들이 일품이다. 잼이나 견과류 오일에서부터 바로 먹을 수 있는 라따뚜이(채소 스튜), 소시송에 이르기까지 손맛이 배어있는 반가공 식재료들이 즐비하다.
 
샤르퀴테리, 다양한 육가공 품을 만날 수 있다. 파테, 리예뜨 소시송 햄 등을 직접 만든다. © News1
샤르퀴테리, 다양한 육가공 품을 만날 수 있다. 파테, 리예뜨 소시송 햄 등을 직접 만든다. © News1

가업으로 이어진, 아무렇지도 않은…

 
미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미식을 즐기는 관전 포인트도 조리에서 식재료로 옮겨가고 있다. 재철의 재료는 물론이고, 유기농이니 넌지엠오(non-GMO)니 하는 단어들이 식탁의 가치를 저울질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유기농 상품과 더불어 얼룸재료(heirloom)가 각광받고 있다. 얼룸재료는 몇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와 고유의 맛과 향을 가진 재료들 그리고,  몇 대에 걸쳐 전통으로 이어진 방법으로 재배된 재료를 말한다.
 
인위적으로 무엇을 더하던 시대가 지나고 인위적으로 무엇을 빼는 시대가 되었다. 먹는 일에 있어서도 소위 디톡스라고 하는 빼기의 원칙이 유행하고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던 원래의 재료들이 다시 건강한 맛으로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엘룸 재료는 가업으로 수 세기 동안 이어져온 방법으로 재배된 변형되거나 표준화되지 않은 작물을 말한다.© News1
엘룸 재료는 가업으로 수 세기 동안 이어져온 방법으로 재배된 변형되거나 표준화되지 않은 작물을 말한다.© News1

라만차의 와인메이커 호세는 어려서부터 보도 밭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이다. 그와 함께 조그만 시골마을을 거닐게 되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는 토박이이자 농부이고 수 세기에 걸친 가업의 전수자다. 
 
그에게 포도농사를 짓게 된 이유를 물으니 정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답을 찾지 못한다. 포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렇게 농사를 지어온 것인데 이유가 찾아질 리 없다. 
 
그에게 물었던 우문은 다시 질문이 되어 돌아온다. 
 
재료와 감미료와 조리법이 수학 공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레시피북. 칼로리를 비롯하여 폴리페놀과 같은 항산화 물질, 비타민의 전구체 수치가 어지러이 적혀있는 영양성분표. 
 
그런 것들의 계산에 바빠 원래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져온 맛과 건강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식재료는 하나하나가 각자의 리듬을 가진 음표이다. 그날의 메뉴가 오선지가 되어 음표들을 기다린다.© News1
식재료는 하나하나가 각자의 리듬을 가진 음표이다. 그날의 메뉴가 오선지가 되어 음표들을 기다린다.© News1

식재료가 전하는 이야기들

 
요리사에게 재료의 선택은 요리의 시작이다. 장을 보며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일로부터 조리가 시작된다. 수많은 소리들이 뒤섞여 어수선한 새벽시장, 백열등 불빛 밑의 채소며 생선이며 청과들은 모두가 하나의 음표이고 그날의 메뉴가 오선지가 되어 음표들이 제자리에 놓이기를 기다린다.
 
신선한 재료에 칼을 대고 서걱 토막을 내면 오래된 이야기들이 각자의 맛과 향으로 그리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과육으로 뛰쳐나온다. 재료들이 마치 메트로놈이 되어 연주를 지휘한다.
 
프랑스 지방 마을의 오래된 식료품점들의 식재료들은 악보를 통해 앞서 계측을 하고 조리를 할 수 없다. 뚜껑을 열어야 비로소 음표사 쏟아져 나오는 즉흥곡과도 같다. 아무렇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지만 오랜 시간이 전하는 편안한 템포의 즉흥곡이다.
 
 



food@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