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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피의자 보호…'형사공공변호인' 도입 순탄할까

돈 없는 피의자에 수사 때부터 국선변호인 붙여줘
정부·변협·독립기구 등 담당 기관 놓고 견해 차이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김일창 기자, 최동순 기자 | 2017-06-25 07:00 송고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재심을 관람하기 전 박준영 변호사(오른쪽) 등과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재심을 관람하기 전 박준영 변호사(오른쪽) 등과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2000년 8월 전남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용의자로 체포된 최모씨(당시 15세)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폭행 등 경찰의 강압 수사에 최씨가 허위로 자백했다는 점이 뒤늦게 드러났다. 법원은 재심에서 최씨에게 무죄를, 진범인 김모씨(39)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은 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재심'을 보고 "사법이 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못 되는 세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말했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진 그는 "국가로부터 피해를 입은 개인을 제도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9년 도입을 발표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로 이어졌다. 경찰·검찰의 수사 단계에서부터 공적변호를 제공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현재 국선변호인 제도는 기소된 후 재판 단계에서부터 관여한다.

◇변호사 선임 못하는 억울한 피의자에 방어권 보장

최씨처럼 억울한 피의자를 불법 수사로부터 보호해 형사방어권을 보장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자문위 정치행정분과 위원장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대로 된 변호를 받았다면 약촌오거리 사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재판 전 수사 단계에서 인권 보호를 위한 공적 부조가 제대로 없는 현실에 대한 보완책"이라고 설명했다.
대상은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서민이다. 국가가 임용하거나 계약한 변호사들이 각 수사기관에 배치돼 경제력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피의자에게 수사 단계부터 형사변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법원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피의자가 최대한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제도라면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자문위는 현재 재판 단계부터 제공되는 국선변호인 제도를 보완할 계획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저서 '대한민국에 고한다'에서 "법조문상 '피고인'을 '피의자'로 바꾸는 간단한 법 개정만 있으면 가능하다"며 "국선변호인의 선정 시기만 앞당기면 되기에 실무상 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공적변호인(public defender)'과 닮아갈 것이란 관측도 있다. 2003년 이 제도를 국내에 소개해 2004년 국선변호사 제도 시행을 이끈 정준영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는 "국선변호만 전담하는 변호사는 부수업무가 아니기에 충실하게 할 수 있다"며 "수임 사건 수와 관계없이 고정된 급료를 지급하니 국가 예산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기획자문위 정치행정분과 © News1 이재명 기자
국정기획자문위 정치행정분과 © News1 이재명 기자

◇어느 기관서 관장할까…정부·변협·독립기구 등 놓고 팽팽

하지만 무작정 도입부터 추진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의 국선변호인 제도의 한계부터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보완하는 대책을 마련한 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자체는 환영한다"면서도 "이 제도를 어느 기관에서 관장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정부에서 맡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검토한 비슷한 방안을 토대로 한다. 당시 위원회에 속했던 조 수석은 저서에서 "사법연수원 수료자나 로스쿨 졸업자 중 미필자를 공공변호인으로 대체 복무하게 하면 된다"며 "법률구조공단이 공공변호인 역할을 겸하도록 개편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국가가 아닌 변협이 맡아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현 변협 회장은 "국가가 사적 영역에 개입하는 건 최소한으로 해야한다"며 "국가가 고용한 전관 변호사들이 형사공공변호를 맡게 되면 현재 국선변호를 주로 하는 청년 변호사들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등 시장 왜곡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독립적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박 변호사는 "판단하는 기관인 법원에서 수사과정에 개입하는 변호인을 관리하는 건 안 되고 검찰의 지배 아래 있는 법무부에서 맡는 것도 이상하며 변협은 이익단체이기에 더 안 된다"며 "법률구조공단도 검찰에서 독립되지 못했기에 중립적인 새로운 기관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기관이 설립되면 검찰의 위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현재 검찰과 법원은 동급으로 인식되지만, 새 변호기관과 검찰이 수사 단계부터 공방을 벌이는 관계가 되면 최종 판단을 내리는 법원은 상위 기관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반면 대검 관계자는 "(그런 견해는) 진영논리에 불과하다"며 "피의자 인권 측면에서 검찰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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