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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요절' 시인 기형도가 후배 문학청년에게 건넨 충고는

성우제 씨, 30여년 만에 기형도 시인 시론 담은 편지 공개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6-20 09:52 송고 | 2017-06-20 11:26 최종수정
기형도 시인.© News1

20대에 생을 마감한 시인 기형도(1960~1989)가 생전에 후배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인의 감각으로 현실을 파악해 구체적인 시를 쓸 것을 조언했다.
소설가 성석제의 동생이자 전직 언론인인 성우제 씨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30여년 만에 공개하는 기형도 시인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수년전 블로그에 썼던 글과 기형도 시인에게서 받은 손편지 전문을 공개했다.

성우제 씨에 따르면 자신이 고려대 재학 당시 교수가 어느날 '현역 시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답장을 받으라'는 과제를 내주어 형 성석제의 친구인 기형도에게 편지를 부탁했다. 이에 기형도는 자신이 가진 시에 대한 생각과 순수와 참여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당시 문학청년들에 대한 조언을 담은 이 답장을 보냈다.

성 씨는 "편지를 공책에 붙여 제출해 '에이(A)플러스'를 받았다"고 밝혔다. 기형도·성석제 등이 활동했던 연세문학회는 성우제 씨가 몸담은 고대문학회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관계였다. 

기 시인의 편지에 담긴 조언은 혼란스러운 현실과 구축해야 할 창조의 세계 사이에서 '구체성을 잃지 말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편지에서 기 시인은 시인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사상(事象)을 의미화하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시인의 인식망"이라면서 "이는 본질적으로 한 개인이 갖고 있는, 가져야만 하는 특수한 세계관의 틀"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자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시인들의 개별적 흡수력은 제한되어 있다"면서 "그 인식망을 통해 창조적 세계가 만들어진다 해도 그 실천적 힘(변혁의!) 분배몫은 독자들의 것"이라고 했다.

"대학시절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던 고민은 인식욕(認識慾)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인식의 무기는 감각뿐"이었다고 고백하며 "창조적 공간은 관념이 아닌 인식 이후 이뤄지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순수나 참여도 소재주의(오해말도록!)와 비슷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 시인은 "글을 쓰면 쓸수록 논리는 또다른 논리를 낳고(중략)구체성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면서 "1985. 4.30. 형도 형(兄) 쓰다"로 편지를 맺었다. 앞서 성우제 씨는 지난 15일에는 "기형도 시인이 술값을 대신 내어준 여성 후배 문인에게 답례로 시를 써주었다"며 기 시인의 육필 시와 연서를 받은 여성이 집에 돌아와 적은 소감을 올렸다.

1982년 안양의 문학 청년 모임인 '수리문학회' 회원들과 회식을 한 뒤 기형도 시인은 '당신의 두 눈에/ 나지막한 등불이 켜지는/ 밤이면/ 그대여, 그것을/ 그리움이라 부르십시오'로 시작하는 서정시를 써서 술값을 낸 여성 회원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회원은 "그(기형도)의 24살의 눈을 기억한다"고 기록했다. 

성씨가 공개한 자료들은 올가을 경기 광명시에 들어설 기형도 문학관에 기증된다.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난 기 시인은 1985년 25세로 등단 후 첫 시집을 내지도 못한 채 29세로 요절했다.

허무한 도시 속의 상념과 유년시절의 추억들을 드러낸 유고시들은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으로 묶여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시인이 자라고 요절 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지역인 광명시는 지난해부터 총 공사비 29억5000만원을 들여 기형도 문학관을 짓는 중이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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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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