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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정리뷰]문재인 시대 '박정희 만세' 부르짖다…연극 '국부'

박정희 신격화 과정 역추적 10·26 사건 재구성
개막일 50대 후반 남성들 "시민 세금으로 박정희 미화" 항의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017-06-15 16:45 송고 | 2018-06-24 11:54 최종수정
연극 '국부' 공연장면 © News1
연극 '국부' 공연장면 © News1

김수영 시인이 1960년에 쓴 미발표 시(詩) '김일성 만세!'는 박정희 전 대통령(1917~1979)을 신격화하는 지지자를 다룬 연극 '국부'(國父)와 정반대 편의 지점에서 정확하게 겹친다. 마치 종이 한 쪽에만 물감을 바르고 반으로 접었다가 펼치면 똑같은 모양이 만들어지는 데칼코마니처럼 말이다.

시가 나온 이후 57년이 흘러갔지만 2017년 6월10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국부'는 김수영의 시에서 북측 초대 지도자였던 김일성(1912~1994)의 이름을 박정희로 바꿔 넣으면 연극이 완성된다.

"‘김일성 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 관리가 우겨대니 //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시 '김일성 만세' 일부)

시인 김수영은 대한민국 헌법에 나온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이뤄지길 바랐다. 이런 시를 썼다고 '시인이 공산주의자'라고 판단해선 안 된다. 그는 한국전쟁 후 사상 검열로 거세된 '김일성 만세'라는 표현조차도 허용하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꿈꿨을 뿐이다.

박정희는 촛불 시민 혁명이 이뤄낸 문재인 정부에서 거세당한 이름이다. 그의 딸 박근혜는 언론을 통해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밝혀지자 대통령 지지율 5% 밑으로 추락하며 탄핵당했다. 이 과정에서 촛불 시민들의 반대편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박정희와 그의 딸을 지지하는 집단이 있었다.
연극 '국부' 공연장면 © News1
연극 '국부' 공연장면 © News1

연극 '국부'를 공동창작한 극단 돌파구 단원들은 소위 '태극기 집회' 시위자들의 주장에서 잘잘못을 묻어두고 그 현상 자체에 주목했다. 이들은 박정희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 내려가 지지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 제1장에서 '가난에서 구해준 영웅'이라고 요약되는 박정희와의 추억은 이렇게 모였다. 지지자들은 박정희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미화하면서도 민주화 운동 등 반대 세력에 대해선 공격적 반응을 숨기지 않는다.

박정희 지지자들의 모습은 북한 주민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여기서 착안한 미술작품도 있다. 임민욱 작가에게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안긴 '절반의 가능성'이란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은 남한의 박정희와 북측의 김정일 장례식을 교차 편집했다. 울부짖으며 슬퍼하는 남북 국민을 뒤섞여 편집한 흑백 영상만 보고 있으면 어디가 남북인지 알 수 없다.

또, 극단 단원들은 박정희 지지자를 앞서 분석한 신화·역사·언론·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학자와 예술가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를 바탕으로 박정희 일대기를 축약한 제2장과 구약성서에 나온 모세의 영웅담을 재해석한 제3장, 마지막 박정희가 살해당한 10·26사건을 재편집한 제4장이 완성됐다.

무대는 박정희의 초상화가 걸린 액자에서 착안했다. 정사각형 액자 틀은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케 했다. 여기서 남녀 성별 바꾸기와 박정희를 상징하는 '선글라스'를 물려받으면서 역할 이어가기 등 연극적 놀이가 이어진다. 이지혜·윤미경·하현지 등 여배우가 남자 역할을 하고, 유병훈·조영규·안병식·백성철·권일·김민하 등 남배우가 여자 역할을 한다. 특히, 김민하 배우가 10·26사건을 다룬 제4장에서 가수 심수봉을 맡아 통기타를 들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연극 '국부'는 절대로 쉽게 웃을 수 없는 작품이다. 관객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격분할 수도 있다. 이 지점이 바로 작품의 제작 의도 중 하나였다. 독재에 대한 향수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방향성을 제거하면 표현 방식에 있어서 어떻게 다른가를 보자는 것이다. 작품에선 박정희·근혜 지지자의 행동 방식과 내면세계를 두텁게 보여주면서 반대편인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보여준 현상을 비워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관객에게 양보한 셈이다.

실제로 개막일인 지난 10일 관객이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50대 후반 남성 8명이 공연 후 극장 로비와 마당에서 약 20분 동안 연출가와 극장 안내직원에게 욕설을 섞어가며 항의했다. 이들은 "국민 세금으로 (박정희를 찬양하는) 이런 쓰레기 같은 작품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내가 정치권 아무개 실장이랑 친한데 가만두지 않겠다"고도 압력을 줬다.

예술가들이 아직도 김수영 시인처럼 '김일성 만세!'를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소동은 박정희·근혜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독재와 민주화를 정반대 면에 그린 데칼코마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또, 이 그림에서 빠져있는 부분도 있다. 바로 '절차적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다.

연극 '국부' 공연장면 © News1
연극 '국부' 공연장면 © News1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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