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블랙리스트' 징계 어디까지?…도종환 장관 후보자의 '딜레마'

예술계 "블랙리스트 실무자 모두 처벌해야" 목소리 높여
실무자들 자료 제공 수사 공헌…처벌 고위직에 국한 의견도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박정환 기자 | 2017-06-01 08:01 송고 | 2017-06-01 10:37 최종수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 News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 News1

정치적 관점이 다른 예술인을 지원에서 배제했던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에 따른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기관 실무자에 대한 처벌 범위에 관심이 쏠린다.

문화예술계에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으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고발에 앞장섰던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내정되자 "블랙리스트에 관여했던 문체부와 산하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의 실무자들까지 모두 철저하게 가려내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검에서 이미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조윤선·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제1차관을 구속했지만, 관련 실무자까지 철저하게 처벌해야 다시는 반헌법적인 블랙리스트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5월4일 예술인들과 민주당이 블랙리스트 진명 규명을 위해 맺은 협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체부 실무자들이 전 정권의 지시에 반해 관련 증거를 폐기하지 않고 특검 등에 제출해 블랙리스트 수사에 공헌한 데다, 최순실·차은택의 국정 농단 과정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문체부 조직을 추슬러야 문화예술 지원정책 체계를 다시 되살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징계 범위를 고위 공무원에게만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따라 '블랙리스트 청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부처 추스르기'라는 현실적 문제 사이에서 적절한 징계 범위를 찾는 일이 도종환 장관 후보자의 당면 과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구나 예술위 등 산하기관에선 징계를 피하기 위한 조직적인 움직임도 일부 나타난 것으로 전해져 도 후보자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술인들이 지난 17일 광화문광장에서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News1
예술인들이 지난 17일 광화문광장에서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News1

1일 문화예술계 등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실시한 문체부와 예술위·영진위에 대한 감사를 마무리하고 내부 정리 절차를 진행해 이르면 이달 초 감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 후보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곧 나올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고 (블랙리스트 관련자에 대한) 인사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특검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한 고위직의 형법상 범죄혐의에 중점을 두고 수사했다면, 감사원은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해 문체부와 산하기관이 관리·운용하고 있는 문화예술진흥기금 등 보조금이 현장에서 적정하게 집행됐는지에 초점을 두고 감사를 시행했다.

문체부에선 대체로 "감사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다. 문체부 한 관계자는 "정권 차원의 일이라곤 하지만 문체부도 블랙리스트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감사원에서 법과 규정에 따라 관련자에 대해 징계 조치를 한다면 달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 후보자가 블랙리스트 청산을 취임 일성으로 내세우며 문화예술인들의 상처를 보듬겠다고 공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정 농단으로 망가진 문체부 조직을 추슬러야 한다"는 발언에 주목해 "징계가 주로 고위공무원을 대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일부에서 나온다.

문체부 다른 관계자는 "수사에 협조했던 점은 정상 참작 요인일 뿐 감사원의 판단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면서도 "징계 문제에 대해 실제 세부적으로 법 규정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국민 정서와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이어 "블랙리스트가 정권 차원에서 은밀하게 내려왔지만, 실무자들은 이를 허술하게 집행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블랙리스트 수사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도 지난 1월 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어쩔 수 없이 강요 때문에 양심에 어긋난 행위를 하게 된 문체부 과장 이하 실무자는 면책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분들이 많은 자료를 축적하고 모아서 전달하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성과가 없었을지 모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도 후보자 역시 블랙리스트 규명 과정에서 유 전 장관과 서로 통화도 하고 상의도 많이 했다고 밝힌 데다, 예술인의 상처도 보듬어야 하지만 장관으로서 정책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부처를 추슬러야 하는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송경동 시인, 임인자 연극기획자 등 블랙리스트 반대 운동을 펼쳤던 예술인들은 "검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선 지시한 수장뿐만 아니라 집행한 문체부와 예술위 실무자의 잘못에 대해서도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철저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예술계의 저항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크다.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던 산하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블랙리스트 저격수'였던 도 후보자의 임명 소식에 긴장하는 모습이다. 예술위 한 관계자는 "감사 분위기를 보면 감사원의 징계 수위와 후속 조치가 매우 셀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술위는 그러나 감사원 감사에서 문체부와 간부들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른 점을 적극적으로 호소하면서 조직적인 방어에 나선 것으로 전해져 실무자 징계 문제와 관련해 예술인 출신인 도 후보자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cup@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